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우리나라에 재배되는 보리종류를 구분해 보면, 전분의 함량이 높아 찰진 맛이 강해 보리밥으로 활용이 가능한 쌀보리, 진하고 구수한 맛이 강해 보리차로 활용하기에 적합한 겉보리, 보리에 두 줄이 나있는 맥주제조용 두줄보리로 나누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고 있는 보리는, 대부분 가을에 파종해 겨울을 나고 다음해 6월 쯤 수확할 수 있는 작물이었다. 대부분 논에서 벼와 함께 이모작으로 재배했다.
김병만의 집에서도 보리수확을 위해, 상머슴 김복동 지휘하에...

보리 싹이 월동하기 적당한 크기는, 너무 어려서 겨울을 지내지 못하고 얼어 죽어버려도 안되고, 너무 많이 자라서 잎들이 동해를 입어도 안 되도록 커야한다. 농가에서는 월동 전에 잎이 5-6개 정도 나올 수 있도록, 날짜를 역산해 씨를 뿌렸다.
파종이나 재배방법은, 논과 밭의 재배에 따라 달랐다. 논은 진흙땅이 많아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논 표면에 1.5-2미터 정도 간격으로, 배수 골을 만들어 준다. 씨를 파종할 때는 논에는 습해 최소화를 위해, 휴립광산파나 휴립세조파로 한다. 밭에서는 산파나 골조파로 뿌리고, 씨는 3센티미터 깊이 정도로 흙덮기를 해준다.
보리 수확기가 되었다. 김병만의 집에서도 보리수확을 하기 위해, 상머슴 김복동의 지휘하에 30여명의 일꾼들이 모여들었다. 논에 펼쳐져 있는 순서대로 베어 갔다.
뜨거워진 6월의 태양아래, 쌓아놓은 보리를 3일정도 말렸다. 논바닥에 벼의 줄기를 엮어 만든 덕석(멍석)을 깔고, 도리깨로 때렸다. 보리 알맹이들이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온 알갱이들은, 갈퀴로 긁어서 굵은 이물질을 제거했다. 작은 이물질들은 풍로로 부쳐, 날려 보냈다. 알갱이만 남겨, 당글게로 끌어다, 덕석가운데로 쌓았다.
한쪽에서 덕석에 보리가 쌓이면, 가마니에 부어 넣었다. 다른 쪽에서는 보리가 들어 있는 가마니가 쌓이지 않도록, 차례차례로 김상만 집에 있는 창고로 져 날랐다.
10여명의 장정들이 보리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일 열로 논둑길을 걸어서 갔다. 뜸부기들은 배가고파 나오지 않은 작은 울음소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뱃속 깊은 곳에서 토해냈다. 보리를 먹으려 날아온 뜸부기들과 지게를 지고 가는 장정들이 어우러졌다. “밀레의 이삭줍기”처럼, 한 폭의 아름다운 농촌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김영심의 나이가 8살이 되었다. 김병만은 가장 예뻐하는 딸 영심이를, 면소재지 국민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었다. 영심이를 데리고 학교로 갔다.
그 시절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농부들이 가난에 찌들어, 학교에 보낼 수업료도 없었다. 특히 여자애들은 학교에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
"개들을 예뻐하며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
특히 영심의 위로, 언니가 둘이나 있었지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여자가 많이 배우면 남편을 잡아 먹는다”는 문중 어르신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쳐 학교에 보내지 못했다. 집안일을 도우며 살림을 배우며, 시집갈 준비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 치마저고리 갈아입고, 학교에 가는 김영심은 한없이 들떠 있었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학교에 가보고싶어도, 아버지가 무서워서 말도 못 꺼냈다. 집안일만 돕고 있었다. 김영심이 부러워 동구 밖 팽나무 밑까지 따라오면서,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어머니 송화자도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 걱정하듯, 말없이 따라왔다. 이렇게 온가족들이 부러운 듯,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따라오고 있었다. 집에서 영심을 가장 잘 따르던 흑구도, 영심이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줄 알고 따라왔다.
영심이 흑구가 길을 잃을까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가지 않고 계속 따라왔다. 영심은 개들이 “주인을 따르는 충성심이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이야기를 해주며, “개들을 예뻐하며 잘 돌보아 주어야 한다”고 했던 어머니 말이 생각이 났다.
집에서 출발한지 30분이 넘어가자,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따라오는 가족들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해, 겨우 가족들과 흑구가 돌아갔다.
처음 가는 학교 길은, 집에서 출발해 1시간쯤 걸어가야 했다. 끝없이 펼쳐진 논 위의 벼들이 초록빛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새 생명을 내뿜으며 자라고 있었다.

