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25)

친일 잔재는 농촌 마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진안군에 가면 '윤치호 시혜불망비'와 함께 '흥학불망비가 있다. 그런데 모두 친일 잔재로 분류된 것들이다. 

또한 진안 강정리 전영표 가옥은 농촌에서는 보기 드문 일본식 2층 가옥이다. 이 외에도 여름에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았던 풍혈냉천도 친일 잔재로 분류됐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 내막을 소개한다.

윤치호(尹致昊)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736-2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736-2

이 비는 진안군 부귀면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윤치호(尹致昊, 1865~1945년)가 소작료를 경감해 준 사실을 기리기 위해 1929년 소작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윤치호는 한때 독립협회를 비롯해 만인공동회 등 애국 계몽활동을 지도하고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나 1915년 친일 전향을 조건으로 특사로 석방돼 변절의 길을 걸은 인물이다.

윤치호 시혜불망비는 잘못된 역사적 사실의 행적을 밝히고 현재를 살아가는 후대에게 교훈과 경계를 삼기 위한 역사 교육의 생생한 증거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윤치호 흥학불망비(興學不忘碑)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736-2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 736-2

이 비는 진안군 부귀면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윤치호(尹致昊, 1865~1945년)가 부귀 초등학교 부지를 희사한 사실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부귀면 초대 면장이 건립했다.

윤치호 흥학불망비 역시 시혜불망비와 함께 잘못된 역사적 사실의 행적을 밝히고 현재를 살아가는 후대에게 교훈과 경계를 삼기 위한 역사 교육의 생생한 증거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진안 강정리 전영표 가옥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248-1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248-1

진안 전영표 가옥은 1924년경에 지어진 농촌 가옥으로 ‘진안 강정리 근대 한옥’으로도 불린다. 한국 농촌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일본식 2층 가옥이다.

당시 2층 건물 양식은 상가 규모로 많이 이용되었는데 주택 건축에 적용된 사례는 매우 특이할 만하다. 이는 건립 당시 건축주인 전용표가 집의 규모가 크면 안 된다는 원칙하에 풍수적으로 명당이지만 터가 세다는 이유를 들어 2층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영표 가옥은 일제 강점기 민간인 목수에 의해 지어진 집으로, 당시 이 지역 목수의 기술력을 살펴 볼 수 있다. 한국 근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를 기념해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진안 풍혈냉천(風穴冷泉)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1336번지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1336번지

진안 풍혈냉천은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양산마을 대두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풍혈은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솟는 곳을 말하며 바위가 얼기설기 얽혀 굴을 형성하고 있다.

바위의 구멍에서 나온 바람이 하루 종일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냉천은 풍혈과 함께 있는데, 허준이 약을 짓는데 쓰던 물이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풍혈냉천은 1780년경에 처음 발견돼 일제 강점기에 하천공장(우뭇가사리 가공)과 잠종 보관소로 이용되다가, 현재는 매년 더위를 식히기 위한 피서객들의 관광지가 됐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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