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앵두
우리집 우물가에
빨간 분칠을 한 채
수줍게 얼굴 내미는 앵두
푸른 허공위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
알알이 매달려 있다
내게도
저렇게 예쁜 친구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읽는 것을 면장이 들어보았다. "너무 꾸밈없는 외로운 마음을 표현해놓았다”고 생각했다.“글을 써놓은 것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100여 편입니다." 대답했다.
100여 편의 시를 읽어본 면장이 영심에게 “그림도 그릴 줄 아느냐?” 물어보았다.
영심이 심심할 때마다 크레용으로 그렸던, 앵두나무, 배나무 등 을 보여주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자세히 살펴보았다. 면장이 영심에게 “국민학교를 3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전문 미술교육을 받은 것처럼 매우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하였다.
면장이 영심의 시와 그림을 국민학교에서 전시하게 해주려고 생각했다. 면장이 찾아오기 전날 밤, 담임선생 꿈에 관세음보살이 오색 무지개 구름을 타고 다가왔다.
담임선생이 놀라 합장을 했다. 관세음보살이 “영심은 하늘나라에서 옥제를 모시고, 베를 짜는 직녀를 도와주던 선녀였다.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영심이 지상에서 벌을 받고 반성하게 되면, 옥제가 다시 하늘나라로 불러들여 천상의 일을 맡길 것이다. 지상에서 희망을 갖고 살도록 도와주도록 하라” 부탁했다.
전시회를 시작하는 날 영심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과 함께...
며칠 후에 면장이 조성국민학교를 찾아갔다. 담임을 했던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을 만나 “영심이 쓴 시들과 그림들을 초등학교에서 전시해,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겠다. 영심이 불구자로 삶을 살아가는데, 희망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했다.
교장과 담임선생이 찬성을 했다. 영심이 쓴 시와 그림을 학교로 가져왔다. 전시회를 하기 위해 예쁜 액자를 만들어 넣었다. 전시회장을 꾸미고 초청장을 보냈다.
전시회를 시작하는 날이 되었다. 영심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우마차를 타고 전시회장으로 갔다. 조성면장, 조성유지들과 학생들이 많이 와 있었다.
먼저 교장선생이 전시회 개최동기를 말했다. 참석해준 여러 내빈에게 감사의 말씀이 있었다. 이어서 면장을 비롯한 유지들이 격려사를 해주며 치하해 마지않았다.
격려사 말미에 교장선생님 말씀이 있었다. “3학년 밖에 다니지 못한 영심이 장애인이 되어 학교를 그만두었다. 혼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며 졸업장을 수여했다.
이 광경을 처다 본 가족들과 수많은 내빈들이 눈물을 흘렸다. 같은 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무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 하던 중, 갑자기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이어서 영심은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마련한 휠체어를 탔다. 다함께 전시회장을 둘러보았다. 면장이 내빈들께 시와 그림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 해주며 돌아보았다.
면장은 일본에 유학하면서, 틈틈이 시 쓰기와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웠다. 도서실에 서 동. 서양에 걸쳐 수많은 예술작품에 대해 공부를 했다. 설명을 잘 해 주었다.
시와 그림의 작품 앞에 면장이 걸음을 멈추었다. 영심에게 “시를 쓰게 된 동기와 그림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주라”고 부탁했다. 영심도 신이나 자세히 설명 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담임선생과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담임선생이 “오늘부터 영심은 정식 졸업생이 됐으니, 더욱 시와 그림에 열중해야한다. 나중에 또 전시회를 갖자”고 등을 토닥거리며 격려해 주었다.
전시회를 마치고 영심은 가족들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넓게 펼쳐진 논에서 자라는 연초록 벼들도 “영심의 장도를 축하 한다”고 인사를 했다.
김병만은 농로를 따라 걸어오면서 “영심이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병을 꼭 낫게 해 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김병만이 며칠 동안 생각해 보았다. 한약으로는 치료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지난번 광주 갈 때 만났던 분이 “운주사에서 축원 드리면 나을 것이다.”는 말이 떠올랐다.
현세의 고달픈 삶, 힘들어 하는 중생들 모습 그려낸 것 같은 부처상들
다음날 아침 일찍, 막내머슴 칠복이를 불러 쌀 한말을 지게에 지게 했다. 조성역으로 갔다. 광주행 기차를 타고 가다, 화순에서 내려가지고 도암면 운주사로 향했다.
화순역에서 화순군 소재지를 지나, 넓은 논길을 따라 한참 동안 걸어갔다. 천태로 라는 좁은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멀리서 운주사가 차츰 차츰 다가오기 시작했다.
운주사 경내에 접어들었다. 9층석탑을 거쳐 조금 올라가니, 칠층석탑이 연이어 나왔다. 그 위에는 광배를 갖춘 불상이 있었고, 이어서 또 다시 칠층석탑이 나왔다. 그 위로 올라가니 석조불감이 보였다. 그 뒤에는 원형다층석탑이 나오고, 더 올라가니 종무소가 나왔다. 이어서 종각과 지장전이 자리 잡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대웅전을 둘러보고 위쪽으로 더 올라갔다. 원형구층탑이 나오고, 옆에는 산신각이 있었다. 산신각 주변에는, 4층석탑, 명당탑, 마애여래좌상, 공사바위 등이 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종각 옆에서 우측 산길로 접어들었다. 5층 석탑이 나타나고 그 뒤로는 7층 석탑이 있었다. 조금 올라가니 시위 불이 있고, 그 곁에 와 불이 있었다.
