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이야기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소재지에서 남쪽 금마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머지않아 교창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740번 지방도(태성길)가 갈라진다.

740번 지방도는 동쪽으로 고개를 넘어 완주군 화산면과 고산면으로 연결된다. 740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 여산향교가 보이고, 육교(태성육교)를 통해서 호남고속도로를 넘어가게 된다. 육교 남쪽 아래에는 여산휴게소가 있다.

이 길은 왼쪽의 여산면 태성리와 오른쪽의 호산리의 경계를 따라 이어지는데, 2013년에 개통한 천호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터널이 완공되기 이전에는 작은독고개라는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완주군 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이 나타나고, 조금 더 가면 딱히 자연적인 경계라고 할 것이 없이 안내판 하나로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로 익산시와 완주군의 경계를 넘어가게 된다.

완주군 화산면의 운산리로 넘어가면 왼쪽에 누하마을이 있고, 대안학교로 유명한 세인고등학교를 지나 화산면 면소재지와 경천저수지 그리고 고산면 소재지에 이르게 된다. 고산면은 지금은 완주군의 한 개 면이지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고산현과 고산군의 소재지였던 곳이다.

보통 시와 군의 경계는 산줄기나 하천과 같이 자연적인 지형물이 경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곳의 익산시와 완주군의 경계는 일반적인 경계와는 조금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줄기(분수계)가 지나는 천호터널 위의 작은독고개가 익산시와 완주군의 경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분수계가 행정경계가 아니고 한참을 지나 특별할 것이 없는 지점이 시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표면만을 보았을 때는 산줄기 너머에 위치하는 누항마을은 익산시 여산면이 아니라 완주군 화산면에 속해야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천호산과 함박봉을 연결하는 산줄기 상에 위치하는 작은독고개 너머에 위치하는 누항마을이 완주군이 아니고 익산시에 속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땅 속을 흐르는 지하수의 흐름을 보면 누항마을은 완주군보다는 익산시 여산면에 속하는 것이 맞다. 즉, 누항마을에 내리는 빗물과 지하수는 완주군 쪽이 아니라 익산시 여산면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누항마을의 지하에는 천호동굴이라는 석회동굴이 있고, 이 동굴의 물은 누항마을에서 여산면 호월리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이러한 땅 속 물의 흐름을 알고 행정구역의 경계를 정했을까?

‘누항(漏項)’ 이라는 지명의 의미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에 위치하는 누항(漏項) 마을의 원래 이름은 시어목, 시여목, 세목, 샐목 등으로 불리웠는데, 이것을 한자화 한 것이다. 그 의미는 물이 새어 들어가는 좁은 목이라는 의미의 ‘샐목’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샐 누漏, 목 항項). 즉, 물이 샌다는 의미와 좁은 목 지형이라는 두 가지 지형적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과 남서쪽 방향 고개 너머에 위치하는 여산면 호산리 호월마을 사이에는 작은독고개(또는 누항재, 해발 270m)가 있는데, 2013년에 익산시 여산면과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사이의 2차선 개설과 함께 해발 230m 지점에 천호터널을 개통하였다.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와 호월리에는 호산(壺山), 호월(壺月), 누항(漏項), 천호산(天壺山), 바람굴(風穴) 등의 지명이 있는데, 호(壺, 병이나 단지 호)는 유리병의 안과 같이 비어있는 공간이 있다는 의미이고, 누(漏, 샐 누)는 물이 샌다는 의미를 지니는 지명들이다. 완주군 비봉면과 익산시 여산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천호산(500.2m)은 속이 빈 병과 같은 산이라는 의미의 호산(壺山)이었다가, 나중에 천주교와 관련하여 천(天) 자가 붙어 천호산(天壺山)이 되었다. 천호산 남쪽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는 천주교의 성지인 천호성지가 있다. 이러한 지명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산의 아래에 텅 빈 곳 즉, 동굴이 있고 그 곳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간다는 것을 지명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국여지승람(1481년) 여산현 편에는, ‘在郡東七里有川 出高山縣西流 漏入壺山麓伏流 達西麓爲川 穴圓徑丈餘’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군의 동쪽 7리에 하천이 있는데, 고산현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스며들어 호산 산록의 땅속으로 흘러 호산 서쪽으로 나오는데, 물이 나오는 구멍이 1장 정도 된다. 이와 같이 과거부터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고 어디로 나오는 가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동굴의 입구가 막혀 있어서 존재를 잘 모르고 있다가, 1965년 천호동굴의 존재를 재발견했다. 즉, 천호동굴의 북동쪽 고개 너머에 위치하는 누항마을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땅속의 동굴로 흐르다가 남서쪽의 호산리(壺山里)의 호월(壺月) 마을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누항이라는 지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표에 내린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복류(伏流)한다는 점, 그리고 남서쪽 호월마을에 구멍이 있어서 그 쪽으로 물이 나온다는 점이다. 자연 상태에서 지하에 동굴이 형성되는 것은 제주도 만장굴과 같이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공간일 수도 있고, 단양의 고수동굴이나 강원도 삼척의 환선굴과 같이 석회암 지역에서 탄산칼슘이 물에 녹아 동굴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여산면 호산리 호월마을에서는 천호동굴이 발견되었고(1965년), 동굴 바로 위에서는 익산석회공업사라는 회사가 석회암을 채굴하여 석회비료를 만드는데 사용하였는데, 지금도 당시에 채굴하고 운반할 때 이용되었던 작업 구멍 6개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2005년 복구공사 완료, 여산면 호산리 산 1-4번지). 이러한 점으로 봐서 이곳의 지하동굴은 석회암 지역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물에 의해서 만들어진 석회동굴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산줄기와 다른 행정구역

