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김영심이 온몸에서 열이 나고 의식을 잃은 지 10여일이 지났다. 그동안 덕촌부락에서 용하다는 한약방 주인이 매일 출장을 왔다. 침을 놓아주어도 차도가 없었다.
열이 펄펄 끓어 땀으로 목욕을 했다. 꼼짝도 못한 채 겨우 눈을 떴다. 한약방 주인은 “몸이 허약해져 열이 내리지 않으니 기력을 돋우어 열이 내리게 해야 한다” 면서 송화자에게 “녹두를 가지고 죽을 쑤어 입맛이 돌아올 때까지 먹이라”고 했다.
대부분 환자는 녹두죽을 먹으면 열이 내려가고 소화를 잘 시키는데...
그러면서 “녹두는 원래 인도가 원산지인 한해살이풀로서, 따뜻한 기후를 좋아하고 가뭄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줄기 길이가 보통 70센티미터쯤 자란다.”고 알려줬다. “잎의 표면에는, 거친 털이 나 있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나와, 보통 10여개의 노란 꽃송이가 달린다.” “안두 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녹두의 꼬투리는, 길이가 5센티미터 정도로 가늘고 긴 편이며 털이 거칠게 나 있다. 꼬투리에 알이 15개 들어있어, 익을수록 녹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하며,
“녹두는 잘 익으면 봉숭아꽃처럼, 녹두가 들어있는 꼬투리에서 씨알이 튀겨 나온다. 사방에 흩어지므로 녹두를 재배할 때는 몇 차례에 걸쳐 수확해야한다”일렀다.
“대부분의 환자는 녹두죽을 먹으면 열이 내려가고 소화흡수를 잘 시킨다.” “입 안이 쓰거나 밥맛이 없을 때 죽을 쒀 먹으면 기운이 나고 입이 개운 해진다” 하였다.
“또한 녹두나물은 술독이나 약물의 부작용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숙주나물 이라고도 한다. 나물, 청포묵, 빈대떡, 탕평채 등으로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했다.
숙주나물이라고 불리는 것은 “세종 때의 충신이었던 신숙주가 세종의 은혜를 져 버리고 세조의 편에 붙어 단종을 배신했다. 간사한 마음이 마치 여름철에 숙주나물이 빨리 쉬는 것과 같아서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한의원은 “가장 영양분을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녹두죽 끓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껍질에 영양과 약이 되는 성분이 들어 있어 구태여 버릴 이유가 없다.” 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녹두를 불려 놓았다가 맷돌을 돌리며, 조금씩 윗돌 구멍으로 녹두를 넣으면 죽처럼 갈아진다.” “찹쌀을 물에 불려 녹두와 찹쌀비율을 2:1 정도 섞는다. 불 위에 올려서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어야 한다.”고 자세히 가르쳐주었다.
그러면서 “콩, 팥, 메밀, 녹두 등의 곡식 따위를 타거나, 갈 때에는 맷돌이란 기구를 쓴다.” “맷돌의 각 부위 별 명칭이 다르다.” 하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김병만은 걱정 때문에 아침식사도 못하고...
“맷돌은 현무암을 둥그렇게 깎은 위, 아래 두 짝으로 이루어졌다. 아랫돌 가운데는 수쇠, 윗돌에는 암쇠를 박아 끼운다. 돌리면 회전이 되게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윗돌의 구멍으로 곡식을 넣는다. 아랫돌에는 곡식이 잘 갈리도록 홈이나 구멍을 파놓았다. 윗돌 옆에 수직으로 달린 손잡이를 돌린다.”고 했다. “곡식을 넣지 않고 돌리면, 아랫돌에 파놓은 홈이 지워져 곡식이 갈리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었다.
덕촌부락에 사는 한의원이 매일 김영심을 찾아와 침을 놓아주었다.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김병만이 한의원에게 “별 차도가 없는데 어찌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한의원이 “내 실력으로는 여기 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예당면에 있는 고의원이 용하다고 소문이 났으니, 가서 치료를 받아 보십시오.” 하며 추천서를 써주었다.
김병만은 상머슴 김복동을 불러 “내일 아침 일찍 예당에 있는 한약방으로 영심을 데리고 치료를 받으러 가겠으니, 집안일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해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김병만은 상머슴 김복동과 막내머슴 칠복이에게 “영심을 가마에 태우도록 하라”고 말해 영심을 가마에 태워 예당에 있는 한약방으로 출발했다.
마을 동구밖에 있는 팽나무 밑에까지, 송화자와 행낭어멈 등 온 집안 식구들이 따라 나왔다.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을 흔들었다. 병이 완치되어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영심을 태운 가마가 온 대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인 드넓은 논 옆으로 지나갔다. 한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는, 벼들이 연출하는 농로사이로 멀어져 갔다. 가마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식구들은 돌아갈 생각을 잊어버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김병만은 걱정 때문에 아침식사도 못했다. 농로를 지나가면서 자라고 있는 벼들을 쳐다보았다. 새끼를 많이 친 벼들이 튼튼하게 잘 자라서 이슬을 머금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연록색의 벼들을 쳐다보았다. 어린나이에 알 수 없는 열병에 걸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영심이 가여워 눈물을 흘렸다. 관세음보살님과 부처님 그리고 집을 지키는 성주신에게 빨리 낫게 해주십사 빌며 “비나리”라는 시를 읊었다.
비나리
사랑하는 딸 영심을 위해
관세음보살님께
빌고 또 빌며 지내왔네.
무너지는 가슴 부여안고
꽃반 한가득 차려놓고
밤낮없이 치성을 드려왔건만
영심은 일어나지 못 하네.
하늘이여... ...왜?
간절한 소망을 모르시나요.
