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양종철은 키가 팔척이며 힘이 무척 셌다. 단오명절이나 추석명절 때, 조성면에서 개최하는 씨름대회에 나가 일등을 해 황소를 타왔다. 양종철이 김복동에게“큰형님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하고 핀잔을 주었다. 김복동이 “실제로 도깨비가 있는지, 다녀오면 약속대로 돼지 잡는 일은 면제 해 주겠다.”고 말했다.
신이난 양종철이 도깨비를 보려고 출발하려 하자, 김복동이 “봉두산에 있는 묘지앞에 가거든, 다녀갔다는 징표로 묘지 앞에 말뚝을 하나 박아놓고 오라.”시켰다.
양종철이 집에서 말뚝과 망치를 준비 해가지고 산을 향해 올라갔다. 그동안 김복동이 하얀 두루마기로 소복을 하고 피리를 준비해 묘지 옆 수풀 속에서 기다렸다.
말뚝을 다 박고 돌아 서는데, 소복을 한 귀신이...

양종철이 묘지 앞에서 말뚝을 박으려는 순간, 캄캄한 밤중에 어디선가 여자귀신의 울음 소라와 애달픈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양종철이 주위를 살펴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에 소복을 한 여인이 공동묘지 뒤에 서있었다. 양종철이 놀라움에 거의 넋이 빠져 나갔지만, 그냥가면 장사로서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거기에 더해 다음날 놀림을 받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묘지 앞에 말뚝을 박았다. 겁이나서 경황없이 망치를 내리치느라 자신의 옷자락이 말뚝에 박힌 지도 몰랐다.
말뚝을 다 박고 돌아 서는데, 소복을 한 귀신이 잡아 당겼다. 양종철은 귀신이 옷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자 귀신에게 잡아먹힐 것 같다는 생각에 겁이나 졸도했다.
먼동이 터 오르는 새벽이 되었지만 양종철은 정신 줄을 놓고 쓰러져 있었다. 해가 밝아온 후에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땅속에서 귀신이 옷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겁이나 정신을 놓아버리고 옷 위에 말뚝을 박은 것이었다.
거기다가 하도 놀라 바지에 오줌까지 싸버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김복동과 칠복이 다가와서“도깨비는 잘 잡아두었느냐?”고 짓궂게 물어보며 놀려댔다.
그러면서“소변을 보고 싶으면 집에 와서 볼일이지 옷에다 싸버린 이유는 무엇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양종철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앞으로는 무슨 일이든 시킨 대로 할 것이니 소문내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하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한편 집에서는, 송화자가 백설기떡이 익자마자 떡과 함께 하얀 쌀밥, 미역국, 각종 음식을 상위에 차려놓았다. 맨 먼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에게 아기의 무사 무탈한 성장을 빌고 이어서 부엌, 장독대, 우물가 등에 상을 차려놓고 조왕신에게 빌었다. 축원이 끝나자 상위의 미역국 등 차린 음식은 아기 어머니 영심에게 먹으라 했다.
이렇게 양종철의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버릇을 고쳐주고 집으로 돌아온 김복동은 종철이와 칠복이를 데리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지정해 놓은 자리로 안내해 모셨다.
영심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 맡았던 정선미 선생님이...
안내해 모신 후에는 다과방으로 갔다. 아낙들이 술상을 보아가지고 내어주면 순서대로 상을 가져다주고 “많이 드시라”고 권유 한 후에 김병만에게 말씀드렸다.
보고를 받은 김병만은 손님들을 한분 한분 찾아다니며 술을 권하면서 인사를 했다. 맛있는 백일 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때 대문 앞에 7명의 숙녀들이 찾아왔다. 모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순간 김병만에게 인사를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심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을 맡았던 정선미 선생님이었다.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냈던 동무들 6명을 데리고 와 차례로 인사 드렸다.
정선미 선생님이 김병만에게“5일 전에 조성면장을 지냈던 김만복 면장님이 찾아와 며칠 후에는 영심 아기의 백일이니 참석하여 축하해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영심과 친하게 지냈던 김경숙, 최혜숙, 이말련, 박남희, 안정님, 김정희 등의 동무들에게 연락해 축하해 주러 오게 되었습니다.”하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영심이 오랜만에 보는 동무들이 너무 반가워, 휠체어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행낭어멈은 영심의 아기를 안고 와 동무들에게 보여주었다.
동무들이 영심의 딸을 안아보면서“매우 예쁜 딸을 낳았다”고 칭찬해 주면서, "딸이 자라면 공부도 잘해 유명인사가 되어 영심에게 많은 효도를 할 것이다."고 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경숙이와 혜숙이는 20세에 시집을 가서 애가 둘이었으며, 이말련은 음악가가 되려고 광주에 있는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조성주재소에 다녔던 정희는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여수에 살고 있었고, 정님이와 남희는 시, 소설, 수필 등 을 쓰는 작가가 되어 유명해져 있었다.
한참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동무들에게 선생님이“오늘은 매우 기쁜 날이니, 축하노래를 불러주어 자리를 빛내주자.”고 했다.
이에 모든 손님들이 쳐다 볼 수 있는 마당가운데로 나갔다. 선생님의 지휘 하에,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이말련이 가져온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잔치에 참석했던 축하객들이 “기타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첫 곡으로“고향의 봄”을 불렀고, 두 번째 곡으로 조성국민학교의 교가를 불렀다.