이 지역의 산줄기는 금남정맥(진안 주화산 ~ 부여 부소산, 전북 진안군과 완주군의 경계를 이룸) 중 태평봉수대(803m)와 싸리재(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사이의 고개)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왕사봉 ~ 미륵산을 연결하는 금남기맥에 해당한다. 금남기맥은 왕사봉 – 칠백이고지 – 선녀봉 – 시루봉 – 작봉산(418m) – 까치봉(456m) – 옥녀봉(410.4m) – 함박봉 - 천호산(500.2m) – 미륵산(430.2m)으로 이어지면서, 주로 충남 논산시와 전북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이다.

이 곳의 산줄기를 좁게 보면 금남기맥의 옥녀봉 – 함박봉 – 소룡고개 – 370.5m 고지 – 고내곡재 – 누항재 –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인데,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은 이 분수계를 넘어 분수계의 동쪽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분수계가 행정경계를 이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특이한 행정 경계인데, 이러한 행정 경계는 과거부터 이어져 왔던 관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누항마을은 여산면의 호산리와의 사이에 작은독고개와 같은 분수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은 익산시 여산면으로 되어 있다.

지표상으로는 천호산에서 시작되는 고산천 상류는 여산면 태성리의 성치마을과 누항마을을 거쳐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의 누하마을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동북쪽 방향). 즉, 지표상에서는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은 고산천 수계로 만경강 수계에 속한다. 하지만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은 지표상으로는 고산천의 상류에 속하는 것과 같이 보이지만, 실제 이 지역에서 내린 빗물은 지하로 스며들어 남서쪽의 호산리를 거쳐 강경천으로 흘러 금강으로 흘러가는 금강 수계에 해당한다. 즉, 이 지역은 지표수와 지하수의 흐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경계를 이루는 완주군 화산면과 익산시 여산면의 행정구역 변화를 살펴보면, 완주군 화산면은 1914년 운서상면과 운서하면을 합하여 화산면이 되었다. 화산면의 면 중심지는 운제리였지만 1937년에 경천저수지가 만들어져 수몰되면서 현재의 화평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익산시 여산면은 조선시대 때 여량현과 낭산현을 통합하여 한자씩을 취하여 여산현이 되었다. 여산현은 군내면, 천동면, 천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여산면이 되었다. 이 중 누항마을이 있는 태성리(台城里)와 천호동굴의 입구가 있는 호산리는 과거 여산현의 천동면 지역이었다.

