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시론
“원숭이를 기르는 사람이 도토리를 원숭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씩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다시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전국시대 송(宋)나라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그 유명한 '조삼모사(朝三暮四)'의 고사를 설명하는 글이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라는 뜻이지만 결과는 같은 것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아는 어리석음을 가르키는 사자성어다. 같은 도가 사상가인 열자(列子)의 ‘활제편(黃帝篇)'에서는 ‘간사하고 얕은 꾀로 남을 속이는 행위’로 소개하고 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나 먹이의 개수는 똑같지만 그걸 모르고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급급하는 어리석은 상황을 묘사할 때 흔히 쓰는 성어다. 훗날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비교 본능을 타고난 인간들에게 이기적인 감정만을 앞세운 차별 또는 편견에서 나온 차별은 모두 대립을 낳고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개념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이 성어에 비유하곤 한다.
"왜 우린 빠졌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탈락 지역들 ‘부글부글’…이재명 정부 첫 농어민 복지정책 ‘부메랑’

그런데 이 조삼모사 정책 때문에 지금 농촌지역 주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실시한다며 선정 지역을 발표했지만 선정되지 못한 지역에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특히 1차 심사를 통과했으나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지역일수록 상실감이 커 보인다. 추가 지정 요구가 빗발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들 농촌 지역을 휘감고 있다.
인구소멸 위험이 가장 큰 지역 7곳을 시범사업 대상지로 정부가 선정한 이후 탈락한 지역들은 상실감을 호소하며 추가 지정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내놓은 첫 농어민 복지정책이 부메랑을 불러온 모양새다. 지난달 20일 농림축산식품부는 2026∼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로 경기 연천·강원 정선·충남 청양·전북 순창·전남 신안·경북 영양·경남 남해 등 7개 군을 선정했다고 밝히면서 후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인구감소, 고령화로 인한 농어촌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국정과제로 추진한 정부가 다양한 농어촌 여건에 맞는 지속 가능한 정책 모델을 발굴하고 효과를 검증하며 확산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우선 7곳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해 발표했지만 많은 탈락 지역들이 ‘왜 우리는 빠졌느냐”며 항의를 하거나 추가 지정을 촉구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시범사업으로 2년간 해당 지역 주민에게 월 15만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탈락 지역 농민들이 상대적 박탈감과 상실감을 호소하며 분노 목소리를 높이는 양태다. 특히 1차 심사를 통과했으나 최종 선정에서 탈락한 지역들은 뒤숭숭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인구감소 지역 69개 군을 대상으로 사업을 공모한 결과 49개 군에서 신청, 그 중에서 7개 군을 최종 선정해 발표했지만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특히 '사업 시행 최적 지역인데도 전국 7개 도를 정해두고 1개 군씩 선정하는 광역단체별 균등 배분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탈락했다'는 항변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소멸 위험이 큰 농어촌 지역에 남아 지역 지킴이 역할을 해온 해당 지역 주민의 공익적 기여 행위에 대한 보상이자 소비 지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마중물 역할을 하는 정책이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탈락 지역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이미 역부족인 상황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국가균형발전 근본 취지에 어긋나는 시범사업, 12개 군 모두에서 전면 시행돼야”…군수·군의원들까지 나서 공개 비판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다양한 농어촌 여건에 맞는 지속 가능한 정책 모델을 발굴하고 효과를 검증하며 확산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전북 진안·장수, 전남 곡성, 경북 봉화, 충북 옥천 등 5개 군은 지난달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12개 군 모두에서 전면 시행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1차 심사에서는 통과했지만 최종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지역들이다. 이날 회견에는 지역 국회의원과 군수들이 함께 자리를 했다. 이들은 “정책 추진 의지와 실행계획의 우수성을 이미 인정받았음에도 최종 선정에서 제외된 것은 국가균형발전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며, 농어촌 소멸 위기 극복은 일부 지역만의 실험으로는 검증될 수 없다”며 “1차 심사 통과 12개 군의 전면 시행”을 촉구했다.
전북에서는 최종 선정 과정에서 탈락한 장수군에서 군수와 군의원들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등 지역사회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진안군도 이장단연합회와 주민자치협의회 등 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시범지역 선정 규모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며 “농어촌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농민의 삶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지속 가능한 농촌을 위한 국가적 약속으로 정부와 국회는 1차 심사를 통과한 지역을 포함해 시범지역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임실지역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 탈락에 대한 책임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지역 일부 단체들은 “임실군이 공모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주장을 펼치자 군이 나서서 그동안 준비해온 방대한 자료를 공개하며 전면 반박하기도 했다. 이처럼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지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지자 정치권도 시범지역 추가 선정을 촉구하는가 하면 슬며시 주민들 눈치를 보며 한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다.
“왜 줬다가 빼았나?"...농어촌 기본소득 주겠다면서 농민수당, 아동수당 등 무더기 삭감에 순창 농민들 거센 '반발'

