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벌교역에 도착해서 고흥에 있는 장수저수를 향해, 한나절동안 자갈이 깔린 산길을 걸어갔다. 칠복은“무슨 수단을 쓰던지 이번에는 꼭 고석병을 데리고 가, 영심을 기쁘게 해 주겠다”고 결심하며, 장수저수지앞 주막집을 지나 고석병 집으로 갔다.
대문을 들어서서, 고석병이 보이지 않아 어머니에게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논에 피를 뽑으러 갔다”고 해 논으로 가보았다. 고석병이 논에 엎드려 김을 매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하게 김을 매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 칠복이 화가 나는 것을 꾹 참고 고석병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고석병이 깜짝 놀라며“자네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는가?" 하고 물었다. 왜 왔는지를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어보는 것 같아 화가 났다. 김병만을 생각해 꾹 참으며 말을 전했다.
칠복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고석병이“지금은 농사철이라 여러 가지 일로 매우 바빠서 못가고 다음에 가겠다”고 해서 몇 번 더 설득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칠복이 집에 돌아와서 김병만에게“이번에는 꼭 데리고 오려고 했는데, 다음에 오겠다고 완강히 거절해서 혼자 왔습니다.”고 하며 고석병의 사정을 소상히 말했다.
김병만은 칠복의 이야기를 듣고 “고석병 같이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까?”하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당장 쫓아가 혼을 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아냈다.
하는 수 없이 김병만은 아기의 이름을 호적에 올리는 것을 보류했다. 아기 돌맞이를 할 때, 고석병이 찾아오면 상의해서 올리려고 좋다는 이름만 몇 개 지어놓았다.
아기가 백일이 지나고 4개월이 가까워졌다. 고개를 완전히 가누며 엎어 놓았을 때 가슴까지 들어올리고, 김병만의 목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려 웃으며 쳐다보았다.
웃는 모습이 예뻐, 김병만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가가 유독 김상만을 보면,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기가 4개월이 넘어가자, 엎어놓은 몸을 가슴에서 허리까지 들어 올렸다. 5개월이 되자 아기가 책상 위에 있는 장난감을 잡아당기고 잡히지 않으면 크게 울어댔다.
6개월이 가까워지자 신기하게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도 몸을 뒤집었다. 누워서 등을 구부려, 자기의 발을 잡고 놀다가 발을 입에 넣어 빨면서 혼자 놀았다.
아기가 밥상을 잡고 일어서서 수저, 젓가락, 반찬 등을 집으려...
생후 7개월이 넘어가자, 계속해 울면서 앉혀 달라고 보채었다. 엉덩이로 기어가기도 했다. 김병만이 보이면 큰소리로 웃으면서, 기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김병만도 자기만 보면 좋아하며, 큰소리로 웃고 기어오는 아기가 예뻐서 안아주었다. 안아주면 아기는 김병만의 길게 자란 수염을 잡아당기며 놀기를 좋아 하였다.
아기가 10개월이 다가오자 배를 땅에 대고 기어가더니, 드디어 배를 땅에서 떼고 네발로 갔다. 양발과 양손을 뻗어 엉덩이가 하늘로 솟은 채 기어가기 시작했다.
기어가기가 익숙해지자 멀리 있는 장난감이나 수저 등을 잡으려고 방안을 휘젓고 다니다, 싫증나면 의자나 책상을 잡고 일어섰다. 상위에 있는 반찬을 끌어 당겼다.
아기가 밥상을 잡고 일어서서 상위의 수저, 젓가락, 반찬 등을 집으려다 엎어버렸다. 김병만은 다른 자식들의 잘못했음을 꾸짖던 때와 다르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김병만의 생각에, 어렸을 때 불구자가 되어버린 불쌍한 딸이 시집을 잘못 갔다. 사랑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기만 하나 낳아 기르고 있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다.
세월이 흘러 들판에서 벼들이 노랗게 익어갔다. 아기의 돌날이 7일 앞으로 다가오자, 김병만은 송화자를 불러“우리 집에서 마지막 잔치가 될지도 모르니, 돈을 아끼지 말고 아기의 돌잔치를 성대하게 치러줄 준비를 하라.”고 단단히 부탁을 했다.
이렇게 외할아버지 김병만이 자신의 돌잔치 준비에 애를 쓰는지를 아는지? 아기는 김병만의 목소리가 들리면, 의자를 잡고 일어서서 아장아장 걸어와 품에 안기었다.
아가들도 삼신이 들어 있어, 자신을 보호해 주고 예뻐해 주는 사람은 알아본다. 그 사람에게 버림을 받지 않으려고, 온갖 재롱을 부리며 애교를 떤다는 말이 맞았다. 김병만이 혹시라도 바빠서 모른 척 지나치거나, 안아주지 않으면 큰소리로 울었다.
아기가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어머니인 영심이였다. 영심이 보이면 이제는 엄마 엄마를 부르며, 재빨리 기어오거나 탁자를 잡고 일어서 뛰다시피 빨리 걸어왔다.
어떤 때는 넘어져 코피가 나고 멍이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품안으로 들었다. 영심도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아기를 껴안을 때, 가장 기분이 좋고 사랑을 느꼈다.