옆으로는 논두렁을 따라, 한없이 이어진 널따란 수로가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수초들 사이로 많은 송사리, 물방개, 붕어, 개구리, 미꾸라지 등이 헤엄치고 다녔다. 유독 파란색, 붉은색을 띈 각시붕어가 눈에 띄었다.
가만히 손을 내밀어, 각시붕어를 잡아보았다. 재빠르게 수초사이를 헤엄치던 각시붕어가, 마치 오랜만에 엄마 품에 안기는 아기처럼 손에 잡히는 것이 신기했다.
손에 잡은 각시붕어를 자랑이라도 하듯,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영심에게 “여자아이가 물고기를 잡으면 안되고, 더구나 예쁜 각시붕어를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고 엄한 모습으로 타일렀다. 영심은 깜짝놀라며, 각시붕어를 놓아 주었다.
김병만은 몇 년 전에 “수 백 년 동안 맑은 물이 솟아오르던, 공동우물이 갑자기 말라 버린 일”이 떠올랐다. 이는 “영심이 우물을 지키는 각시붕어였는데, 송화자가 데려가 버렸기에 때문이다.”고 떠들어 대던 무당과 부락 사람들 모습이 생각났다.
학교를 향해 한참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마차가 많은 짐과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갔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버스가 없었다. 버스를 탈수 있을 만큼, 돈을 가진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조성면에서 다른 지방으로 가고 싶으면, 농로로 걸어서 다녔다.
영심은 우마차에 사람들이 타고 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영심에게 “너도 우마차를 타고 학교에 가고 싶으냐?”고 물었다.
영심이 “우마차를 타고 가면, 재미도 있고 힘도 안들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김병만은 “우리 부락에서 학교에 다니는 애가 없다. 혼자 다니기는 너무 멀고 위험한곳도 많이 있다. 내일부터 우마차를 타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 주겠다” 했다. 영심은 우마차를 타면 재미있을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면소재지에 도착했다. 도로변에 늘어선 상점들이 보였다. 상점들마다 영심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과자, 옷, 생활 용품 등 온갖 물건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학교 앞에 이르니, 문방구들이 늘어서 있었다. 각 상점마다 페인트로 쓴 문방구 간판을 붙여놓고 연필, 공책, 색연필, 등 많은 학용품을 쌓아놓은 것이 보였다.
아버지는 많은 선생님 중, 여선생 한분을 찾아 영심을 인사...
김병만은 문방구로 영심을 데리고 들어갔다. 연필, 공책, 지우개, 책받침, 색연필, 도화지 등 학용품을 사주었다. 영심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영심이 “이름표 와 머리띠가 예쁘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것까지 빠짐없이 사주었다.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영심이 맨 처음 놀란 것은, 학교건물이 굉장히 컸다. 한참 쳐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영심은 “이렇게 큰 건물 안에서, 어떻게 교실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 어린 눈으로 아버지를 보며, 정문안으로 들어섰다.

정문안에 들어서자마자, 운동장이 얼마나 넓은지?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차츰차츰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장 주변에는 키가 산만큼 큰 히말라야시다, 플라타나스, 벚나무, 팽나무, 떡갈나무, 은행나무, 측백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느티나무, 팥배나무, 쥐똥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할아버지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겁이나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선생님들이 계시는 교무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많은 선생님 중, 여선생 한분을 찾아 영심을 인사 시켰다.
여선생님이 나이가 27세정도인 것 같았다. 둘째 이모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영심에게 “담임 선생님이시니, 얼굴을 기억하고 인사를 하라”고 했다.
여선생님이 아버지를 보자, 반갑게 인사했다. 영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똑똑하게 생겨, 공부를 잘하겠다”고 반가워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었다. 영심이도 아버지가 시킨 대로, 두 손을 배꼽에 대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을 만난 후, 아버지를 따라 교실을 찾아갔다. 영심이 배정받은 교실은 1학년 3반 교실이었다. 교무실의 맞은편에 있는, 붉은 벽돌건물 1층 왼편쪽에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교실로 들어갔다. 책상과 의자들이 일렬로 줄을 맞추어 늘어서 있었고, 그러한 줄들이 10여개쯤 있었다. 맨 앞쪽으로 길고 넓은 흑판이 보였다.
흑판옆에 풍금이라 부르는 오르간이 있었다. 그 옆에 커다란 모형 주판이 있었다. 좌측면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유리창은 깨끗이 닦아놓아, 파란하늘이 보였다.
교실을 구경하고 있는데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스피커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영심은 조그마한 나무로 된 상자에서, 사람 말이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운동장에 나가 보았다. 교무실 앞으로 높다란 단상이 있었다. 그 앞에 각 학년단위별로 반을 표시한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판 앞에 학생들이 모였다.
영심은 1학년 3반 표시판 앞에서, 담임선생님 안내에 따라 줄을 섰다. 학생 수는 약 60명쯤 되었다. 낯모르는 아이들이 이름표를 붙이고, 부모들과 함께 서있었다.
아침조회가 시작되었다. 교장선생님의 신입생 축하말씀이 있었다. 이어서 담임선생님이 각자의 이름을 불렀다. 교실로 데려가 “이름이 쓰여 진 책상에 앉으라” 했다.
영심은 키가 큰 편이었다.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도록 배정을 받았다. 옆에 앉은 친구는, 면소재지에 살았다. “아버지가 조성 주재소 순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자장면을 아버지와 함께...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1번부터 차례로 교단위에 나가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이어서 장기자랑을 했다. 영심은 언니들에게 배운 “울밑에선 봉선화”를 불렀다.
모두들 목소리도 곱고, 노래도 잘 부른다고 박수를 쳤다, 한곡 더 부르라고 소리쳤다. 하는 수 없이 “나의 살던 고향”을 불렀더니, 선생님과 학생들이 박수를 쳤다.
수업이 끝나고 아버지와 함께,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교문앞에는 넓은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로 둥그런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을 따라 고학년 학생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철봉에 힘들게 매달려 낑낑거렸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가려고, 학교 정문을 나섰다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가 영심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고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 해, 모르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학교 옆에 있는 중국집이라고 간판이 쓰인, 음식점으로 영심을 데리고 들어갔다.'자장면'을 시켜 주었다. 영심은 처음 보는 음식이라, 먹을 줄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면에 자장을 비벼 먹는 것을 보고, 따라서 비벼 먹었다.
한 입을 먹어보니 어찌나 맛이 있던지, 씹지도 않고 계속 입에 넣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했다. 가끔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난생 처음으로, 맛있는 자장면을 먹었다.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논두렁이 어머니와 헤어지기 싫은 아이처럼 계속 따라왔다. 논두렁위에는 민들레, 씀바귀, 봄까치풀, 코딱지나물, 토끼풀 등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다.(계속 이어짐)
/글·그림=이용이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