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영심이 딸아기를 낳자마자 새벽이 밝아왔다. 송화자는 행낭어멈을 불러 쌀 한가마를 내 주면서 “백설기떡을 만들어, 덕촌부락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이는 부락민들에게 아기가 태어난 것을, 널리 알려주는 효과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부엌에는 삼신할미에게 상을 차려 주었다. 아기를 점지해 무사히 낳을 수 있도록 임신기간 동안 지켜주고 순산할 수 있도록 해준 고마움의 표시였다.

송화자는 칠복을 불러 “굵고 실한 볏짚을 사용해 성인남자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왼손 새끼줄을 꼬아, 작은 생솔가지와 숯덩이를 간간히 꽂아 금줄을 만들어라.”고 가르쳐 주었다. “만들어진 금줄은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들의 눈에 잘 띄는 머리 정도높이로, 집 앞 대문의 양 기둥에 묶어 늘어 뜨려 놓아야한다.”고 일렀다.

부락 사람들“인심 넉넉한 김병만 딸이 어여쁜 딸을 순산했다”축하 

칠복이 “금줄을 쳐놓으면 무슨 효과가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았다. 송화자는 “출산 후에 금줄을 쳐 놓으면, 우리 식구들과 깨끗한 사람들만 대문을 출입할 수 있다.

환자를 방문하고 온 사람, 상가집을 다녀온 사람, 소가축의 도살장을 다녀온 사람, 들에서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나 저절로 죽은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은 사람 등 부정을 탄 사람은 집으로 못 들어온다. 산모의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행낭어멈은 우선 물에 불려 놓았던 쌀을 곱게 빻아가지고, 채로 쳐서 쌀가루를 만들었다. 시루에 넣고 잘 익을 때까지 불을 때기 시작해, 김이 날 때까지 불을 땠다.

잘 익은 떡을 떡판에 올려놓고 예쁘게 잘라 접시에 올려놓았다. 머슴 셋이서 한 집 한집 방문하며, 영심이 어여쁜 딸을 낳았음을 알리는 인사를 드리며 전달했다.

부락 사람들은 “인심이 넉넉한 김병만의 딸이 장애인인데도 어여쁜 딸을 순산했다”고 축하해주었다. “관세음보살께 매일매일 기도한 덕분일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꽹과리, 북, 장고, 징 등 악기를 가지고 팽나무 밑으로 모여, 풍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김병만의 집 주위를 돌며, 악귀를 쫓는 놀이를 해 주었다.

김병만의 집에 새 아기가 탄생했음을 축하하는 풍물놀이가 끝났다. 흥이 오른 부락 풍악대는 집집마다 방문, 악귀를 쫓는 풍악으로 모두의 무사안일을 빌어주었다.

이에 호응하여 김병만처럼 덕촌부락 부자들은 풍악대의 사기를 올려주고, 부락민의 유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내어다 대접하거나 돈과 쌀을 내주며 격려했다.

풍악대가 울리던 풍악이 점차 마을 잔치로 변해갔다. 마을의 주요한 행사나 명절 이 왔을 때, 놀이마당을 여는 마을 모임장소인 팽나무 밑에 모두들 모여 들었다. 아이들도 팽나무로 올라가 잘 보이는 곳에서 구경을 하려고 자리다툼을 하였다. 

"인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딸에만 애정 갖고 남편 정은 잊어버려야”

회색빛에 황금색 잉어비늘 모양의 깃털을 가진 산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마치 관세음보살이 보낸 축하객처럼 풍악대 주위를 맴돌며, 구 구 구 노래를 불러주었다.

팽나무에 살고 있는 다람쥐 한 쌍도 비둘기를 따라 내려와 노래에 맞춰 춤추었다. 밤이 깊도록 흥겨운 놀이가 계속되었고, 김병만도 기분이 좋아 음식을 대접 했다.

이렇게 덕촌부락민 모두가 새 아기 탄생을 축하하고 있을 때, 천계의 태백선인은 서왕모를 찾아가 “영심에게 아기를 점지해 줄때, 관세음보살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보다는 아들을 낳아, 고석병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서왕모가 “사람들은 아들을 갖고 남편 사랑을 받으면 과거의 잘못을 잊고, 더욱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영심이 전생의 잘못을 잊고, 지금의 인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딸 하나에만 애정을 갖고 집중하도록 해, 남편의 정은 잘라내어 잊어버려야 한다.” 고 강조했다.