태성리(台城里)는 원래 지명이 대성리(臺城里)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부터 태성리로 불리워졌다. 태성리에 속해 있던 누동(漏洞)에는 누항마을(시어목, 샐목)과 성치(성재골) 마을 등 2개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호산리에는 천호동굴, 문수사, 백련암, 백운암 등이 있다.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와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간에는 740번 지방도가 통과하는데(고산 ~ 여산), 2013년 5월에 3.65km의 2차선이 개설되었으며, 이때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과 호산리 호월마을을 연결하는 천호터널(2008.12~2013.5.20., 448m)도 완공되었다. 작은독고개는 해발 270m인데, 그 밑을 통과하는 천호터널은 230m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익산시 여산면과 완주군 화산면을 연결하는 740번 지방도는 동쪽 고산면에서 17번 국도와 연결되고, 서쪽에서는 익산시 여산면에서 1번 국도와 연결되는 지방도이다. 과거 도로인 작은독고개 정상(270m)에는 50번 송전탑이 있으며, 채석장의 상부에 해당한다.

누항마을의 하류에 위치하는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누하마을에서는 여산면 태성리 방향(과거 여산현 방향), 충남 논산시 연무대읍 고내곡면 방향(과거 황화정 방향), 소룡재(290m) 방향(연무대읍 구자곡 방향) 방향의 3개 길이 있어, 과거에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로 추정된다. 즉, 화산면 운산리는 과거 고산현과 현재 논산시의 가야곡면, 은진면, 논산면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천호산 정상에 위치하는 천호산성(전라북도 기념물 99호)은 산정상을 둘러싸면서 만들어진 테뫼식 산성이며, 백제시대와 고려시대에 중요 지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육군부사관학교 훈련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천호산의 남쪽에는 천주교의 천호성지(완주군 비봉면 내월리)가 있으며, 서쪽 호산리에는 4개의 불교사찰(문수사, 백운사, 백련암, 천일사)이 위치하고 있고, 북쪽에는 작은독고개와 성치마을, 동쪽에는 완주군 비봉면의 대치리가 위치해 있다.

석회암 지형과 천호동굴

석회암(limestone)은 퇴적암으로 주성분은 탄산칼슘(CaCo3)이다. 탄산가스가 용해된 물에 탄산칼슘이 용해되어 특이한 지형이 발달하는데, 이를 카르스트 지형(Karst)이라고 한다. 카르스트 지형은 지상과 지하에서 각각 특이한 모습으로 나타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강원도 남동부(영월 일대)와 충북 동북부(단양 일대)에 고수동굴, 고씨동굴 등 석회암 지형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 지역의 석회암 지대는 고생대 조선누층군 지역에 해당한다.

지표면에 나타나는 석회암 지형으로는 석회암이 용식(물에 녹는 작용)을 받아 탄산칼슘이 제거되고 남은 잔류물로 이루어진 붉은색의 토양(흙)인 테라로사(terra rossa), 그리고 붉은 흙인 테라로사가 유실되어 아래에 있던 석회암의 기반암이 노출된 울퉁불퉁한 라피에(lapie 또는 카렌 karren), 석회암의 용식으로 지표에 형성되는 움푹 파인 지형인 돌리네(doline), 마을이 들어설 정도의 큰 와지(움푹 파인 지형)인 우발라(uvala), 길고 좁은 커다란 계곡을 이루는 폴리에(polije) 등이 있다.

특히 밭 가운데 움푹 파인 형태로 나타나는 돌리네는 가운데 부분에 테라로사가 두껍게 퇴적되는 경우가 많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빗물이 빠지는 배수구가 있어 장마철에도 물이 고이지 않는데, 보통 구멍이 난 ‘시루’ 아래 부분에 비유되기도 한다. 물이 잘빠지기 때문에 주로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석회암 지역인 충북 단양에서는 이러한 돌리네 지형에 만들어진 밭을 ‘못밭(池田)’이라고 부른다. 즉, 물이 고이는 연못에 있는 밭이라는 의미이다. 깔때기 모양으로 움푹 파여 있어서 내부에는 등고선 형태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일 것 같지만 물이 어디론가 빠져 나가버리기 때문에 밭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용식이 많이 진전되고 흙이 쓸려나간 곳에서는 오목한 지형 보다는 볼록한 잔구 형태의 지형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를 원추 카르스트(cone karst)라고 한다. 중국 남부의 장가계에서 나타나는 탑 카르스트(tower karst)나 베트남의 하롱베이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석회암 지형이 이런 종류이다.

