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이 소설 '각시붕어'
하늘에는 아름다운 뭉게구름이 떠가고, 묘지 옆에 높게 자란 상수리 나무에서 자벌레들이 기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꿈속에서 본 견우와 직녀가 생각이 나서 '자벌레'란 시를 지어 읊으며, 앞날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빌었다.
구름 자(尺)벌레
구름을 재고 있는 자벌레
조릿대처럼 가는 몸매에
쇠고랑을 매달고 살아간다
허리를 깊이 굽혀
두 팔꿈치를 땅에 붙이고
발에 닿도록 머리를 숙여
한자 한자 재고 있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며
배를 짜던 직녀를 생각해내고
견우와의 사랑을 떠 올린다
지울 수 없는 그리움에
가냘픈 모가지를 쳐들고
자尺속에 갇혀 사는 자벌레
영심이 베 짜서 생계 유지해 온지도 어느덧 5년...
영심이 베를 짜서 전국상인에게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해 온지도 어느덧 5년이 흘렀다. 영심의 딸 정자도 8살이 되어 조성국민학교에 입학하여 매일 학교에 다녔다.
영심은 정자가 학교에 다니는데 불편이 없도록 우마차에 태워 보내고, 조성장날은 영심이 행랑어멈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마중 나가 장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먹었다. 학교에서 일어난 여러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생에 가장 행복한 날을 보냈다.
6년의 세월이 흘러 정자가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벌교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해, 새벽에 일어나 기차를 타고 벌교역에 내려 학교 가느라 바쁜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중학교에서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고, 학비를 면제받아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영심은 고생하고 아팠던 과거를 잊어버리고 딸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가끔가다 정자가 “아버지는 어디계시느냐?”고 물어 올 때에는 “아버지는 돌아가셨다”고 대답하며,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야속한 고석병을 마음속 깊이 묻어버렸다.
제일 가슴 아픈것은 “정자가 자신의 성이 아버지를 따라야 하는데, 어떻게 외삼촌의 성을 따르고 외삼촌의 호적에 올려 졌느냐?”고 출생의 비밀을 물어볼 때였다.
정자, 장애인 어머니가 학비 주는 것 가슴 아파
중학교를 졸업한 정자는 벌교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친구들과 함께 학교 옆에서 자취를 했다. 학교에 다니느라 금요일에 학교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일요일 오후에 친구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자취방으로 갔다.
다행히 정자는 고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아 학비부담을 덜어주었다. 외가 쪽 할머니, 어머니 등의 외가혈통을 이어 받았는지, 시나 글짓기를 하는 백일장 대회에 나가 상을 많이 타와 어머니와 마을사람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정자가 어머니에게 대학에 가고 싶어 “서울에 가서 돈을 벌며 대학에 다녀 출세를 한 후에 집에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가출을 해버렸다. 사실 영심은 초라한 옷을 입고 맛있는 고기도 사먹지 않으며 정자를 대학에 보내주려고 돈을 모았으나, 정자는 장애인 어머니가 학비를 주는 것을 가슴 아파했다.
서울로 올라가 대학을 다니려고 공장에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 같은 공장에 다니던 총각이 정자에게 반해 쫓아다니며 결혼을 졸라대어 총각 집에를 갔다. 총각 부모님들은 정자를 반갑게 맞으며 “총각이 외동아들인데 대학원을 졸업했고, 집도 살만큼 살고 있으니 시집을 와서 둘이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간절히 권했다.
정자의 딸들도 모두 잘 자라 결혼하여 아이들을 둘씩이나 두고...
남자가 마음에 든 정자는 대학은 나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신랑 부모님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살다보니, 딸만 세 자매를 두고 바쁘게 살게 되었다. 정자의 딸들도 모두 잘 자라 결혼을 하여 아이들을 둘씩이나 두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서, 영심 외할머니 집에를 다녀가자고 조르면 데리고 와서 같이 지냈다.