즉 영심이 금 번의 인간세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죽었을 때 “예전처럼 천계의 선녀로 불러오기 위해, 우랑에 대한 연모의 정을 버리도록 해 주어야만 한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 난지 3일이 되었다. 아기는 젖을 달라고 울어 대는데, 아기에게 먹여야 할 젖이 나오지 않았다. 송화자가 미역국을 끓여다 먹여 보았지만, 영심이 임신기간 중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쓰러져 있었기에 젖이 말라버렸다.

송화자가 핏덩이 아기를 이불에 싸가지고 부둥켜안은 채, 며칠 전에 아기를 낳은 영희엄마에게 달려갔다. “영심이 어렵게 아기를 낳았는데, 젖이 나오지 않으니 젖을 먹여 달라.”고 통사정해서 젖을 얻어 먹였다. 송화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심은 하체가 마비된 장애인이라, 아기를 임신을 하면 안 된다”고 한의원이 주의를 주었건만, 김병만은 “자신이 죽고 나면, 영심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느꼈다.

그래서 무리인줄 알면서도 영심을 고석병에게 시집을 보냈고, 아들을 낳기를 빌었다. 영심이 거의 죽다시피 하는 고생을 해, 딸을 낳았는데 젖마저 말라버렸다. 

송화자, 젖이 잘나오도록 돼지 족발 사다가 끓여 주었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끝없이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영심이 안타깝고 가엽기만 하였다. 송화자는 아기의 젖이 잘나올 수 있도록, 돼지 족발을 사다가 끓여 주었는데도 젖이 나오지 않았다. 한약방에서 한약을 지어다, 계속적으로 먹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버지 김병만 마저도 너무 안타까워, 보성읍내에 있는 삼선당 한약방을 비롯해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다녔다. 젖이 나오는데 좋다는 한약을 지어 먹였으나 젖은 나오지 않았다. 영심은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아기가 웃는 모습만 보고 있었다.

송화자도 영심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젖이 나오지 않자, 혹시 아기가 배가 고프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에 시간이 나는 대로 아기를 부둥켜안고 젖동냥을 다녔다.

덕촌마을에서 젖동냥이 끝나면, 옆 마을인 매실골과 멀리 떨어진 살구골 등 아기를 낳은 집이 있으면 찾아갔다.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며 젖을 얻어 먹였다.

다행히 김병만과 송화자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넉넉히 베풀어 주었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쌀, 보리 등 곡식을 주어왔기에, 모두 반갑게 맞아 젖을 먹여 주었다.

영심이 기력을 잃고 누워 있는지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멀리서 천천히 다가왔다. 영심은 아픈 몸을 가누며 일어나 인사를 올렸다.

관음세음보살이 영심에게 “성한 사람도 아기를 낳기 어려운데, 너는 장애인의 몸으로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아 새 생명을 잉태시킨 공덕을 쌓았다.”고 치하하셨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연꽃을 한입 따서 영심에게 먹여주었다. 영심의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여태까지 힘이 없던 몸에서 힘이 솟아나 기력이 회복되었다.

다음날부터 영심은 부모님과 온 식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차츰차츰 기력을 회복하여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해 갔다. 이제는 아기도 미음을 먹고 자라갔다.

영심의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고, 아기의 백일 날이 다가왔다. 김병만은 아기의 무사를 축하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백일잔치를 성대히 치러주고 싶었다.

먼저 부인 송화자를 불러 “내일이 조성 장날이니 아기의 백일에 사용할 재료들을 넉넉히 구입해,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부락에 살고 있는 분들을 대접하라”고 했다.

송화자는 막내머슴 칠복을 데리고 조성장으로 갔다. 먼저 어물전에 들러 고등어, 갈치, 낙지, 가자미, 꼬막, 바지락 등 생선을 사고, 야채전에 들러서 싱싱하고 틈실한 배추, 무, 당근, 알타리 등을 샀다. 잡화전에 들러 잔치에 필요한 물건을 샀다.

