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배롱나무는 100년이 훌쩍 넘은 것처럼 보였다. 30여척에 달하는 높은 키에 많은 붉은 꽃을 피워냈다. 아름다운 화관을 쓴 색시처럼 서 있으면서 그늘을 만들었다.
한시간 정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의원의 보조가 김병만을 불렀다. 영심을 데리고 한의원에게 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여기저기 빠짐없이 진찰을 받아 보았다.
한참 동안을 살펴보고 난 한의원이 김병만에게 “영심은 원래 심한 열병이 왔으므로 열을 내릴 약을 써야했다. 잘 모르고 상체와 하체의 기혈에다 침을 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상체와 하체의 맥을 뚫어, 잘 통하도록 해 주는 약을 써야한다. 기다려 보아야한다. 아이가 장애인을 면할 운명이면 회복 될 것이다.”고 결론지었다.
부락 무당,“영심은 선녀였는데 죄를 지었다, 덕촌부락 공동우물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중..."
허리의 기혈이 잘 통할 수 있는 약 2제를 지어주었다. “집에 가면 허리에 좋은 약초인 부추, 표고버섯, 구찌봉, 오가피 등을 자주 먹이도록 하라”고 알려 주었다.
특히 “오가피는 본초강목에, 한줌의 오가피를 얻는 것은 금은보화를 한 마차 얻는 것보다 낫고, 동의보감에는 허리나 척추가 아프고 다리가 쑤실 때 좋다”고 했다.
“심지어는 오가피는 세 살이 되도록 관절이 아프거나 절룩거리며 걷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걷게 만든다 ”고 기술되어 있다. “척추에 아주 좋은 음식이니 많이 먹이라.”고 했다. “뿌리를 캐다, 집안 텃밭에 심어놓고 나물과 약초로 쓰라”고 권했다.
김병만이 한약방을 나와, 선착장에서 배를 탔다. 배위에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부락 무당이 “영심은 선녀였는데 죄를 지었다. 덕촌부락 공동우물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중, 우물이 말라버려 송화자의 딸로 환생 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영심은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 관세음보살과 부처님께 많은 공양을 올리고 축원기도를 드려도 소용이 없을까? 어린나이에 장애인이 되어 걷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을 풀지 못하면 평생을 장애인으로 지낼 것 같았다.
배위로 날아가는 갈매기와 흐르는 물결을 보며 생각에 잠겨서 조성역에 도착했다. 김병만은 집으로 돌아왔다. 벌교 미리내 한약방에서 허리에 좋다고 추천해준 한약재를 구했다. 영심에게 먹였지만 별 차도가 없어, 걱정을 하면서 나날을 보냈다.
같은 김해 김씨 문중의 조카뻘이 되는 조성면장이 찾아왔다. 영심을 위로 하며 “율어면 이동에 있는, 구룡한약방이 허리 아픈 사람을 잘 고친다는 소문이 있다” 했다.
김병만은 며칠을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율어면에 있는 구룡한약방에 가서 영심을 치료해 보기로 했다. 막내머슴 칠복을 불러 “내일 한약방에 갈 준비를 하라”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가마에 영심을 싣고 조성기차역으로 갔다. 한참을 기다리다 칠복이 영심을 업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예당역과 득량역을 지나 보성역에 내렸다.
보성역에 있는 국밥집에 들러 간단히 아침식사를 했다. 칠복이 등에 영심을 업고 보성역에서 율어면 쪽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우마차를 타고, 한약방을 찾아갔다.
보성역에서 1시간쯤 가니, 겸백면 남양이 나왔다. 남양을 지나서 한참을 가니, 푸르고 깊은 보성강물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강변에는 많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고 대나무 숲에는 푸른 강물 색을 띤 물까치 가족이 무리지어 나르고 있었다.
강물위에 있는 바위와 강변에는 왜가리과에 속하는 하얀 백로들이 서 있었다. 목과 다리가 긴 백로는 얕은 물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었고, 다리가 짧은 백로는 물가에서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르는 물위에는 청둥오리들이 물결을 일으키며 노닐고 있었다. 무심히 강물을 쳐다보고 있던 김병만은 관세음보살에게 “아파 누워 있는 영심을 낫게 해 주십사”하고 축원드리며 “보성강”이란 시를 읊었다.
보성강
보성강은
혼자서 흐르지 않는다
관세음보살처럼
수많은 생명을 품어 안고
행복의 바다를 향해
묵묵히 흐른다
사랑하는 영심이를
품어 안고 흐른다.
“사람은 각자마다 운명이 있다,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한다”
그 시절에 율어면에서 이동리를 찾아가려면, 칠읍리와 장동리를 지나 가야했다. 꾸불꾸불한 산길이 이어졌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 1시간을 걸어 한약방을 찾아갔다.
율어는 깊은 산속으로, 밤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한 토질을 가졌다. 맛있는 밤이 많이 생산되었다. “지형이 알밤모양을 닮았다고 밤 율자를 써, 율어라고 했다” 한다.
칠복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보았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높은 산, 조성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아름드리나무들에 감탄 했다.
