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맞았다.” “맞은 것 같다.” “안 맞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성의 요람,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의 교수 사회에서 벌어졌으니 더욱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방인 당시 대학 총장은 '때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후배 교수는 '맞았다'고 했다가 돌연 '맞지 않았다'는 말로 바뀌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오락가락 행보를 보임으로써 말의 신빙성과 교수의 신뢰마저 잃고 말았다.
전북대 총장-후배 교수(총장 후보) 간 얽힌 ‘폭행 비화’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닌 전북의 거점 국립대학교에서 총장 선거를 전후로 벌어진 일이다. 일부 언론에선 '맞았다'고 주장했다가 사법당국의 수사 과정에서는 말이 뒤바뀐 당사자는 총장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했다가 낙마한 현직 교수란 점에서 교수 사회 전체의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건은 지난 2013년 11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주시내 한 음식점의 전북대 교수들 회식자리에서 서거석 당시 전북대 총장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이귀재 전북대 교수의 문제 제기를 근거로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전북도교육감에 출마했던 이 교수의 고교 동문이자 전주교대 교수인 천호성 후보의 폭행 의혹 주장이 선거방송 토론회에서 부각돼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천 후보는 당시 상대 후보였던 서거석 후보(현 교육감)의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서 교육감은 전면 부인했다. 더 나아가 양 측은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쌍방 고소·고발해 사건이 법정으로 이어졌다. 일부 방송에서는 이 교수의 ‘맞았다’는 음성이 생생하게 보도되고 상대 후보의 폭행 의혹이 계속 제기되자 당시 서 후보는 시종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이 교수로부터 폭행 진술과 당시 폭행 관련 진료기록부 등을 확보한 뒤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 또한 지난해 11월 25일 서 교육감이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기소했다.
검찰, 서 교육감 허위사실 공표 혐의 벌금 300만원 구형...법원, “이 교수 발언 신빙성 없어” 엇갈린 판단

결국 서 교육감은 지난해 4월 26일, 5월 13일 지방선거 TV토론회와 5월 2일 SNS를 통해 "전북대 총장 재직 당시 이귀재 교수를 폭행한 적 없다"고 허위 발언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올 7월 14일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 심리로 열린 서 교육감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서 교육감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교에서 형법을 가르친 사람임에도 아무렇지 않게 법령을 위반해 허위사실을 공표했고, 교육감에 당선된 이후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폭행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고인은 선거 과정에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고 잘못을 구해 정당하게 유권자로부터 선택받을 기회를 외면하고,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상대 후보자를 고발하기까지했다"며 "최근 전주지법 정읍지원에서 상대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범죄 사실에 따라 벌금 1000만원의 유죄 판결이 선고된 사례를 참고해 달라"고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키이자 폭행 피해자로 지목된 이 교수의 발언을 신빙할 수 없다고 보았다. 검찰의 판단과는 전혀 상반된 재판부의 시각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법원, 서 교육감 1심 무죄 선고...검찰, 판결 5일 만에 ‘항소장 제출’

전주지법 제11형사부(노종찬 부장판사)는 8월 25일 열린 1심 재판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서 교육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기소한지 9개월 만에 첫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이 교수를 신뢰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 초기 진술을 신빙하려면 충분한 근거나 객관적 자료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경찰 1회차 조사와 2회차 조사 내용을 비교해 보면 이 교수가 진술한 폭행당한 경위, 폭행의 정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경찰 초기 조사 때 피고인에게 폭행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이후 피고인과 대질 조사, 검찰 조사,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며 "형사소송의 기본원칙상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보다 법정 진술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교수의 진술은 이 법정에 나와 진술한 참고인들의 진술과도 배치된다"면서 ”이 교수가 1, 2회 경찰 조사 이전까지 다른 사람에게 '피고인이 뒤통수를 때렸다'거나 '휴대폰으로 머리 부분을 찍었다' 등으로 얘기해 수단, 방법, 양상이 상당히 다르고 시간의 경과에 따른 기억의 혼동으로 보기 어려운 점과 이 사건 모임 직후 동료 교수들에게 폭행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도 정작 교수평의회의 진상조사규명위원회 조사에는 응하지 않는 점, 모임 현장에 있던 동료교수들은 법정에서 '폭행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점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고 이유를 제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1심 판결 5일 후인 8월 30일 양형 부당, 법리 오해를 이유로 전주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서 교육감은 다시 한번 항소심 법정에 서게 됐다.
검찰, '서 교육감 폭행 의혹' 위증 혐의 이 교수 자택 등 압수수색...사건 ‘급반전’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검찰은 서 교육감의 허위사실 공표 사건의 핵심 증인인 이 교수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서면서 사건이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승학)는 10일 이 교수의 자택과 대학 사무실 등 2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 교수가 서 교육감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거짓 증언을 했다고 판단,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 교수는 수사 과정에서 "서 교육감으로부터 뺨을 맞았다"고 말했다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묵직한 것에 부딪혔다"는 식으로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신뢰성을 얻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법정에서도 폭행당한 사실을 극부 부인했다가 마침내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이 교수는 피해자 신분에서 피의자로 전환된 상황이다. 검찰은 압수수색한 증거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이 교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또 그가 의도적으로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앞서 서 교육감은 지난해 6·1 지방선거 당시 천호성 후보가 제기한 '동료 교수 폭행 의혹'에 대해 방송 토론회나 SNS 등에서 "어떤 폭력도 없었다"며 부인해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 과정에서 이 교수는 폭행을 당한 피해자로 지목됐으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 셈이 됐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 등 법정 발언 ‘위증’으로 밝혀질 경우 ‘후폭풍’ 거셀 듯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교수는 재판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왜 그런 내용을 썼는지, 그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는 등의 증언을 했지만 앞서 경찰 조사에선 '뺨을 맞았다'는 진술을 하고, 검찰 조사에서는 '묵직한 것에 부딪혔다'고 진술한 것이 부메랑을 자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오락가락한 그의 진술 때문에 자신이 한 발언으로 인해 위증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다. 앞서 검찰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계속 하면 위증죄로 처벌 받는다"고 여러차례 경고한 바 있어 이 교수의 수사 결과에 따라 서 교육감의 재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도미노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누가 거짓말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 본격적인 진실 공방이 펼쳐질 차례다. 지역 거점국립대인 전북대 총장과 총장 후보자였던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이 거짓말을 했느냐에 따라 대학 신뢰도는 물론 교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 손에 법전과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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