그런데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탈락 지역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선정된 곳에서도 볼멘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 눈과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순창군은 그 대표적 사례로 꼽을 만하다. 순창군은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지역으로 선정됐지만 정작 잔치 분위기는커녕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순창군은 내년부터 모든 주민에게 ‘농어촌 기본소득’을 주겠다면서 농민수당이나 아동수당 등은 무더기 삭감을 예고해 전 지역민들이 크게 술렁거리는 모양새다. 순창군이 농민수당 등 각종 복지예산을 줄여 농어촌 기본소득 예산으로 돌리겠다고 발표한 때문이다. 순창군은 농민수당 200만원 중 140만원, 아동수당 150만원 중 94만원, 청년종자통장 700만원 중 350만원을 삭감한다는 계획이어서 군정을 향한 규탄 여론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역 농민들은 한목소리로 “줬다 뺏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차라리 안 주느니만 못하다”고 지역 설명회에 나선 군수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직접 설명과 해명에 나선 최영일 순창군수는 “농민수당은 줄지만, 최종적으론 40만원이 증액되니 이득”이라며 “군민을 위해 농민들이 양보해야지 농민수당과 기본소득을 다 받으려 해선 안 된다”고 말해 더욱 화를 자초한 꼴이다.
최 군수는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 행사 특강에서 “농민수당 200만원을 꼭 받아야겠나? 그런 분 있으면 이 자리에서 손 들고 말씀하시라”고 하자 한 농민이 “다 받아야겠다”고 맞받아쳤다. 그러자 최 군수는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받지 말라”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 군수는 복흥면을 시작으로 찾아가는 농어촌 기본소득 주민설명회를 11개 읍면에서 열고 있지만 '기본소득을 준다고 하면서 다른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라는 주민들 항의와 언쟁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최 군수는 농어촌 기본소득의 개념과 지급 대상 및 절차, 지역화폐 지급 방식 등을 안내하고 주민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설명회 취지를 밝혔지만 농어촌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단체 관계자들은 설명회 장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걸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인지 쓸쓸한 여운을 가득 남게 한다. 정부의 조삼모사 복지정책이 농촌지역에 후유증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애꿎은 농민들을 두 번 세 번 울리는 형국이다.
“‘국책사업’ 이름 무색...지방비 부담 과도한 조삼모사식 예산 짜내기·생색내기” 비판 고조

'순창에 30일 이상 주소를 둔 군민 2만 7,000명 정도가 내년부터 매달 15만원씩 연 180만원을 지역화폐로 받게 된다'며 크게 반기던 군민들이 분노하고 나선 이유는 시범사업이 시작되는 2026년도 기본소득 예산 204억원을 편성하면서 아동행복수당 22억원, 청년종자통장 7억원, 농민수당 103억원 등이 삭감되기 때문이다.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재명 정부 시범사업을 따냈다'며 환호성을 터뜨린 지 한달도 안 돼 국책사업이란 이름을 무색하게 하며 지방비 부담이 과도한 조삼모사식 예산 짜내기가 현실화된 곳은 비단 순창군 뿐만이 아니다.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국·지방비 분담 비율이 40%대 60%으로 지자체가 정부보다 무려 20%p 더 높게 설계된 탓에 본격 시행도 되기 전부터 곡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정부담은 지자체에 떠넘긴 채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생색내기에 가깝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가뜩이나 이번 시범사업에 선정된 순창군의 경우 국비 40%, 도비 30%, 군비 30% 등 매칭 비율이 정해졌지만 국비 외에 도비와 군비 재원 마련이 당장 어려운 처지다. 이 때문에 순창군은 “농민에게 주던 군비 140만원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전환해 농민뿐 아니라 모든 군민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고육지책을 내놓았지만 농민회 등 지역 단체들이 “농민 몫을 깎아 군민 전체에 나누는 것"이라며 들고 일어선 이유도 조삼모사식 예산 짜내기 정책 때문이다.
국비 부담 비율을 60%이상으로 높여 지방재정 부담을 완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높은 이유다. 어쨋거나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선정부터 부작용이 팽배하다는 점에서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탈락한 곳은 추가 선정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선정된 지역은 다른 복지예산 삭감과 재원 마련 때문에 등골이 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기본소득을 명분으로 기존 복지를 깎는 건 줬다 뺏는 조삼모사에 다름 아니다는 농민들의 쓴소리와 외침을 지자체와 정부는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