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아저씨는 부잣집으로 찾아가“김병만이 김해김씨 양반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마음이 착한 노총각입니다.”고 설명했다.
부잣집에서는 과부가 되어버려 하루하루를 슬프게 살아가는 며느리 송화자를 노총각 김병만에게 시집보내야 할지? 결정하는 집안 회의가 며칠 동안 열리게 되었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부잣집에서 돈을 주겠다고 연락이...
부잣집에서는 송화자를 부인으로 데려가고, 딸아이도 데려가“친딸처럼 보살피고 원하는 만큼 학교를 보내주겠다는 조건으로 많은 돈을 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결혼을 한 달 앞두고 부잣집에서 돈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김병만은 생전처음 들어보는 많은 액수의 돈이라 뛸 듯이 기뻐하며 돈을 받으러 새벽 일찍 출발했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김병만은 기차역 옆에 있는 조성장터 외에는 가 본적이 없었다. 기차를 타는 것도 처음인지라, 설레는 마음에 조심하며 기차 안으로 들어갔다.
기차 안은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매우 넓었다.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어 발 디딜 틈도 없는데, 수많은 사람 사이로 찐 달걀 장수가 달걀을 팔며 지나가고 있었다.
김병만은 달걀장수의“찐 달걀 사려”하는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 자신은 “아버지처럼 무능해 어머니 고생시키지 않고, 열심히 일해 부자로 살아가겠다.” 결심했다.
기차는 조성역을 출발해 넓은 조성평야를 가로질러 갔다. 차창너머로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모습이, 누군가 가을 수채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김병만은 말로만 들었던 조성평야가 이렇게 넓은 줄은 처음 알았다.“끝없이 펼쳐진 조성평야에 자신의 논은 한 평도 없다”는 생각에 잠겨 가난한 신세를 한탄했다.
기차는 많은 칸을 끌고 감에도, 꽥꽥 소리를 지르며 쉬지 않고 달려갔다. 기다란 굴을 지나가자, 김병만은“이렇게 신기한 기차는 누가 만들었을까?”하고 감탄했다.
굴을 지나자, 집들이 많이 보이며 도시가 나타났다. 옆에 있는 분에게“여기는 어디인데 이렇게 집이 많습니까?”하고 물어보았더니“벌교에 왔다”고 가르쳐 주었다.
김병만은 벌교역에서 내렸다. 역 앞에 살고 있는 아저씨와 역전다방에서 만나 대추차를 마셨다. 부잣집에 얽혀 있는 여러 사연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송화자를 시집을 보내려고 벌교, 순천, 여수, 보성, 광주 등 여러 곳에 매파를 보내 좋은 혼처를 찾고 있다. 송화자 시가집에서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했다. 사연을 듣고 난후“송화자의 전 남편이었던 박중양이 가지고 있었던 고기잡이 배 3척, 논밭 등 많은 재산들을 김병만에게 나눠 주겠다.”하는 재물에 대해서 들었다.
다방을 나와, 김병만은 아저씨와 함께 벌교역 앞에 있는 해물전들을 지났다. 철로길 아래에 있는 장암리 산등부락 행, 돛을 단 배에 여러 승객들과 함께 승선했다.
커다란 배에 놀란 갈매기들, 김병만은 푸른 하늘을 보며...
그 당시는 여객선이 아닌 고기잡이배에 돛을 달고 승객들을 태워 날랐다. 승선해서도 의자가 아닌 배의 바닥에 주저앉아, 짐짝처럼 취급받으며 간신히 타고 갔다.
배는 벌교역전에서 연결된 철도 밑에 있는 벌교천까지 밀고 올라온 바닷물을 따라 갈대를 헤치고 바다를 향해 출발했다. 커다란 배에 놀란 갈매기가 날아올랐다.
난생처음 타보는 배위에서 김병만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송화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려보며, 현재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잘 진행될지 궁금했다.
돛단배는 천천히 물결을 따라 내려가면서, 마을이 나타날 때마다 포구에 들려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타기도 하면서 바닷물 위를 달려 산등부락 웃 나루에 도착했다.