노래가 모두 끝나자, 축하객들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면서 앵콜을 연호하였다.'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한곡 더 부르자, 선생님이 영심에게 “시를 잘 지으니 시를 하나 지어 읊어 보라”고 했다. 영심이 하는 수없이 '그리운 동무들'을 읊었다.
그리운 동무들
별빛이 쏟아지는 밤중에도
은하수가 만드는 무지개에도
보고싶은 그리운 동무들
어릴 적부터 함께 놀고
지금도 내 마음에 머물고
항상 같이 있는 나의 동무들
달빛 속에 빛나는 여의주처럼
태양 아래 반짝이는 보석처럼
영원히 변함없는 동무들...
영심이 읊어주는 시를 듣고, 축하객들은 감동하며 많은 박수를 쳐주었다. “영심의 몸이 건강해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담임선생님과 동무들이 찾아와 기타를 치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잔치가 끝났다. 김병만이 참석해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송화자도 하얀 문종이로 포장한 백일 떡과 음식을 나누어주며 인사를 드렸다.
재롱 부리는 모습, 아버지 고석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간절
영심은 잔치가 끝나자, 휠체어를 타고 동구밖의 팽나무 밑으로 나갔다. 어렴풋이 보이는 조성역을 쳐다보며“고석병이 백일이 된 영심을 보러올까?”하고 기다렸다.
며칠 전에 김병만이 벌교역 앞에 살고 있는 아저씨에게“며칠 후에 영심아기의 백일이니 꼭 다녀가라”기별을 넣었기에, 백일날 올까하고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영심은 먼 하늘을 바라보며“아무리 무정한 남편일지라도, 딸아이의 백일은 참석해 축하해 줄"줄 알았다. 사내 아기가 아니면, 자식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넘어가면서부터, 김병만은 가끔 아기를 보러가 누구를 많이 닮았는지? 쳐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자기를 닮은 것 같이 보여서 예뻐하였다.
아기는 김병만의 발자국 소리를 아는 것처럼 걸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려고 애를 쓰면서 미소를 지었다. 백일이 가까워지고 부터는 김병만의 발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반갑다는 듯이 주먹 쥔 양손을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할머니가 아기에게 미음을 먹이고 있을 때에도, 김병만이 다가가면 고개를 돌려 김병만을 쳐다보려고 애를 썼다. 가까이 다가가면 더욱더 좋아하며 크게 웃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김병만은“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다”고 말해주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자신의 핏줄이 다음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가장큰 본성이라 자신도 모르게 아기에게 정이 더 가고 예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기가 백일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미소를 지으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아버지인 고석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다. 영심은 며칠 동안 아기를 안고, 동구 밖으로 휠체어를 타고 나갔다.“고석병이 오지 않을까?”하고 점심시간도 잊은 채 앞만 보고 기다리는 모습이 망부석 같았다.
칠복이 아침 마다 동구밖에 있는 팽나무 밑에까지, 휠체어를 밀어 영심을 데려다 주었다. 기다리다 지쳐가는 모습을 보고, 말은 못하지만 마음이 찢어져 내렸다.
"아기의 이름 지어 호적에 올려야하니 빠른 시일 내에 꼭 한번..."
점심때가 가까워지면, 칠복은 하던 일을 멈추고 팽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영심에게 "작은아씨 점심 먹으러 갔다가, 다시 나오시지요.“하고 권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아기를 안고 휠체어를 타고나가 팽나무 밑에 앉아서 기다렸다. 고석병을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목이 길고, 머리 등 옆구리는 진한 갈색, 꼬리는 흰색이며 검은색 굵은 띠가 나있고, 부리는 끝만 오랜지색에 대부분 검은색인, 큰 기러기가 짝을 잃고, 겨울이 지나도 남편을 찾으며 길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 같았다.
마을 사람들도 팽나무 밑으로 향하는 영심을 보고, 겉으로는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마음 속으로는 영심이 너무 애처로워,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잃고 쳐다만 보았다. 김병만도 고석병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였다. 백일이 된 아기의 성과 이름을 지어주고 호적에 올려주기를 바랬다.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하고 성은 누구를 따라야할지 상의를 해야 하는데 고석병이 나타나지 않자 어찌할 바를 몰라 걱정이었다.
하는 수없이 김병만은, 김복동을 벌교역 앞에 사는 아저씨에게 보냈다.“고석병을 찾아가, 상의할 일이 있으니 영심집에 한번 다녀가라”고 부탁해 달라고 했다. 고석병이 “지금은 바쁜 농사철이니, 농번기가 끝나면 한번 찾아가겠다.”는 답이 왔다.
기다리다 지쳐 김병만은 칠복이를 불러“고석병에게 아기의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려야하니, 빠른 시일 내에 꼭 한번 다녀가도록 하라.”는 말을 전하고 오라 했다.
칠복은 조성역에서 벌교역을 향해 기차를 타고 가는데, 기차 안이 사람들로 가득차 발 디딜 틈도 없어 기차의 맨 뒤 칸 끝에 서서 두꺼운 쇠줄에 기대어 있었다.
기차는 자갈이 깔린 철로 위를 달렸다. 한참 후에는 다리를 건너고 길 다란 굴을 지나 달려갔다.“철로가 점점 좁아져 만났다가 이내 헤어지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커브길이나 다리를 건너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마치 인생사 같다”고 생각 되었다.(계속)
/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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