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14)
농업 및 교통의 중심지인 익산시는 일제 강점기에 농업 및 금융 등 우리의 소중한 자원들을 일제가 수탈해가는 중심지로 활용됐다. 그 잔재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익산지역 친일 잔재 첫 번째 편으로 일제 강점기에 설립된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에 이어 (구) 이리금융조합, (구) 이리농림학교 본관 외에 실습장과 축산과 교사 등을 차례로 소개한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농사 개량과 농업 기술 향상이라는 표면적인 목적을 내세워 설립됐다.
1917년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만들어 본점을 동경으로 옮기고 이리와 경성ㆍ부산ㆍ대구ㆍ목포ㆍ대전ㆍ원산ㆍ사리원ㆍ평양 등과 만주의 간도ㆍ하얼빈ㆍ대련ㆍ봉천ㆍ신경 등에 지점을 설치했다.
이들 지역은 농업 및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되는 곳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중심으로 농산물과 자원을 수탈해갔다. 현재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의 건물은 IBK기업은행 익산 중앙지점으로 사용중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수탈의 대표적 기관으로 당대 경제사 및 농업사 연구에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근대 건축물로서 이리 지역의 근대 건축사 연구에도 활용도가 높다.
(구) 이리금융조합

이 건물은 1925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리 지역에서 수탈정책을 담당했던 금융기관이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농업 정책에 조응하여 농사개량자금ㆍ토지구입자금ㆍ부채전리자금 등의 일본인을 대상으로 지역에서의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조선 지배에 보조적 역할을 했다.
이밖에도 대출ㆍ예금ㆍ기적금 등을 주요사업으로 했다. 건축물의 전체적인 구조와 공간 구성 그리고 형태 등과 함께 금고 등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등기소와 전북은행 등으로 활용됐다. 일제 강점기 금융 수탈을 위한 기관으로 당시 지역 금융의 역사적 흔적을 잘 보여준다.
(구) 이리농림학교 본관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개교 당시 전국 유일의 5년제 관립 농림학교이다. 학생의 모집도 전국 단위로 실시되었고 전국 13도 도청에서 입학시험이 치러졌다.
조선 및 일본 학생 반반으로 구성된 이른바 내선공학(內鮮共學)을 내세운 농업학교였다. 이리농림학교는 1915년부터 일본인 대지주들의 설립 청원이 끊이지 않았는데 1921년 1월 가타기리 와조(片桐和三)를 필두로 한 설립 청원서가 작성되면서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이리농림학교는 수원농림, 진주농림과 함께 조선의 3대 명문으로 꼽혔으며 당대 조선 최고의 수재들이 다니는 학교로 평가됐다.
이리농림학교의 건립을 통해 일본인 대농장과 대농장의 관개(灌漑)를 담당하는 수리조합 그리고 농업기술의 실습과 전파를 담당한 농업학교의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다.
현재는 전북대학교 농과대학으로 사용 중이며 본관 건물의 보존 상태도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구) 이리농림학교 실습장

이 건물은 1922년 세워진 이리농림학교의 실습장이다.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개교 당시 전국 유일의 5년제 학교이다.
이리농림학교는 1915년부터 일본인 대지주들의 설립 청원이 끊이지 않았는데 1921년 1월 가타기리 와조(片桐和三)를 필두로 한 설립 청원서가 작성되면서 설립이 본격화됐다.
1970년대까지 화려한 명성을 이어갔으나 1991년 학생모집을 중지하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이후 1991년 국립 이리농공전문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전북대 농과대학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

이 건물은 1932년도에 이리농림학교에 축산과가 설치된 이듬해 특별교실로 건립됐다. 당시 약 1만원의 건축비를 들어 지어졌다.
이리농림학교 교사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어 근대 건물로 가치가 있다. 이리농림학교는 1922년 개교 이래로 1991년 이리농공전문대학으로 개편하였다가 2007년 전북대학교와 통합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보존 상태도 대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근대 건축물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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