영심이 낙서하는 것을 말릴면 목청껏 큰 소리로 우는 아기...
영심이 혼자서 방문을 열고, 색연필로 마당에 피어있는 장미, 작약, 목단, 찔레꽃 등을 그리고 있었다. 아기는 쏜살같이 기어와 색연필을 뺏어들고 낙서를 했다.
영심이 낙서하는 것을 말릴라 치면, 목청껏 큰소리로 울어대었다. 말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어야만 하는 매우 고집이 센 아기였으나, 영심은 대견스럽게 바라보았다.
김병만도 아기의 돌날에 초청해야 할 일가친척들과 지인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써 우편으로 발송했다. 나머지는 머슴을 시켜 추가로 초청장을 보냈다.
심지어는 옆 동네 사는 나이 많은 분들과 김병만의 집에 일을 해 주러왔던 농부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 지난번에 꼭 오겠다고 약속 했던 담임 선생에게도 보냈다.
조성장에서 보아온 음식 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돌날 아침이 되자, 김병만과 머슴들은 대문 앞에 서서 손님들에게 인사드리며 반갑게 맞았다.
찾아오신 손님들을 마당에 펼쳐 놓은 덕석위로 차례차례 모셨다. 일가 분들 중 항렬이 높으신 분들은 안방으로 모셔, 음식과 술을 놓은 상을 손수 날라다 대접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가운데 잔치가 무르익고 있을 때,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왔다. 지난 백일잔치 때 왔던 영심의 친구들을 데리고, 돌 선물을 가지고 나타났다.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으면서 영심의 아기를 보았다. 서로 안아보며“무척 예쁘게 자랐다”고 축하의 말을 해주느라, 한 동안 떠들썩하였다.
축하객중 한분이“학생들이 지난번 백일날 축하의 노래를 매우 잘 부르던데, 오늘도 돌날을 맞아 축하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자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도 담임 선생의 지휘하에 이말련이 가져온 기타 반주에 맞춰, 아기의 무병장수와 복을 받으라는 의미의 노래 몇 가지 불러주었다. 맨 마지막에 영심을 생각해 '어머님의 은혜'를 불러주자, 영심의 가여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면장을 지냈던 김만복이 일어서서 영심에게 노래를 불러준 친구들을 위해 시를 한수 읊어 달라고 했다. 영심이 하는 수 없이 친구들과 하객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담장 밑에 매달려 있는'포도'를 보고 시를 읊었다.
포도
깡마른 몸매에
알알이 자식을 매달고
바람이 불면 떨어질까
폭우가 몰아치면 다칠까
검은 치마저고리 벗어서
하나하나 덮어주고
밤새워 노심초사하는
내 어머니를 닮은 포도.
"어제가 딸아이의 돌이었는데 왜 오지 않았냐?"고 묻자, 고석병은...
돌잔치 내내 김병만과 영심은 대문만 쳐다보며 고석병을 기다렸다. 잔치가 끝날 때까지 고석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망스런 마음을 안고 손님들을 배웅했다.
잔치를 마친 영심은 아기를 안은 채 휠체어를 타고 팽나무 밑으로 나갔다. 조성기차역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지만, 고석병은 오지 않고 하얀 황새만 날아가고 있었다.
잔치가 끝날 때까지 하시도 눈을 떼지 못하던 김병만이 단단히 화가 났다. 다음날 칠복이를 데리고, 고석병이 있는 고흥군 장수 저수지를 향해 새벽 일찍 출발 했다.
고석병은 딸아기의 돌잔치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척, 무심하게 마당을 쓸고 있었다. 칠복이 집으로 들어가 고석병에게“장인어른이 찾아왔으니 잠깐 나오라”고 알렸다.
밖으로 나온 고석병에게 김병만이“어제가 딸아이의 돌이었는데, 왜 오지 않았냐?”고 묻자, 고석병은“갈 수 없었고, 앞으로는 처갓집과 발을 끊겠다.”고 말했다.
이에 깜짝 놀란 김병만이“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자, 고석병은“제가 영심과 결혼한 것은, 부모님들이 딸만 셋인 저에게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오라” 졸라서 하는 수없이 장가를 들었습니다.“영심이 딸을 낳은 얼마 후 본처가 아들을 낳았습니다.”“아들을 얻었으니, 다시는 영심을 찾지 말라는 본처의 말에 따라야한다.”고 하였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병만, 눈물을 머금고...
"그러므로 앞으로는 영심을 찾지 않겠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으니, 딸아이의 이름을 짓는 문제나 호적에 올리는 것도 알아서 하십시오."하고 말했다.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김병만은, 눈물을 머금고 아기 이름을 '김정숙'이라 지었다. 조성면사무소에 김병만의 첫째 아들 호적에 올려버렸다.
그리고 영심에게 “다시는 팽나무 밑에 나가 고석병을 기다리면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다시는 고석병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니, 빨리 잊어버리라”고 했다.
영심도 며칠간 고심하다가“남자들에게 사랑이란 것은 애시 당초 없고, 남자들은 종족 번식이 끝나면 여자들은 안중에 없다. 또 다른 여자를 찾아서 떠나간다.”는 것을 깨닫고“다시는 남자들과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리하고 잊어버렸다.(계속)
/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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