포구에 내려 송화자의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웃 나루 부락은 50여 가구쯤 되는 제법 큰 마을이었고, 그 마을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기와집이 있는 집이었다.
대문을 들어선 아저씨와 송화자의 시아버지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잠시 무언가를 상의를 했다. 김병만을 불러 유자차 대접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일가 분들이 왔다.
"어느 김씨의 후손이며, 족보가 있는 양반인지?”
잠시 후 송화자의 시아버지가 송화자의 시숙과 시동생, 시누이 등 7명을 차례로 인사 시켰다. 모두들 김병만에게 큰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가장 많은 질문은“김병만이 어느 김씨의 후손이며, 족보가 있는 양반인지?”에 대해서였다. 김병만이 “저는 김해김씨 양반이며, 아버지가 유학자였다”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으로 많은 질문은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서 김병만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외동아들이며, 현재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질문을 마친 송화자 집안사람들은 장시간동안 회의를 하며 때로는 고성이 오갔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김병만과 아저씨를 “회의장으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왔다.
송화자의 시아버지가 김병만과 아저씨에게 회의결과를 발표했다.“김병만의 생활력은 아버지가 무능해, 본인이 직접 생계를 지탱했으므로 뛰어날 것이다.”하였다.
송화자와 어린 딸을 버리지 않고 평생 돌봐주며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문제는“김병만이 어머니에게 효자이므로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잘 지켜 나갈 것 같다.”그리고“김병만이 어렸을 적부터 고생을 했기에 재산은 잘 지켜 나갈 것이며, 양반이므로 남에게 천대받지 않고 고생을 하지 않으면 잘 살아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송화자는 순천 읍내에 있는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문학을 전공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매가 들어와 재미로 선을 한번 보았는데 신랑감에게 첫눈에 반해, 머나먼 타향인 웃 나루 마을에 살고 있던 밀양박씨 집안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 송화자는 남해바다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어촌마을에서 신랑 박중양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과부가 되면 혼자 살아가야
송화자가 고기잡이 배를 3척 가진 박선장과 2살짜리 딸을 하나 데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던 어느날, 박선장이 고흥군 앞바다에 있는 거문도로 고기잡이에 나섰다.“갑자기 몰아치는 풍랑을 만나 세상을 떠났다.”고 슬픈 사연을 자세히 설명해 주며 “젊은 나이에 홀로된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니 김병만이 잘 해주어야 한다.”하였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과부가 되면 혼자 살아가야 하지만, 송화자가 너무 어린 나이에 신랑을 잃었다. 어린 딸 하나만 데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타향에서 쓸쓸히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형제들이 많은 의논을 해보았다. 그 결과“송화자와 딸이 다시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박선장의 배 3척과 논 30마지기를 팔아 돈을 주기로 했으니, 조성에서 논밭을 사 행복하게 잘 살아라.”고 했다.
이어서 송화자와 딸을 데리고 오라해서 앉혀 놓고, 시아버지가 “송화자는 어린 딸을 데리고 재가하기로 결정되었으니, 한 달 후에 결혼식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송화자가 재가를 않겠다고 말했으나, 시아버지는 “우리도 보내기 싫지만 나이어린 너를 평생 동안 혼자 살아가라 할 수 없어 결정했으니 따라야한다”고 타일렀다.
송화자가 울기 시작하자 함께 모인 가족들도 같이 울면서 울음바다가 되었으나, 김병만은“각시가 될 송화자는 어떻게 생겼나?”하고 궁금해서 몰래 쳐다보았다.
송화자는 크지도 않은 중키에 쳐녀처럼 날씬한 몸매를 지녔고, 오 똑 솟은 콧날에 눈썹은 반달같이 예쁘고 입술은 앵두처럼 귀여워 김병만이 그리던 여인이었다.
송화자와 가족들이 떠나자, 장인어른이 김병만을 불러 속곳을 주면서 “바지 안에남의 눈에 띄지 않게 잘 입으라.”고 해서 “이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바다에서 소금기가 실린 바람이 불어와...
시아버지는“이 속곳에는 논 50마지기쯤 살 돈이 들어 있다, 요즈음 먹고 살기 힘들어 배에나 기차 안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해서 잘 가져가야한다.”고 말했다.