나의 정성 외면하나요.
영심이 낫기를 축원 올립니다.
누룩뱀은 늦잠을 자다 잠결에 물렸는지, 주둥이에서 빠져나가 보려고 온몸을 좌우로 비틀고...
아침 7시에 집을 출발했다. 벼 잎에 맺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이슬을 헤치고, 2시간 정도를 농로를 따라 걸어갔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조성역이 나타났다.
조성 역전 옆에 있는 돼지국밥집에서, 국에 밥을 말아 깍두기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했다. 잠깐 쉬었다가 예당역전을 향해 신작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떠오르자, 풀숲에서 잠을 자던 메뚜기와 개구리들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잃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날뛰며 가마가 가는 앞길을 막았다.
가마에 탄 영심이 흔들림에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조심히 걷고 있는데, 논에서 갑자기 하얀 황새 한 마리가 주둥이에 누룩뱀을 물고 나타났다.
누룩뱀은 늦잠을 자다 잠결에 물렸는지, 주둥이에서 빠져나가 보려고 온몸을 좌우로 비틀고 있었다. 황새는 새끼들의 먹이인 뱀을 놓치지 않으려 힘껏 물고 있었다.
어떤 황새들은 새끼들에게 가져다주려고 벼들 사이에서 개구리를 잡았다. 입에 물고 커다란 날개 퍼덕이며 높이 솟아올랐다.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예당 기차역 주변에는 예당장이 서 있었다. 장에는 갈치, 꼴뚜기, 게, 서대, 숭어 등을 파는 어물전이 있었다. 점포마다 생선을 사러온 사람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낚시바늘 또는 연승으로 낚아 올린, 제주도 은갈치를 가장 많이 사고 있다”고 했다. 갈치의 은비늘이 그대로 유지되어, 마치 은빛이 반짝이는 기다란 칼처럼 생겼었다.
장사꾼은 신이나 “은갈치의 은비늘은 화장품, 진주광택제로 사용되는 구아닌이란 색소이다. 날로 먹으면 복통을 유발하지만, 갈치에 붙어 있을 때는 신선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된다. 광채가 많이 나는 것일수록 비싸다”고 하며 하나씩 보여 주었다.
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은갈치 보다 가격이 저렴한 목포 및 남해에서 생산되는 먹갈치 점포였다. “저인망의 그물을 깔아서 잡기 때문에, 많이 잡힌다.” 했다.
“먹갈치는 그물 안에 갇힌 수많은 갈치가 발버둥 치면서 서로 뒤엉키게 된다.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할퀸 자국에서 비늘이 떨어져 거무튀튀하게 변한다.” 하였다.
영심도 가마 안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은처럼 반짝이는 은갈치를 보았다. 검은 색으로 변해버린 먹갈치도 보았다. 이렇게 많은 갈치들이 잡힌 곳을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가 “은갈치는 제주도 쪽에서 많이 잡히고, 먹갈치는 목포 쪽에서 많이 잡힌다. 은갈치는 부드러워서 호박을 넣고 국을 끓여 먹고, 먹갈치는 무를 넣어 조려먹으면 맛이 있다”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장터를 지나 한참을 가니 한쪽귀퉁이에서 꽃게를 팔고 있었다. 톱밥 속에 묻혀있는 꽃게는 톱밥 속에서 탈출하려고 발을 흔들며 구조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그 곁에는 붉은색에 닭처럼 생긴 독도 닭새우, 붉은 꽃새우, 보리새우도 보였다.
"열병이 왔는데 침을 제대로 놓지 못했다,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예당 장을 지나 30분쯤 갔다. 상가가 죽 늘어선 도로변에 광명 한약방이 보였다. 김병만은 가마를 마당에 두고, 김복동에게 영심을 업게 해 한약방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예당장이 서는 날이라, 여러 마을에서 용하다는 한약방을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발 디딜 틈이 없어 한참동안 줄을 서있었다. 할머니가 양보 해 주었다.
한약방 주인은 침을 잘 놓기로, 예당을 비롯한 여러 면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덕택에 저택을 사가지고 많은 제자들을 두고, 하인들을 부리며 환자를 받고 있었다.
한약방 주인이 영심을 보더니 “열병이 왔는데 침을 제대로 놓지 못했다.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가마를 타고 한참을 달려와 피곤한 상태이니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치료순번만 받아놓고, 영심을 데리고 국밥집으로 가 점심을 먹었다. 한약방으로 가서 3시간정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이“치료받을 차례가 왔다”고 알려 주었다. 한약방 주인이 30여분쯤에 걸쳐 온 몸을 진맥해 보았다. 한참동안 여러 곳에다 침을 놓은 후 한약을 먹였다. 그런 후에 “집에 가면 우슬을 채취해서 다려가지고 지속적으로 먹이라”고 알려주었다.
해가 넘어갈 때쯤 예당 한약방을 출발했다. 조성역을 지나 마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넓은 대지를 뒤덮은 벼들 사이로 기차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 해에는 유난히도 많아진 메뚜기 떼들이 마치 하루살이들처럼 모여들었다. 춤을 추며 드넓은 벼들 위로 날아다녔다. 제비들도 덩달아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병만은 붉은 석양아래 펼쳐진 끝없는 녹색의 벼, 메뚜기 떼들과 어우러져 하늘을 나는 제비 떼를 바라보았다. 관세음보살에게 “영심이 꼭 낫게 해 달라.” 빌었다.
김병만이 집에 도착했다. 머슴들을 불러 모아 “내일 아침 일찍 마을 뒤에 있는 봉두산으로 가, "우슬이란 약초를 캐가지고 오라. 영심의 약으로 쓸 것이다." 했다.(계속 이어짐)
/글· 그림=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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