[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16)

"1천억 원이 넘는 금괴가 옛 일본인 농장 사무실 지하에 묻혀 있고, 농장주 손자가 발굴을 시도한다"는 소문이 지난 3월 8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옛 일본인 농장 창고 지하에 보관돼 있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언론에 옮겨 붙었다. 서울의 방송과 통신, 신문들은 익산시와 관련 부지를 찾아 취재 보도 경쟁을 벌일 정도로 관심이 컸다.
일부 언론은 “14,00억 원 상당 금괴가 묻혀 있고, 일본인 농장주 손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발굴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금괴 매장설은 헛소문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지만 인터넷에서 논쟁은 더욱 가열됐다.
그런데 이 건물은 1914년에 건립된 일본인 오하시 농장에 소속된 건물로 전북지역 농업 수탈의 현장이자 호남지역 최대 쌀 창고였다. 전북의 대표적 친일 잔재로 분류된 곳이다.
익산지역 친일 잔재 세 번째 편으로 최근 소동의 진원지였던 오하시 농장 사무실을 비롯해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창고, (구) 춘포역사,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 가옥,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 도정공장 사무소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익산 오하시 농장 사무실

최근 금괴 소동의 진원지인 이 건물은 ‘익산 주현동 구 일본인 (대교)농장 사무실’ 명칭으로도 불리며 1914년에 건립된 일본인 오하시 농장에 소속된 사무실이다. 전북지역 농업 수탈의 현장과 농장사를 알려주는 건물이다.
일제 강점기에 오하시(大橋) 농장은 호남지역 최대 쌀 창고였다. 당시 농장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로 전라북도 농업 수탈 상황을 잘 나타내는 역사적 건물로 평가받는다.
해방 후에는 이리 화교소학교 교사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익산시 화교협회 창고로 쓰이고 있다.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이 건물은 1930년에 익옥수리조합 사무소로 지어져 1941년에는 임익(臨益), 전익(全益), 옥구서부수리조합과 통합돼 전북수리조합이 되었고 해방 후에는 전북농조의 청사로 1996년까지 사용되었다.
익옥수리조합은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하였다. 수리조합은 한국의 전통적인 계와는 다른 전형적인 일본의 모델로서 일본인 지주들은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금융자본과 결탁해 대규모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수리조합은 저수지를 활용해 새로운 제방의 수축사업과 간척사업을 통해 수리 안전답(水利安全畓)으로 바꾸어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목적이 있었다.
토지 개량과 수리사업을 명분으로 설립되었으며, 과다한 공사비와 수세(水稅)를 부담시켜 지역 농민을 몰락시키는 등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근대 농업 수탈의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현재는 익산문화재단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구) 익옥수리조합 사무소 창고

일제 강점기 이리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보관했던 창고이다. 일본인 농장 지주들이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익옥수리조합 사무소를 설립하였는데 그때 부속 건물로 함께 지어졌다.
익옥수리조합 사무소는 1930년에 익옥수리조합 사무소로 지어져 1941년에는 임익, 전익, 옥구서부수리조합과 통합되어 전북수리조합이 되었고 해방 후에는 전북 농지개량조합의 청사로 1996년까지 사용되었다. 일제 강점기 미곡 수탈 관련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가 높다.
(구) 춘포역사

춘포역사는 1914년 건립되어 이리(익산)-전주간 선로를 개통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장역(大場驛)이라는 이름으로 이리(익산)와 전주를 잇는 전라선의 보통역으로 출발하였다.
당시 역 근처에 일본인 농장이 설립되면서 형성된 일본인 이민촌인 ‘대장촌’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대장은 일본 사람들이 들이 넓다고 큰 대(大), 마당 장(場)자를 써서 대장촌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1996년에 춘포역으로 개칭되고 1997년에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소규모 철도역사의 전형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철도 기능은 사라졌지만 역사적ㆍ건축적ㆍ철도사적 가치를 모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 가옥은 전라북도 지역의 대규모 농장 중에서도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호소카와(細川) 농장 안에 있다. 1904년 조선에 진출한 호소가와가 농장을 설치한 이후 일대가 일본인 이민촌으로 형성되었다.
이 건물은 1920년대에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2층 규모의 일본식 가옥이다. 전 일본 총리였던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의 아버지가 소유주였으며 일본인 마름이 살았던 곳이다.
전라북도 농업 수탈사에서도 춘포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근대 지역사와 건축사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유적이다.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 도정공장 사무소

이 건물은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세천) 농장에서 도정공장으로 사용하였다. 1904년 조선에 진출한 호소가와가 농장을 설치한 이후 일대가 일본인 이민촌으로 형성되었다.
전라북도 농업 수탈사에서도 춘포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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