석회암 지역에서는 돌리네 등을 통해서 지표면의 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가고, 지하에는 석회동굴이 있어서 지하수의 통로로 이용된다. 이 지하수는 탄산칼슘을 녹여 지하의 동굴을 더 크게 성장하게 만든다.

익산시 여산면에서 볼 수 있는 석회암 지형은 먼저 석회동굴인 천호동굴이 있다. 그리고 천호동굴 바로 위에서는 석회암을 채석해서 석회비료를 만드는 채석장이 있는데, 석회암은 시멘트의 재료와 석회비료의 재료로 이용된다. 그리고 천호산 북쪽에는 삿갓을 엎어 놓은 모양의 지형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돌리네로 보인다.

석회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하면 변성암인 대리암(대리석)이 된다. 대리석은 석재와 비석, 숫돌, 다듬이돌 등으로 이용되는데, 숫돌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여산면(礪山面, 숫돌 려 礪)의 지명에 잘 나타난다. 그리고 천호산 동쪽의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구라실에서도 숫돌이 생산되는 것으로 보면, 이 주변 지역이 석회암과 그것이 변화하여 성질이 변한 대리석 산지인 것으로 보인다. 즉, 천호동굴과 누항마을을 중심으로 석회암이 분포하고, 그 주변 지역에는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대리암(석) 지역이 둘러싸여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천호동굴의 입구가 있는 여산면 호산리 호월 마을에서는 석회비료를 생산하기 위하여 석회석을 채취했었는데(논산석회와 익산석회공업사, 호산리 산 1-4번지), 2000년대 초반 가동이 중단되고, 현재는 석회석 채광지를 복구한 상태이다(2005년 11월). 그러나 현재도 6개의 채취 및 운반 시설이 남아있다. 또한 누항마을과 경계를 접하고 있는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누하마을에서도 석회석을 채취했었으나, 2016년부터는 채취가 중단되었다. 현재도 채취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태성리 누항마을과 호산리 호월마을 사이의 분수계(작은독고개, 숙이네집 부근)에는 과거 소를 키우는 천호목장이 있었는데, 2011년 문화재청에서 자연환경보전지구로 지정하여 현재는 시설을 철거하고(3개동의 시설물이 있었음) 철조망을 설치하여 출입을 금하고 있다.

천호동굴

천호동굴(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사람들은 이미 과거부터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가 1965년에 다시 재발견되었다. 주민들은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나오고, 겨울에는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고 하여 바람굴(풍혈 風穴)이라고도 했었다. 주민들은 바람귀신이 굴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고 접근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굴 입구에는 풍월신장(風月神將)이라고 새긴 돌 비(碑)가 서 있고, 굴의 끝에는 누항(漏項)이라는 글자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천호동굴이 다시 발견된 것은 이곳에서 석회암의 채굴작업을 하던 논산석회라는 회사가 설립한 호산리 남북교회의 황성호 목사에 의해서였다. 황목사는 한 노파가 산록 남쪽 돌무덤 사이에서 새나오는 찬바람이 신경통 치료에 효능이 있다며 움막을 짓고 지내고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하루는 그 노파가 집을 비운 사이에 큰 돌을 치우고 기어들어가 본 것이 동굴 발견의 계기가 되었다. 이 후 처음 동굴을 발견했던 황목사와 석회석 채광자인 김모씨가 천호동굴의 관리권을 주장했으나, 문화관광부는 임야소유권자인 여산 송(宋)씨 대종중에게 관리권을 인정했다.