멀리서 구룡한약방이라고 쓴 깃발이 보였다. 입구부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환자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모두가 “용하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도 유명한 한의원이 있다는데 김병만은 내심 놀랐다. 안내인에게 “딸아이가 걷지를 못해서 찾아왔다” “한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면 걸을 수 있는지?”물어보았다. 안내인이 면저 영심을 찬찬히 살펴본 후, 한의원에게 데리고 갔다.
한의원이 영심의 관절들과 척추뼈를 눌러보며, 진맥을 해 보았다. “이 아이는 열병으로 죽었어야 했다. 선천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나 목숨을 연명하고 있다.”고 하며, “체력이 좋으므로, 조금 독한 약을 지어 줄 테니 집에서 다려먹도록 하라”고 했다.
용하다고 소문난 한약방을 찾아 좋은 약을 지어 먹이면서 완쾌되기를 바랐으나...
김병만이 한의원에게 “소중한 딸이라, 꼭 건강을 회복하고 뛰어다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돈은 부르는 대로 드릴 테니 좋은 약재를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한의원은 “사람은 각자마다 운명이 있다.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한다.” 고 말했다.
치료가 끝나고 김병만은 율어면 깊은 산길을 헤치며 길을 재촉했다. 어쩌면 영원히 영심이가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캄캄해지는 어둠에 쌓였다.
이동리에서 율어 면사무소 쪽으로 산마루를 돌아갔다. 삼백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붉은 노송 밑에 커다란 남녀 장승이 서 있었다. 옆에는 높은 돌무덤이 있었다.
김병만은 자신도 모르게, 칠복이에게 쉬어가자고 했다. 장승앞으로 영심이를 데리고 갔다. 무릎을 꿇고 토지신에게 절을 올리며 딸아이가 걷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칠복이도 뒤에서 눈물을 흘리며 영심의 완쾌를 빌었다. 3년 동안 영심이 아파서 누워있었다. 김병만은 전국 각지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한약방을 찾아다녔다. 좋은 약을 지어 먹이면서 완쾌되기를 바랐으나 낫지 않았다.
차츰차츰 영심이 낫게 되리라는 희망이 사라졌다. 하는 수 없이 동네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 “백약을 사용해도 차도가 없으니, 살릴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무당이 “천기를 누설하면 안 되지만, 김병만이 좋은 일을 많이했고 남들을 많이 도와주어 왔기에 말해주겠다”고 했다. “영심이 전생에 하늘나라 선녀였는데, 죄를 지어 인간계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들로 완치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관세음보살님께, 영심의 죄를 사하여 병을 낫게 해 주십사 하고 매일 치성을 드려라”고 말했다. 어느덧 영심이 누워 있는지도 3년이 지났다. 국민학교를 다녔다면 6학년 졸업반이었다. 정든 학교를 떠나 중학교에 진학을 하거나 학업을 마치는 동무들도 있었다.
영심 친구들, "우리는 내년 2월에 국민학교 졸업식을 한다"
조성국민학교는 전통이 있었다. 6학년 졸업반이 되면, 졸업 기념으로 봉두산으로 토끼 몰이를 갔다. 토끼몰이는 6학년 전체학생인 360여명이 봉두산 골짜기를 기준으로 좌우로 늘어섰다. 꽹과리나 북을 쳐, 토끼가 놀라 계곡 아래로 달아나게 했다.
그리고 계곡아래에는, 선생님들이 그물을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내려온 토끼가 그물에 잡히게 했다. 모두들 신이 나, 발이 눈에 빠지는 것도 몰랐다. 산을 내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산토끼들이 혼비백산하여 산 아래로 뛰어갔다. 아래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들었다. 작년에는 3마리밖에 잡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올해는 교장선생 집에서 기르는 커다란 진돗개를 데리고 왔다. 진돗개가 산 계곡을 내달렸다.
억새수풀 속에서 숨어있던 여러 마리의 토끼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던 여우도 놀라서 달아나기에 바빴다. 한참동안 토끼를 몰고 있는데, 황소만큼 큰 멧돼지가 진돗개에 쫓겨 산마루 쪽으로 달아났다. 올해는 여우를 포함해서 꿩과 함께 커다란 토끼를 10여 마리나 잡았다. 학생들도 칭찬을 받으며 의기양양해 졌다.
토끼몰이가 끝났다. 영심이와 친하며 짝꿍이었던, 아버지가 조성경찰서 순사로 다니던 영희와 영심이 반의 친구들이 영심의 집을 찾아와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도 영심이가 아픈 원인을 들었다. 그동안 치료를 위해 아버지가 여러 곳에 한약방을 찾아다녔던 이야기를 들었다. 빨리 회복되기를 빌어 주었다.
영심의 친구들이“우리는 내년 2월에 국민학교 졸업식을 한다.”고 말했다. 영심이 부러워 말을 못하고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았다.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슬프게 변해버렸다. 선생님이 “졸업식이 끝나면 친구들을 데리고 찾아 오겠다”고 말하며 영심을 위로했다.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다시 오겠다” 말했다.(계속 이어짐)
/글·사진=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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