김병만은 겁이나 사람들이 많이 있는 배위에 올라 탈수 없었다. 송화자의 집에서부터 바다를 막아 만들어 놓은 십리가 넘는 진흙 뚝방길을 걸어 벌교역으로 갔다.
난생처음 걸어보는 뚝방길의 한쪽에는 초록저고리를 입고 바람결에 춤추며 벼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바다에서 소금기가 실린 바람이 불어왔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끝없이 이어진 갯벌위로 칠게, 농게, 박하지(돌개 또는 민꽃게), 금게, 털게, 주름송편게, 톱장절게, 만두게, 청게 등 수많은 게들이 다니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반짝이는 별을 따다가 뿌려놓은 것처럼, 푸른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내며 물방울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갯벌에서 볼 수 있는 회청색의 몸 위에 파란색 반점이 있고 눈이 가운데로 몰려있는 망둑어도 보였다. 망둑어는 지느러미를 이용해 갯벌 위를 팔딱팔딱 뛰어다니며 높이뛰기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보기에는 눈만 동그랗게 크고 길쭉해 무척 둔하게 생겼지만, 얼마나 예민한지 멀리서 발자국소리만 들리면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벌교역에서 기차를 탄 후에 객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출입구에 혼자 있으면서, 마치 수채화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은 푸른 하늘을 보며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을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양반대접도 받지 못하고 갖은 설움을 겪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발버둥을 쳐 봐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절망적인 나날 속에 생을 포기 해버리고 싶었는데 어머니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조성역에 내리자마자 고생만하고 사셨던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마치 달리기를 하는 소년처럼 벼들이 자라고 있는 사이로 이어진 농로를 달려갔다.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들도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결에 따라 춤을 추며 김병만에게 “그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고생 많았다”며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들어서자마자“어머니 제가 왔습니다.”하고 큰소리로 외치니, 방안에 홀로 앉아 삼베를 짜기 위해 길쌈을 하고 있던 어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김병만이“어머니 이제 제가 장가를 들게 되었고, 많은 재물이 생겼으니 논과 밭을 많이 구입해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그것보다 먼저 색시 될 사람은 만나 보았느냐?”하고 색싯감에 대해 먼저 물어보았다.
대지 5백평, 방 5개인 안채, 그 옆에 방이 5개인 행낭채...
그러자 김병만이 “색싯감을 만났는데 키는 중키에 얼굴은 공주처럼 예쁘게 생겼고, 어머니처럼 교양과 인품이 있어 보였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안심하였다.
김병만이 처갓집에서 받아온 전대를 어머니 앞에 내놓고 “장인 되실 분이 많은 돈을 주었으니, 이 돈으로 집도 짓고, 논밭도 사겠습니다.”하고 큰소리로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김병만에게 “장인 되실 분이 많은 돈을 준 이유를 아느냐?”하고 하시며, 많은 돈을 준 이유는 “너에게 시집오는 색시에게 잘 해주라는 뜻이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김병만은 거간꾼 아저씨를 찾아가 “대지 5백 평에, 방이 5개인 안채, 그 옆에 방이 5개인 행낭채, 다른 한쪽엔 창고와 외양간 등을 지어 달라”주문했다.
“집은 한 달 안에 지어주고, 논 30마지기와 밭을 살 수 있도록 알아봐 달라”하였더니, "마을 뒤에 있는 봉두산 앞에 네모반듯한 집터가 있다”하며 추천해 주었다.
김병만은 대목수에게 다른 양반집처럼 마당보다 3자정도 높은 토방을 만들게 했다. 그 위에 3자정도 높은 마루와 안방을 만들어 "집 앞에 있는 논들이 한눈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대목수는 며칠 후 집을 지을 인부들과 함께 왔다.
집터를 다듬을 토공 5명, 나무를 다듬어 집을 지을 목공 7명, 기와를 얹을 와장공 3명, 집의 외벽을 회로 바를 석회공 2명, 등 20여명에 달하는 인부들을 데려왔다.(계속)
/이용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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