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민들레는 긴 목을 뽑아들고 노란색, 하얀색의 꽃을 피워냈다. 꽃들은 바람이 불면 떼를 지어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그리고 씀바귀는 머리칼처럼 가냘픈 몸매였다. 노란꽃을 매달고 바람 부는 물결에 따라 무희처럼 춤을 추었다.
봄까치꽃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낮게 피어 있었다. 코딱지나물은 작은 키에 코딱지같은 잎 위로 패랭이 모자를 쓰고, 모자 양쪽에 붉은색 파란색 나팔을 매달고 멋을 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영심이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널따란 농수로에서, 물위를 사뿐 사뿐히 걷는 것처럼 돌아다니는 벌레를 보았다. 신기해, 아버지에게 “저렇게 물위를 걸어 다니는 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어보았다.
많은 것에 호기심 가지고 물어보는 영심이..."공부도 잘하겠다”
아버지가 “저 곤충은 소금쟁이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소금장사, 엿장사, 물거미 등 으로 불린다. 다리에 기름기가 많은 솜털이 뻑뻑하게 나 있어, 물에 젖지 않고 뜬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소금쟁이는 총 3쌍의 다리를 가졌다. 앞다리는 짧은 한쌍으로 먹이를 잡는데 쓰고, 넓게 벌린 기다란 다리 두쌍은 물위를 걷는데 쓴다.” “소금쟁이는 물위를 둥둥 떠다니다 죽은 곤충을 붙잡아 먹고 산다”고 말해주었다.
한참을 걸어갔다. 커다랗게 자란 가시나무가, 하얀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서 있었다. 마치 화장을 하지 않은 순백의 모습으로, 영심을 사랑해주는 어머니 같았다. 신기해서 영심이 아버지에게 “저기 피어있는 하얀꽃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아버지가 “저꽃은 찔레꽃으로, 우리나라 어디서나 흔하게 핀다, 찔레꽃잎은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다소나마 배고픔을 잊게 해준다, 그리고 새로 돋아난 연한 찔레순의 껍질을 벗겨버리고 먹으면, 달콤한 맛을 내며 목마름을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많은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영심이 앞으로 공부도 잘하겠다”고 생각했다. 옆에 앉으라고 말했다. 찔레나무 순 중에서 통통하게 살이 찐 순을 한 움큼 꺾어 와, 껍질을 벗겨주며 먹어보라고 했다. 먹어보니 달 지근한 맛과 향기가 났다.
찔레 순을 먹으면서, 아버지가 영심에게 “찔레란 이름은 찔레 순이 맛이 있고 부드럽기 때문에, 토끼나 다른 짐승들이 모두 먹어버릴까? 겁이 나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시를 달고 있다. 가시가 찌른다는 뜻에서 찔레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집이 가까워지는 부락 앞에는, 눈이 온 것처럼 새하얀 토끼풀들이 피어 있었다. 풀위로 김병만의 집에서 기르는 벌들이 떼로 몰려왔다. 앞 다투어 꿀을 빨고 있었다.
아버지가 영심을 풀밭에 앉으라한 후 “꿀벌은 곤충 중에 가장 부지런하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 집에 기르는 벌이 여기까지 날아와 열심히 꿀을 따고 있다”고 했다.
“너도 꿀벌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토끼풀 꽃을 꺾어 오라”해, 꽃으로 예쁜 반지를 만들어 영심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아버지 김병만과 영심은 꿀벌들이 일하는 모습과 토끼풀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에 있는 찔레나무에, 각시거미가 거미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김병만이 어여쁜 각시거미를 보고 “각시거미에게 물어 본다” 시를 읊어 주었다.

각시거미에게 물어 본다
끝없는 우주에 구름 그물을
매달아 내고 있는 각시거미
바둑판위에 바둑알을 놓듯
항성인 태양을 중심으로
주위에 여덟 개의 행성과
일백 육십 여개 위성을 매달고
수많은 소행성을 배치하여
구름 그물위에 태양계를 매단다
누가 지구에 매달아 놓았는지
각시거미에게 물어 본다.
김병만, 딸들에게 “글씨를 쳐다보면 안 된다”
덕촌부락이 가까워지자, 팽나무가 조금씩 크게 보이고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구 밖에 다다르자, 언니들과 동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어, 같이 집으로 향했다. 큰언니가 영심에게 “학교에 가니 재미있었느냐?”고 물었다. 학교에 가면서 보았던 신기한 장면들, 대궐만큼 커다란 학교건물 등을 얘기 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조성주재소에 다니는 순사라는, 옆 짝꿍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언니들은 부러워했다. “시간이 나면 자기들도 학교를 구경시켜주라”했다.