커다란 와 불을 지나 내려오는 길옆에, 북두칠성처럼 생긴 크고 작은 바위돌이 놓여있었다.주변의 바위 밑에는 수많은 부처상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마치 현세의 고달픈 삶을 살아가면서 힘들어 하는 중생들의 모습을 그려낸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힘들어하는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모진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수많은 부처들의 수행하는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낸 것 같았다. 나무아미타불을 연호 했다.
칠성바위를 지나 입구에 있는 9층 석탑 방향으로 내려왔다. 대웅전 쪽으로 이어진 잔디위에, 크고 작은 부처상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부처님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걱정 없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는 분들처럼 보였다. 고뇌에 찬 여러 모습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운주사 경내를 한 바퀴 돌아본 후, 종무소에 들렀다. 칠복이가 지고 온 쌀을 공양미로 헌납했다. 안내를 맡고 있는 스님이 따라오라고 해, 주지스님께 안내 했다.
김병만이 주지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주지스님께서 “운주사는 우리나라 풍수지리학의 시조인, 통일신라말의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고 설명을 해 주었다.
조선 사찰자료에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세운 이유는 ”우리나라 지형이 떠가는 배의 형상이고, 능주는 뱃구레에 해당한다. 엎어지지 않도록 운주사를 창건했다“고 했다.
지구의 사람들은, 올바른 쪽으로 교화시키기 어려운 별
다음으로 김병만에게 첩첩산중에 있는 운주사에 온 이유를 물었다. 김병만이 “딸이 10년 전부터 아파, 장애인으로 지내고 있다. 부처님께 빌려고 왔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주지스님이 한동안 김병만을 쳐다보았다. “나무아미타불”을 연호하였다.“병이 오는 것도 하늘에서 정해준 운명이니, 운명에 순응해서 살아가야 한다. 부처님께 극진히 빌면, 운명이 순하게 지나갈 수 있게 해주신다. 축원을 드리라” 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실제나이는 수 억겁 살이다. 수 억겁년 동안을 수행을 하셨다. 단 한 번도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깨달음을 완성한 분이다.”고 설명하였다.
천제께서 “전 우주의 별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살아가기 힘든 곳이 지구이다. 지구의 사람들은, 올바른 쪽으로 교화시키기 어려운 별이다.”고 했다.
“지구를 교화시키고 희망을 주기위해, 지구로 갈 지도자를 모집했다. 무수히 많은 부처 중에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손사래를 치며 지원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구에 가겠다.”는 지도자가 없어, 천제 마저 골치가 아파 고민을 했다. 이때,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구의 인간을 교화시키러 가겠다고 지원했다.”고 설명해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온 우주의 셀 수없이 수많은 부처님 중에, 가장 인간을 사랑하신 분이다. 법력이 가장 높아 천제 마저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존경한다.”고 했다.
“도선국사는 불교 공부를 많이 해, 법력이 높았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창건한 운주사에 신선이 내려왔다. 그리고 하룻밤동안, 천불 천 탑을 세웠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니 “시주님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운주사에 있는 부처께 신심을 다해 기도 드려야한다. 부처께서 그 마음을 헤아려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고 격려했다.
김병만이 주지스님께 “덕촌부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인간을 가장 아끼는 분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기도를 한다. 어떤 게 맞는 기도순서인지” 여쭤 보았다.
주지스님이 “모든 부처님은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은, 인간을 측은히 여기고 소원을 잘 들어준다. 같이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지스님은 “큰 석가모니 부처님을 먼저 생각해야한다. 다음으로 사람을 아끼는 보살을 생각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 기도하는 것이 좋겠다.” 했다.
김병만은 고석병이 모르게 장수저수지로 가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김병만은, 매일 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었다. 영심이 완쾌되기를 빌었다. 어느덧 영심의 나이가 22세가 되었다.
그 당시는 20세가 되기 전에 시집을 가야했다. “시집을 가지 않으면 죽은 후, 윤회에 들지 못한다. 구천을 떠도는 몽달귀신이나 처녀귀신이 된다” 고 전해왔다.
김병만은 영심이 22세에 접어들자, 여기저기에 매파를 보내 신랑감을 골랐다. 장가를 오겠다는 지원자가 없었다. 멀리 떨어진 일가친척들에게도 중매를 부탁했다.
김병만이 사윗감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을 때 “고흥군 장수저수지 근처에 딸만 3명을 두고 살고 있는, 고석병이라는 사람이 지원자로 나섰다.”고 연락이 왔다.
고석병의 사는 모습과 인품에 대해 알고 싶었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다. 김병만은 고석병이 모르게 장수저수지로 가보기로 했다.
조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벌교역에 도착했다. 역전앞에 있는 꼬막을 비롯한 서대, 등을 파는 해물전을 지났다. 고흥군에 있는 장수저수지를 찾아갔다.
중도방죽을 지나가자 벌교 여자 고등학교가 나왔다. 거기서 한참 가니 고흥으로 가는 도로에 접어들었다. 바람결에 모래연기 날리는 울퉁불퉁 한 자갈길을 갔다.
자갈길을 30여 분쯤 걸어가니, 한천리에서 흘러내려오는 와우천이 흐르고 있었다.하천을 건너 30여분 걸어가니 쌍암천이 나왔다. 동강면사무소 앞을 지나 걸어갔다.
그 당시는 버스도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 길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우마차를 얻어 타고 다녔다. 면사무소 앞을 지나 장수리에 도착했다.(계속)
/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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