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체육의 태동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운동회는 1896년 5월 2일 동대문 밖 삼선평(현 삼선교 일대)에서 허치슨(Hutchison) 영국인 교사 지도하에 열린 영어학교 화류회(花柳會)가 효시로 알려진다.
상투에 망건을 쓴 학생들은 만국기가 나부끼는 운동장에서 300보 경주, 600보 경주, 1350보 경주, 공 던지기, 대포알 던지기(포환던지기), 멀리뛰기, 높이뛰기, 줄다리기, 당나귀 타고 달리기 등의 경기를 치렀다.
이 땅의 양반 지배층들이 땀흘리며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서양선교사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힘든 짓을 왜 하누, 하인을 시킬 일이지..’라며 혀를 끌끌 찼을 정도로 체육(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던 시절.
화류회는 각 학교로 퍼져나가 1908년 5월 이화학당(梨花學堂)에서도 열린다. 여학교 운동회를 구경한 사람들은 ‘학생들이 정숙하게 발걸음을 같이하는 자태나 경주하는 모습은 진취적 기상으로 가르침의 힘’이라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과년한 여자들이 다리 벌리고 운동 하다니 말세가 왔다’며 임금께 상소문을 올리는 양반도 있었다.

군산은 1899년 5월 1일 개항하였다. 따라서 군산의 체육은 100년이 넘는 개항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 국권 피탈(1910)과 일제 강점기, 혼란했던 해방정국, 한국전쟁 등 격변기 속에서도 왕성한 활동으로 도입기, 시련기, 침체기, 성장기 등을 거치면서 면면히 이어진 저항정신과 끈기, 투혼의 결집체로 성장해왔다.
1894년 봄, 의료선교사 드루(Drew)와 레이놀즈(Reynolds) 선교사는 군산을 시작으로 호남지방을 답사하고 돌아간다. 이듬해 3월, 드루는 전킨(Junkin) 선교사와 군산진영이 있던 수덕산 기슭에 초가 두 채를 마련, 포교소를 설치하고 금강·만경강 강변마을 중심으로 의료 선교를 펼친다. 1896년 봄에는 서울에 있던 가족들도 내려와 합류한다.
드루와 전킨은 개항(1899)과 함께 수덕산 일대가 조계지역으로 지정되자 전도선 정박이 편리한 지금의 구암동산에 선교스테이션을 개설하고, 구암교회를 비롯해 영명학교(제일고 전신), 멜볼딘 여학교(영광여고 전신), 안락소학교(구암초 전신) 등을 차례로 설립한다.
서양의료기관, 교회, 미션스쿨 등의 설립 시기가 말해주듯 군산은 호남 최초로 서구 문물이 들어온 지역으로 꼽힌다. 체육 역시 전북에서 가장 빠르게 보급되었다.
양반은 아무리 급해도 뛰어서는 안 되고, 삼복더위에도 갓을 쓰고, 버선을 신어야 체면이 유지되던 시절. 영명학교에는 교과목에 체육이 있었고, 교사(서양 선교사)들은 남녀 학생과 군산 지역 기독청년회 회원들에게 새로운 학문(영어·수학 등) 외에 축구, 야구, 정구, 밴드, 음악, 율동(체조), 스케이트 등을 가르쳤다.

영명학교는 수업이 끝나면 교사와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축구, 농구, 야구 등을 하였으며 광주 숭일학교, 목포 영흥학교, 순천 매산학교 등 호남지역 5개 기독교계 학교들이 교환경기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독립협회 간사로 활약하다가 체포령이 내리자 군산으로 피신하여 선교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오긍선(1877~1963)은 알렉산더(Alexander) 선교사 권유로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켄터키주 센추럴 대학과 루이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가 되어 1907년 가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에 파견하는 의료선교사 자격으로 귀국한다.
구암병원 원장에 취임한 오긍선은 보통과로 운영되던 영명학교를 4년제 고등과와 2년제 특별과(초급대학 과정) 인가를 받아 명실상부한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나게 한다. 그해가 1909년이었다. 1911년에는 서양식 3층 본관 건물이 완공되고, 축구부가 조직되면서 군산의 축구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군산의 야구는 축구보다 조금 앞선 1910년을 전후해 들어온다. 일본인이 세운 군산심상고등소학교(군산초등학교 전신)에도 야구부가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일제 강점기 가장 발달한 것은 스포츠였다. 그것은 구속과 핍박으로 정치적 자유가 없고, 모든 방면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조선의 청년들도 오직 운동경기에서만큼은 일본인과 대등하게 겨루면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조종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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