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유체이탈 화법.
'신체에서 정신이 분리되는 유체이탈 상태처럼 자신이 관련되었던 일을 남 이야기하듯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어처구니없는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마치 구경꾼처럼 제3자의 위치에서 말한다고 해서 '구경꾼 화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데 최근 전북에서 발행되는 두 일간신문이 보도한 이스타항공 정상화 관련 보도가 바로 유체유탈 화법을 사용한 대표적 사례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전북민언련)은 15일 ‘전북주요뉴스 피클’(모니터 보고서)에서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이 14일과 15일 보도한 기사들 중 ‘이스타항공 정상화 작업 본격화 내년초 운항 목표(새전북신문 14일 11면), ‘근로자 고용문제 해결 실마리... LCC 재도약 발판 마련’(전북일보 15일 3면)은 유체이탈 화법을 사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창업주·사측 입장 지나치게 강조하는 지역언론들 왜?
이는 지난 12일 서울회생법원이 회생 계획안을 통과시킨 이스타항공이 다행히 내년 초 운항 재개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지만 해고된 직원 600여명의 복직과 밀린 급여 문제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가운데 회사가 공중 분해될 뻔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책임이 큰 창업주 또는 사측 입장에서 해당 언론사들이 지나치게 조명했기 때문이다.
새전북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이스타항공이 법원의 회생계획안 인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정상화 절차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며 그간의 배경 등을 설명한 뒤 “창업주로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상직 의원도 직원 임금 체불과 관련한 무거운 마음을 일부 덜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또 전북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법원이 이스타항공 회생안을 인가하면서 정상화를 위한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며 앞으로 전망 등을 소개한 뒤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의 창업자인 무소속 이상직 의원(전주을)은 ‘(법원이 회생안을 인가하면서)이스타항공이 다음 달 정도면 정상화에 성공해 근로자들을 재고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여 기쁨으로 생각한다’며 ‘회사를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전북민언련은 “이상직 의원이 이스타항공과 관련된 배임·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를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당사자의 발언을 보도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이라며 “또 이상직 의원이 이스타항공 사태의 원인 제공자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새전북신문의 ‘직원 임금 체불과 관련된 무거운 마음을 일부 덜 수 있게 됐다’는 보도는 ‘유체이탈 화법’이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회생계획 통과된 것은 좋지만 해직 노동자 복직 문제 아직도 남아
이와 관련해 전주MBC는 이날 ‘이스타항공 정상화 순항... 내년 2월 운항 재개?’란 제목의 기사에서 “전라북도 향토기업으로 출발한 이스타항공이 중국의 사드 보복과 보이콧 재팬 운동, 그리고 창업주의 배임·횡령 의혹 등으로 경영이 악화돼 올 초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다”면서 “회사가 공중 분해될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지난 12일 서울회생법원 주관하에 열린 관계인 집회에서 채권자 82%의 동의를 받아 회생계획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기사는 “이스타항공 노동조합은 회사에 남은 직원 500명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있게 된 상황에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며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6000명이 점진적으로 회사에 돌아올 수 있도록 연대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내용도 강조했다.
방송은 이날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단 회생계획이 통과된 건 좋은 일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이 장기적으로 돌아와야 회생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이스타항공이 정상화까지 남은 과제가 아직 많다. 해고된 직원들의 복직 투쟁은 여전히 법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 1년 가량 운항이 중단돼 운항증명(AOC) 발급이 내년 하반기까지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인수기업인 ㈜성정의 추가 자금 투입이 필수적인 가운데 AOC 발급 관련 비용뿐 아니라 항공기 리스비, 향후 발생할 직원 임금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전북일보·새전북신문 16일 사설, 전날과 유사 화법

상황이 이런데도 전북일보와 새전북신문은 16일 사설에서도 전날 보도한 내용과 비슷한 논조를 보였다. 전북일보는 사설 ‘이스타항공 운항 정상화 기대 크다’에서, 새전북신문은 사설 ‘이스타항공, 회생에 거는 기대’에서 다른 지역언론들에 비래 강한 집착과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전북민언련이 지적한 유체이탈 화법이 이날 사설에서 또 등장했다. 새전북신문은 특히 “창업주로서 재판을 받는 이상직 의원도 직원 임금 체불과 관련한 무거운 마음을 일부 덜 수 있게 됐다”며 “경영난으로 종업원 체불이 빚어지자 소유 주식을 전량 포기하는 등 회생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오던 터다”고 강조했다.
전북일보도 “이스타항공은 전북에 대한 채무가 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이스타항공은 전북에서 태어났고 전북 도민들과 애환을 같이 했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또 “전북을 연고로 한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도 주문했다.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무소속)은 이스타항공 주식을 가족 회사에 헐값에 넘기는 등 5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됐었다. 이 바람에 이스타항공은 8개월간 임금을 체불하고 600여명을 무더기 정리 해고했지만 검찰은 수사를 질질 끌다 1년 만에야 구속영장을 신청해 비난을 받았다.
이 의원은 이 외에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재판 중인 가운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지난 11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의원을 비롯해 3명의 다른 의원들의 징계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창업주는 재판 중, 600여명 직원들 행정소송 진행 중... 풀어야 할 과제 산적
한편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0월 경영 위기를 이유로 기장 등 승무직 근로자 1,683명 중 605명을 해고했다. 이에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는 지난해 12월 서울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서울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지난 5월 노조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자 이스타항공 사측은 즉각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이에 중노위는 서울 지노위 판정을 취소하고 정당한 해고였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다시 이스타항공 기장 등 승무직 근로자들은 이달 12일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스타항공 노조는 “이스타항공이 해고 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이스타항공은 정리해고 전에 고용유지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고 노조와 객실승무원 근로자 대표가 제안한 조종사ㆍ객실승무원에 한정된 무급순환 휴직을 실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스타항공 해직 근로자들의 행정소송은 현재 진행 중인 상태다. 이들이 바라본 이스타항공의 현 상황과 창업주 및 회사 측에 대한 입장은 일부 지역언론들이 관망하고 주장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시각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박주현 기자
관련기사
- 정상화 작업 들어간 이스타항공, 해고된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나?
- "나는 불사조..." 이상직, 저러다 4년 임기 다 채우나?
- "이상직 재판 질질 끌더니 석방...신청도 안 했는데"
- "민주당, ‘전주을’ 위원장 선출 앞서 진정한 사과·책임부터"
- "나는 불사조" 이상직, 대통령 사위 물고 늘어지나
- 이상직 세 번째 '재판 불출석’, 재판장 "또 정당한 이유 없이..."
- 이상직, 또 불출석 재판 "뻔뻔함에 놀랍다" 비난 고조
- 이스타항공 인수자 찾았지만 짙은 '암운', 왜?
- '이상직 조카' 보석 출근, '이상직법'...무엇이 문제?
- 구속 '이상직 조카' 보석 후 출근, "뒤로 가는 이스타항공” 비난
- 검찰 “반성하지 않은 이상직, 징역 10년 554억 추징” 구형
- 이스타항공 기존 주식 가치 0원...전북기업 이미지·신뢰도 ‘곤두박질’
- 이스타항공 다시 날아오른다고?...605명 해직 근로자들은 어떻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