마지막으로 옷을 파는 상점에 들러, 영심이와 아기에 어울리는 예쁜 옷들을 샀다.

이렇게 백일잔치 용품을 사놓고 보니, 산더미처럼 많았다. 우마차를 빌려서 한가득 싣고 돌아오는데, 덕촌부락 입구 공동우물에서 물을 긷던 아낙들이 인사를 하며 “백일잔치를 하는 음식을 장만 할 때, 연락을 주면 가서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영심의 아기 축하해주고 싶어 일가 친척과 지인들에게 초청장 우송 

송화자도 딸 영심이 건강을 되찾고, 손녀인 아기도 잘 자라 주어 기분이 좋아 “꼭 도와주러 오고, 백일 날은 가족이 참석해 식사하며 즐겁게 보내라”고 말을 건넸다.

김병만도 딸 중에서 가장 예뻐하며 몸이 장애인이라서 가여워하고 있는, 영심의 아기가 잘 자라고 있음을 축하해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려 마음먹었다.

그래서 보성읍내 등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일가친척과 지인들에게 초청장을 만들어 우송시켰다. 벌교 아저씨를 비롯해 벌교에 사는 여러 분들과 평소에 농산물을 거래 하던 상점 주인들에게 직접 초청장을 가지고 찾아가 “꼭 참석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씀 올렸다. 머슴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해, 백일 날 참석을 부탁드렸다.

백일 날이 하루 전으로 다가왔다. 송화자는 아침 일찍 마을에서 떡을 잘 만드는 영희 엄마, 전을 잘 부치는 동주 엄마, 김치를 잘 담그는 정희 엄마 등 손맛이 좋다고 소문난 아낙을 불러 모았다. 맛이 좋다는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백설기, 백편, 흰무리떡, 설기라고도 부르는 순수와 신성을 나타내는 떡을 만들기 위해, 쌀을 물에 불린 후 시루에 넣어 쪄서 대추, 밤, 석이 등 고명을 얹었다.

마당 한쪽에서는 전을 잘 부친다고 소문이 난 동주엄마가 오징어전, 애호박전, 느타리버섯전, 표고버섯전, 고기소 호박전과 소고기 동그랑땡 등 각종 전을 부쳤다.

동주엄마는 대량의 전을 빨리 부치기 위해, 계란을 풀어서 만드는 계란물, 전의 앞과 뒤에 입힐 밀가루 등 재료를 많이 준비해 놓고 능숙한 솜씨로 빠르게 부쳤다.

부엌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잡채를 만들고 있었다. 혜숙엄마는 제일먼저 물이 끓기 시작하면 시금치를 1분정도 살짝 데쳐, 차가운 물에 헹궈준 후에 약간의 소금과 깨소금, 참기름을 넣고 버무려 두었다. 그다음에 소고기를 얇게 썰어 어간장을 넣고 버무려두고, 다음에 청양고추, 버섯, 당근, 양파를 어슷하게 썰어 두고, 당면을 1시간정도 물에 불려두었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콩기름을 두르고 다진 재료를 볶아준 후 소금을 약간 넣어주었다. 다음에 버무려둔 소고기를 콩기름을 두르고 볶아두고, 불린 당면을 약간의 물을 붓고 볶아준 후 간장과 설탕도 함께 볶았다. 마지막으로 좀 전에 볶은 야채와 당면, 소고기, 시금치를 넣고 골고루 섞어주어 잡채를 완성하였다. 완성된 잡채를 맛을 본 다른 아낙들도 맛있다고 칭찬했다.

밤이 되자, 송화자 집에서 가장 큰 돼지를 잡아 수육, 눌린 머릿고기, 다른 요리재료 등으로 사용하려고 상머슴 김복동, 둘째머슴 양종철, 막내머슴 칠복이 집 옆의 개울가로 가 손질을 했다. 둘째머슴이 버릇처럼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김복동이 “집 뒤 봉두산 중턱에 있는 장수 할아버지 묘 앞에, 밤이 되면 커다란 뿔이 두 개 달린 도깨비가 나타나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실제로 도깨비가 있는지 가보고 오는 사람은, 저녁에 돼지를 잡는 일을 면제해 주겠다.”하였다.(계속) 

/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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