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갈림길에서 서성이는 버릇이 있다. 이리저리 걷다가 보면 길은 항상 여러 곳으로 뻗어 있다. 이리 갈 수도 저리 갈 수도 있는 자유 재산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리 가는 것도 저리 가는 것도 모두가 불안이 내재되어 있는 현실 때문에 그 갈림길에서 서성이는 버릇, 그 버릇이 죽기 전까지도 이어진다는 사실이 가끔씩 나를 안타깝게 한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향해, 당신의 고립과 당신의 감정, 당신의 운명을 향해, ‘네’라고 말하십시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는 저도 모르고 당신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길은 분명 삶 속으로, 현실 속으로, 시급하게 꼭 필요한 곳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 길을 견딜 수가 없어 스스로 삶을 포기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마음을 편하게 해줄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과 삶의 의미를 배반하고 ‘보통 사람’들 편에 붙는 방법으로는 그 길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얼마 못가서 지금보다 더 큰 절망에 빠질 테니까요.”

헤르만 헤세의 <편지>에 나오는 글이다. 헤세의 말처럼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결국 하나밖에 없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 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은 쓸쓸한 행복이기도 하지만 불안한 불행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에게 손짓하며 오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선택하고서 그 길이 희망의 길인지 절망의 길인지도 모르고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나날이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 될 것인지. 이렇게 혼돈 속을 항상 헤매는 것도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벽부터 일어나 양평으로 회의를 갔다가 돌아오는 천변에 연둣빛 능수버들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시 구절이 있다. 김수영 시인의 <봄밤>의 첫 소절과 함께 봄은 깊어가면서 점점 사라져 간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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