영심은 정자에게 가장 많이 심고, 인기도 좋은 삼베 짜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시간이 날 적마다 정자와 함께 삼을 재배하는 밭으로 나갔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삼을 가리켜며 삼의 역사, 재배방법, 삼베 생산과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삼은 대마라고도 하며 곧은 뿌리는 지하 40Cm까지 뻗어 들어가지만, 곁뿌리는 왕성하게 발달하지 않으므로 잘 뽑힌다. 높이는 3m정도 자라며, 줄기는 세로로 골이져있고 유조직 안에 형성 돼있는 내초섬유가 베짜는데 사용하는 인피 섬유가 된다.
삼의 잎은 모양이 손바닥처럼 5-9개의 작은 잎으로 되어있는데, 줄기 아래쪽에서는 마주나고 위쪽에서는 어긋난다. 재배할 때는 배게 심어서 가지들이 나오지 못하게 해야 품질 좋은 삼베를 생산할 수 있다. 즉 삼들을 성글게 심어놓으면 가지를 많이 치지만, 베게 심으면 꼭대기에서 약간의 가지만 나와 좋은 삼을 만들 수 있다.
삼은 단일성 식물로서 풍매화를 하며 자웅이주이다. 대체로 암나무가 수나무보다 길고 크며 가지침이 적고 마디사이가 길게 자라고, 일반적으로 수나무는 개화하여 화분을 비산시키고 곧 말라죽지만 암나무는 쉽게 시들지 않은 특징이 있다는 등 삼의 재배에 필요한 특징을 잘 알아야만 양질의 삼베를 생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밤이 되면 동네 아낙들과 둘러 앉아, 정자에게 삼실을 만들기 위한 삼의 가공부터 삼베짜기까지 전 과정을 시범을 보이며 가르쳐 주었다. 마치 영심이 예전에 베짜는 일을 배울 때처럼 정자도 한번 배우면 능숙하게 작업을 해 냈다. 동내 아낙들은 깜짝 놀라며 “어머니를 닮아서 손 끝이 야무지다.”고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늘어놓았다. 정자는 삼베 짜는 일에 취미를 붙여서 어머니 영심과 밤새워 많은 베를 짰다.
"정자가 어머니 영심의 삼베짜는 재주를 물려받았다" 칭찬
전국 각지에서 베를 구입하러온 사람들도 정자가 짜놓은 삼베를 보며 품질이 좋다고 칭찬을 하며, 어머니와 딸의 삼베짜는 솜씨가 누가 더 뛰어날지 시합을 해 보자고 제안하며 상금을 걸었다. 시합의 조건은 캄캄한 밤중에 불을 켜지 않고 삼베를 짜서 누가 짜놓은 삼베가 더 훌륭한지 평가 해보는 방법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드디어 방안의 모든 불을 끄고 동네 아낙들과 전국에서 온 삼베장사 아저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삼베짜기 시합이 벌어졌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있는 조용한 밤중에 “딸각 딸각”하는 삼베 짜는 소리만 밤하늘에 메아리쳐 온 동네에 울려 퍼져갔다.
한시진이 지나자 불을 켜고 둘이서 짜놓은 삼베를 살펴보던 심판관들이 깜짝 놀랐다. 마치 천상에서 직녀가 황금 이슬로 짜놓은 천상의 옷감처럼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사람이 놀라 한 발짝씩 물러서며 한 벌 한 벌 살펴보았으나, 한사람이 짜놓은 삼베처럼 똑같이 품질이 뛰어나 아무도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하는 수없이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정자가 어머니 영심의 삼베짜는 재주를 물려받았다고 칭찬하며, 삼년 후에 다시 시합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모두들 좋은 결정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며 백설기떡, 무지개떡, 인절미, 식혜, 과자, 수정과, 잡채, 등 여러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벌이며, 밤새워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보냈다.(계속)
/이용이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