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6)

친일 잔재.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유무형의 유산'을 말한다. 이 외에도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파(친일반민족행위자)가 생성하거나,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생성된 유산'을 말하기도 한다. 

‘식민지 유제’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하고 전쟁 동원을 선전하기 위해 친일파(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생산한 유무형의 유산 일체, 그들에 의해 고착화된 사대매국주의적 요소, 그들의 행위와 주장을 미화, 옹호하는 논리, 그 들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각종 유물과 기념사업 등을 지칭한다.

친일 잔재의 유형으로는 인적 잔재와 물적 잔재가 있다. 인적 잔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와 학연, 지연, 혈연 등 관계를 맺는 모든 방법을 통해 맺어져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친일 비호 세력을 말한다.

건물·군사시설·기념탑비·신사·동상·공덕비 등 친일 잔재 곳곳에 남아 

물적 잔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매국, 배족 활동의 대가로 형성한 친일재산 그리고 조선총독부 등 식민통치 기관과 재조일본인의 적산, 친일 기업, 단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부당하게 취득한 모든 형태의 자산 또는 국가가 관리했으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조선총독부 및 식민통치 기관과 재조일본인의 자산 등 적산을 뜻한다.

유형의 친일 잔재는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조성한 시설물과 선전 조형물을 말하며, 식민통치기관 건물, 은행, 공장 등 상업 산업시설, 방공호, 활주로, 땅굴 등 군사시설, 황국신민서사탑(皇國臣民誓詞塔) 팔굉일우탑(八紘一宇塔) 내선일체탑(內鮮一體 塔) 보국탑(報國塔) 등 국책 선전 기념탑비, 신도(神道) 정토진조(淨土眞宗), 신사와 같은 일본 종교 관련 시설, 승전비 충혼비 등 전쟁 기념물,  동상, 흉상, 송덕비, 공덕비 등 일본인 및 친일 조선인 찬양 조형물 등이 있다.

전주시에 남아 있는 유형의 친일 잔재 마지막 편으로 약령시와 유곽 거리, 금융조합, 소학교 정원석 등을 소개한다. 

전주 약령시 창립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완산교 주변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완산교 주변

전주 약령시 창립비는 약령시 창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비석에는 회장 박기순, 부장(副長) 전(前) 참사 이강원, 전북 도평의원 오키 료사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이강원은 전주군 참사, 전라북도 참사 및 전주교풍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오키 료사쿠는 1907년에 전주에 정착하면서 전주상공회 회장, 전주비료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친일 잔재다. 

전주 약령시 박계조 기념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완산교 주변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완산교 주변

전주 약령시(藥令市)는 조선시대부터 약재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던 중 한일병합 이후 폐지되었다가 1923년 전주약령시기성회가 조직되면서 다시 개설됐다.

개설 이후 점차 성장세를 보였으며 1932년 가을 전주 약령시 판매액이 57만 6천여 원의 거액에 달할 정도로 정점을 이뤘다. 이 당시 박계조는 약령시 개설 이후 약 10년간 약재 생산지를 사비로 시찰하는 등 약령시 선전을 활발히 수행했다.

또 전주약령시영성회(全州藥令市永成會)의 총무를 맡는 등, 전주 약령시의 중심인물로 손꼽혔다. 전주 약령시 박계조 공적 기념비는 전주약령시영성회에서 건립하였다. 

전주 유곽 거리 출입구 표시석 기둥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7-13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3가 127-13

전주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상대하던 전주 최초의 유곽은 전주부성 서문 부근의 성벽을 허물고 조성되었다. 전주시 다가동 3가 중앙길 174번지와 156번지 사이 골목 앞에 2미터 간격을 두고 쌍으로 돌기둥이 서 있다.

이 돌기둥은 1916년 10월 31일까지 운영되었던 유곽의 출입구 표시석이다. 이후 진북동으로 유곽은 이전해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10년이 넘은 표시석은 여전히 서서 이곳이 일제 강점기 최초의 전주 유곽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주 금융조합 

    전주시 경원동2가 32
    전주시 경원동2가 32

전주 금융조합은 1927년에 공사를 시작해 1930년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북지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당시 전주에는 조선식산은행, 무진주식회사, 조선상업은행, 전주금융조합, 완산금융조합, 남완산금융조합과 이 건물에 있던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북지부까지 모두 7개의 금융기관이 있었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농업협동조합 건물로 사용되어오다 2001년부터 사찰로 사용 중이다. 콘크리트 2층 건물로 건물 외벽 기둥과 연결된 4개의 굴뚝이 준공 당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전주 심상소학교 정원석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921-3, 전주역사박물관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2가 921-3, 전주역사박물관

심상소학교 정원석은 봉안전 주변에 세웠던 표지석이다. 일제는 황국신민화 교육을 목적으로 전주심상소학교(현 전주초등학교) 교정에 일본 천왕의 사진을 보관한 봉안전을 건립하였다.

이 표지석들은 인애원(仁愛園), 지성원(至誠園), 대화원(大和園), 충후원(忠厚園)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2006년 4월 23일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전주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표지석들을 전주역사박물관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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