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19)

매년 5월(음력 4월 8일)이 오면 남원시에서는 춘향의 높은 정절을 기리고 그 얼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춘향제'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로 벌써 91회째를 맞는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의 대표적 문화축제 중심에 있는 남원시 광한루 춘향사당의 춘향 영정이 친일 잔재 논란에 휩싸여 오랫동안 철거 여론이 일었으나 공청회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지난해 겨우 철거됐다.
춘향 영정은 친일 화가인 김은호가 그렸다가 6·25전쟁 때 훼손되자 다시 그가 제작한 실물 크기의 복사본이다. 그러나 김은호는 친일 활동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영정을 철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춘향 영정은 지난해 9월 24일 뒤늦은 철거가 이루어 졌으나 그동안 친일 작가의 영정이 오랫동안 지역의 문화축제를 상징해 왔다는 점에서 찜찜한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
더구나 남원은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1만여 명을 모신 '만인의총'이 있는 고장이다. 단 하루도 친일 작가의 작품을 걸어둘 수는 없다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친일파 등의 눈치를 보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이제서야 철거가 결정됐지만, 다른 대체 영정을 놓고도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남원시의 대표적 친일 잔재인 광한루 춘향 영정과 만인의총 박정희 현판, 이용묵 기적비를 차례로 소개한다.
남원 광한루 성춘향 영정

광한루 내 춘향사당에 지난해까지 위치했던 춘향 영정은 친일화가 김은호의 작품이다.
그는 1937년에 '국방헌금 조달과 황군 원호'를 위해 귀족·관료 부인들이 주축을 이룬 여성단체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의 일화를 다룬 그림을 그렸다.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라는 그림으로 금비녀 등을 팔아 일본의 전쟁물자를 사는데 쓰도록 한 모습이 담겨있다.
작가는 이 그림을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바쳤다. 춘향사당에 있는 영정은 6.25 전쟁으로 훼손되었으나 1939년에 김은호가 그린 춘향 영정을 다시 제작한 1961년의 영정이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화가였지만 조선미술가협회의 일본화부에 참가해 전쟁지원을 위한 친일 미술작품을 심사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 포함된 인물이다.
이에 지역 시민단체는 춘향 영정 교체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앞서 2005년에는 경남 진주 논개사당에 걸려 있던 그의 논개 영정이 시민단체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윤여환 화백이 그린 영정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만인의총 박정희 현판

만인의총 내 충열사의 현판은 박정희가 쓴 글씨이다. 만인의총은 임진왜란 때 남원성을 사수하다 죽은 성민들의 시신을 한 곳으로 모아 묻고 사당을 세운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0년대부터 성역화 사업을 벌이면서 만인의총의 사당을 재건립하고 충열사에 친필 현판을 걸었다. 박정희는 1939년 10월 만주국 육군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만주로 가서 황국 군인이 되고자 하였다.
만주국의 군관으로 입학하기 위해 지원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동봉하였다. 해방 이후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는 친일행적을 가진 친일파이기에 그의 친필현판은 친일 잔재로 분류됐다.
남원 이용묵 기적비

남원 대산면의 친일 면장 이용묵을 기리기 위해 후대에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그가 마을에 저수지 축조를 위해 나섰음을 언급하며 찬양하고 있다.
비석에 의하면 저수지는 1940년 말에 준공되었다. 해당 비석에는 이 비석을 세우는데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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