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미완의 친일 청산(7)

군산지역의 대표적 친일 잔재로는 친일 작가 채만식 생가와 문학비, 묘지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일본인 농장, 창고, 세관, 사찰 등이 잔존해 있다.

'미완의 친일 청산' 전주편에 이어 이번 일곱 번째부터는 군산지역의 친일 잔재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채만식 생가 터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274-2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274-2

군산시 임피면에는 채만식이 나고 자란 생가 터가 있다. 현재는 상점 건물로 사용되고 있고 우물터와 건물 기초 부는 남아 있다. 채만식은 1902년 군산 출신으로 일지 교원과 기자 생활을 하다 1937년 조선일보에 장편 소설 『탁류』를 연재했다.

이후 많은 문학작품을 썼지만 1940년대 『아름다운새벽』, 『여인전기』와 같은 친일 작품 14편을 내놓았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이력 또한 있는 친일파이다. 

군산 채만식 문학비(1)

군산시 장미동 12
군산시 장미동 12

군산 채만식 문학비는 군산시 근대건축관 뒤편의 탁류길에 세워져 있다.

백릉 채만식이 지은 소설의 이름(부촌, 제향날, 보리방아, 탁류, 어머니, 치숙, 아름다운 새벽, 금의 정열, 패배자의 무덤, 민족의 죄인, 불효자식, 낙일,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태평천하, 레드메이드 인생, 과도기, 가죽 버선, 생명의 유희, 사라지는 그림자, 화물 자동차 등)을 새긴 조형물로 친일파 채만식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군산 채만식 문학비(2)

군산시 신흥동 26-2 
군산시 신흥동 26-2 

군산시 신흥동에는 ‘白菱 蔡萬植 先生 文學碑’라는 명칭이 새겨진 또 다른 채만식 문학비가 있다. 

전면에는 채만식의 대표적인 소설 '탁류'의 한 구절을 새겨두었고 후면에는 채만식의 일생을 미화 찬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채만식은 1902년 군산 출신으로 일지 교원과 기자 생활을 하다 1937년 조선일보에 장편 소설 『탁류』를 연재했다. 이후 1940년대 『아름다운 새벽』, 『여인전기』와 같은 친일 작품 14편을 썼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친일파이다. 

채만식 묘소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산 16-3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산 16-3

채만식이 죽은 뒤 묻힌 묘소이다. 채만식은 1902년 군산 출신으로 일지 교원과 기자 생활을 하다 1937년 조선일보에 장편 소설 『탁류』를 연재했으며 이후 많은 문학작품을 썼지만 1940년대 『아름다운새벽』, 『여인전기』와 같은 친일 작품 14편을 내놓았다. 

특히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친일파이다. 1950년 6월 1일 이리시 마동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였으며,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 축산리 계남 마을에 안장되었다.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5-1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5-1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는 근대기에 건립된 철근 콘크리트 건축물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귀중품 창고로 사용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군산주둔 인민군이 옥구 지역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군산 발산 초등학교 내 문화재로서 관리되고 있다. 군산에서 수탈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문화재를 수집한 일본인들이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축물로 대지주들이 불법 수집한 한국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했었다.

대규모 농장을 중심으로 농업에서의 수탈이 가장 심했던 전라북도 및 군산 지역에서 일본인이 자행한 수탈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다. 

※참고 자료 :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 (2020.12)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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