영심은 “오늘부터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길을 잘 익혀 놓았다.” “언니들이 시간이 나는 데로, 학교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하며 손가락을 걸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언니들이 새로 받아온 책들을 구경시켜 달랬다. 보여주니 “책들이 참 예쁘게 생겼다”고 했다. “앞으로 학교에서 글씨를 배워, 책을 읽게 되면 언니들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말을 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시절은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다. “여자는 학교에 가서도 안 되고, 특히 글씨를 알아서도 안된다”고 했다. 김병만도 딸들에게 “글씨를 쳐다보면 안 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등교길, 아버지가 우마차꾼에게 “태워다주라”고 부탁했다. 영심은 무명으로 된 책가방을 허리에 매고, 우마차 한쪽 켠에 앉았다.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우마차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논들은 마치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처럼, 초록색 벼들이 펼쳐져 있었다. 길가를 뛰어다니며 노니는, 개구리들의 까만등이 보였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바람결에 흔들리는 모습이 어디선가(천상에서 직녀가 짜준 베를, 물푸레나무의 푸른 물에 물들여 바람에 말리던 모습) 보았던 것 같았다. “빨래 줄에 널어놓은 푸른 천”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이 보여,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 해 보아도 어디서 무었을 하고 지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흰 구름만 떠다니고 있었다.
학교 앞 농수로에서, 짝꿍에게 보여주려고 물방개를 잡았다. 몸길이가 4센티미터 쯤 되고, 납작하며 타원형이었다. 몸 색깔은 등 쪽은 검은 갈색에, 녹색 윤이 났다.
김영심이 짝꿍에게 보여주려고, 책상위에 물방개를 올려놓았다. 짝꿍은 신기한 듯이 바라 보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영심이 “물방개”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몰려들었다. 신기한 듯이 만져보면서 “어디서 잡았냐”고 물어보았다. “물지는 않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영심이 자랑스럽게 으쓱이며 “만져보라”고 했다. “재미있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하며 물방개를 책상위에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물방개가 날개를 퍼덕이며, 계속적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모두들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물방개가 몸을 뒤집어 날아갈 준비를 하더니, 공중으로 “붕” 하고 날아올랐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아이들이 물방개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쫓아갔다. 점점높이 날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었다. 학생들의 머리위로, 날아서 창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아이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영심은 아이들에게 “내일 수업이 끝나면, 모두들 같이 가자. 농수로에서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물방개를 잡아주겠다”고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온 영심을 언니들이 맞이했다. 아버지의 눈에 띄지 않는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하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물어 보았다.

영심은 언니들과 약속한대로, 책가방을 풀어놓았다. 먼저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언니들도 그림을 그려 보고 싶은 눈치였다. 영심이 크레용으로, 도화지에 그림 그리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려 보라 했다.
언니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운 후, “오늘 책 읽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었다. 영심은 언니들에게, 책을 읽는 방법, 글씨 쓰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 주었다.
김영심은, 학교에 물방개, 엿장수, 장구애비, 물장군, 민물가재, 개아재비 등 신기한 곤충을 잡아 갔다. 같은 반 동무들에게 보여주고, 같이 데리고 놀았다. 동무들에게 인기가 높아가며, 점점 친해져 갔다. 즐겁게 지내며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영심이 씩씩하게 학교에 갔다 돌아오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열이 펄펄 끓기 시작...
집에 오면, 기다리고 있는 언니들과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렸다. 바쁜 가운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10살에 접어들어 3학년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이렇게 영심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태백선인이 구름을 타고, 서왕모에게 달려갔다. “죄를 짓고 하늘에서 쫓겨난 선녀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로 불러, 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고 말씀을 드렸다. 서왕모가 “원래는 목숨을 거둬야 했다. 관세음 보살님의 부탁이 있으니, 어찌할까?”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태백선인에게 영심선녀의 죄를 뉘우치게 하는 마지막 방법은 “목숨을 거두지 않고 장애인을 만들어, 애를 낳고 행복하게 살게 해 보는 것이다.”고 서왕모가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태백선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서왕모에게 “인간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사는 것은 가장 큰 행복입니다. 왜 벌이라고 하십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서왕모가 “태백선인은 인간계에 내려가 결혼을 해본적도 없고, 자식을 가져 본적이 없다. 인간이 가장 행복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했다. “전생에 선녀였던 김영심이, 우랑에 대한 사랑을 잊어야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을 얻는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서, 지신의 자식보다 사랑하는 것은 없다.” 했다.
영심이 3학년이 되어, 씩씩하게 학교에 갔다 돌아오던 어느 날 밤이었다. 갑자기 열이 펄펄 끓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모였다. 머리에 찬물에 담근 수건을 올려주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보았다.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김병만은 다음날 일찍, 덕촌부락에서 가장 용하다는 한의사를 모셔왔다. 약을 지어 달여 먹이고, 침을 놓아보았다. 별차도가 없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계속 이어짐)
/글·그림=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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