천호동굴은 1965년 7월초에 발견되었고, 1966년 2월 28일 천연기념물 제177호로 지정되었다. 위치는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 산 21번지이다. 천호산(500.2m, 天壺山)의 북쪽 능선 지하애 형성된 석회 동굴인데, 이 능선에는 폭 100m 정도의 석회암층이 산맥의 주행과 대각선으로 형성되어 있다.

천호동굴은 1965년 7월에 발견된 이 후 전북 산악회에 의해서 1965년 8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 동안 탐사작업(12명)이 이루어져, 전북일보에 3회에 걸쳐 게재하면서 내부 구조가 알려졌다. 그 후 1993년 건국대의 최무웅 조사팀에 의해서 다시 조사가 이루어졌다.

두 번의 조사에 의해서 밝혀진 것은 천호동굴의 생성연도는 약 4억 ~ 2억 5,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모암은 고생대 오오드비스기(약 4억년 전) 조선계 대석회암통(大石灰岩統)의

석회암과 석회암층의 변성퇴적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천호산 산록에 위치하는 누항마을에서 5%의 경사로 서쪽으로 복류하는 하천을 따라 형성된 길이 687m 정도의 노년기 석회동굴이다. 내부는 위험하고, 진흙이 많이 퇴적되어 있어서 통행이 상당히 불편했다.

천호동굴은 주굴이 1개(687m), 지굴이 9개가 있으며, 동굴은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동굴 시작점은 여산면 태성리 누항마을 쪽이고, 출구는 호산리 호월마을의 동굴입구이다. 석회채석장과 동굴 사이의 거리는 50m 정도이다(동에서 서로 침입하는 과정).

천호동굴 내부에는 종유석(鍾乳石), 석순(石筍), 석주(石柱), 석회화 단구 등이 있으며, 입구에서 250m 들어가면, 높이 약 30m, 너비 약 15m의 큰 구덩이의 중앙 정면에 높이 20m가 넘는 커다란 석순이 솟아 있는데, 지름은 5m 정도이다. 이것을 수정궁이라고 명명했다. 발견 초기 입장객들에 의해서 많이 훼손되어, 현재는 동굴 생성물 등의 보호를 위해 공개제한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고 있다.

단, 관리 및 학술 목적 등으로 출입하고자 할 때에만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동굴 상부 지표면에 해당하는 지역에 있던 천호목장도 2011년 문화재청에서 자연환경보전지구로 지정하면서 폐쇄하고 철조망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호월리 쪽에서 이루어지던 석회암 채취도 중지된 상태이다.

작은독고개(천호터널)를 기점으로 북동쪽에 위치하는 누항마을(지하의 천호동굴이 시작되는 지점)의 해발고도는 220m이고, 남서쪽에 위치하는 호월마을에 있는 천호동굴의 출구는 150m로, 두 지역의 해발고도 차이는 약 70m이다. 지도상에서의 거리는 약 700m인데, 지표상에서 중간 가장 높은 곳 270m(작은독고개)이다. 즉, 지표상으로는 여산면 호월리 호월마을(150m) - 작은독고개(270m) - 태성리 누항마을(220m)로 이루어져 있고, 지하로는 경사 5% 정도의 천호동굴이 북동쪽의 누항마을에서 남서쪽의 호월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지표면의 산줄기만을 고려한다면 누항마을은 완주군 화산면에 속해야 맞지만, 실제 물의 흐름이 이루어지는 지하동굴을 고려한다면 현재와 같이 여산면에 속하는 것이 맞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우리의 선조들이 과거에 어떻게 지하의 물 흐름까지를 고려하여 행정구역의 경계를 정했을까? 놀라울 뿐이다. 즉, 이 지역의 행정구역은 지표상의 분수계가 기준이 된 것이 아니고, 지하에서의 물의 흐름이 기준이 된 것이다.


<참고 문헌>

권혁재, 2006, 지형학, 법문사.

김정길, 2001,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 신아출판사.

익산문화원, 2007, 익산향토지Ⅲ.

유재영, 1993, 전북전래지명총람, 민음사.

최무웅, 1993, 천호동굴(天壺洞窟) 학술조사 보고서, 건국대학교 환경과학연구.

/조성욱(전북대 지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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