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중의 자전거 이야기(12)

위트레흐트시와 유튜브 영상 'How the Dutch got their cycle paths' 이야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중심부의 레오나르도 호텔앞 브렌덴부르크거리의 교차로.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간 묵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 중심부의 레오나르도 호텔앞 브렌덴부르크거리의 교차로.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3일간 묵었다.

파리에서의 변화가 최근 진행형이라면 네덜란드의 자전거는 완성된 모습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찾았던 파리나 독일의 뮌스터 역시 ‘우리의 모델은 네덜란드’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자전거 원정대가 유럽을 찾았던 2월 말과 3월 초는 아직 겨울이었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고 기온도 한국보다 2,3도 이상은 낮은 상태였다. 그리고 때마침 눈과 비가 내리는 날도 맞이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체류 3일간 묵었던 위트레흐트 시내 한복판의 레오나르도 호텔. 이 곳은 차량진입을 제한하고 대중교통과 필수적 업무차량만의 진입이 가능한 대중교통전용지구다.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시작하고 저녁에는 인적이 일찌감치 끊기는 생활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대략 아침 7시부터 8시까지가 출퇴근 시간의 피크다. 사거리인 이 호텔 앞에서의 풍경은 그 자체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 진풍경이 매일 아침과 저녁시간에 펼쳐진다.

​신호체계 자체가 차량 위주가 아니라 자전거를 중심으로 설계되다 보니 주기가 짧다. 1방향의 다음 신호가 오기까지 대략 1분가량? 신호가 한번 바뀌면 대기열에 정차하던 2~30여 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 나머지 자전거가 줄을 잇는다 이 수까지 포함하면 대략 5,60여 대. 사거리이니 각각의 방향을 통해 이 사거리를 통행하는 자전거의 수가 1분이면 수 백여 대는 족히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수의 이동을 자동차로 했을 때 이런 이동은 가능할까? 자동차였다면 이 사거리에서 1분에 통과하는 사람의 수는 얼마나 가능할까?

실제 이 도시가 그랬다. 위트레흐트가 자전거 도시로 본격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1980년대 초반까지 위트레흐트는 자동차 도시였다. 사진 속 네거리는 자동차에게 허용된 차선이 각각 2,3개 밖에 되지 않지만 과거 양방향 6차로의 자동차도로였다.

우리와 다를 바 없던 이 도시는 무엇 때문에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로 바뀌었을까? 파리와 뮌스터를 비롯해 수많은 세계의 도시들이 이 도시의 지난 과정을 살펴보는 이유를 유튜브 영상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네덜란드인은 어떻게 오늘날의 자전거 길을 만들었나?

'How the Dutch got their cycle paths'라는 유튜브 영상이다. 조회수 118만 건에 달한다. 6분 29초짜리 이 영상은 오늘날의 넉넉한 네덜란드의 거리 풍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아무런 위험을 느끼지 않고 자전거를 굴린다. 긴 머리의 여성이 가방을 둘러메고 가기도 하며, 나이 든 중년의 여성도 그 대열에서 함께 한다. 치마를 입은 여성들은 한결 같이 헬멧도 쓰지 않고 유유자적 거리를 달린다.

이들이 오늘과 같은 풍경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상은 곧 흑백으로 바뀐다. 차가 마구 늘어나던 시기인데 거리의 풍경이 살벌하다. 자전거 운전자들이 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참혹한 풍경이다. 흑백과 칼라화면이 오락가락하면서 50년대부터 70년대 풍경을 보여준다. 차가 엄청 늘어났고 거리를 가득 메워버린다. 당연히 자전거는 줄어들 수밖에. 

그 사이에 이동거리는 늘고 인구도 늘었다. 도시는 확장해 나간다. 건물을 부수고 길을 내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자전거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자동차를 '살인자'라고 적어 든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인다.​

여기에 몇 가지가 겹쳐졌다. 바로 오일쇼크였다. 한 달에 30만 원가량 휘발유 값을 지불해야 하는 시민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150만 원으로 부담이 가해지면 그 차를 계속 끌고 다닐 수 있을까?(실제 오일쇼크 당시 국제 유가가 이렇게 변했다) 이에 관한 대답을 네덜란드인들이 먼저 했다. '내 월급의 1/4을 도로에 뿌리고 다닐 수는 없지…'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눈길을 돌렸다. 대중교통과 자전거였다.

이때부터 도시는 한순간에 깨어난다. 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길이 무엇인지 답은 뻔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전거의 반격에 정책당국이 호응하고 나선다. 이 반격은 성공적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도 공짜로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철저하게 요구하고 행동하고 나선 자전거의 권리 찾기에서 만들어진 결과일 뿐이다. 영상에서는 도로에 드러눕는 장면이 나온다. 일요일마다 자동차가 차단된 도로로 몰려나와 시위성 캠페인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곧 축제처럼 만들어 나간다.

'네덜란드의 자전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주제로 설명하며 주요 사건과 배경을 소개하는 셀리본지 씨.(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에서)
'네덜란드의 자전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주제로 설명하며 주요 사건과 배경을 소개하는 셀리본지 씨.(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에서)

성공적이었다. 이들이 이 길을 완성시켜 나가는데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변화가 근본적으로 도시의 모습을 바꾼 게 2000년대 초반, 그리고 위트레흐트는 계속 진화했고 우리가 3월 초에 본 거리의 풍경이 길의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네덜란드에서 올봄에 만났던 셀리 본지(네덜란드 자전거 대사관 매니저), 메러디스 글래저(암스테르담대학 교수), 허버트 티멘스(위트레흐트 시청)등이 한결같이 말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우리의 과거가 여러분의 도시와 전혀 다를바 없었습니다. 도로가 자동차로 가득했고 자전거는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바뀌었습니다. 이게 도시가 나아갈 길이라는 걸 조금 일찍 깨달았을 뿐입니다. 우리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도시가 바꾸어 나갈 방향이라는 점을 믿고 차분하게 여러분의 이웃들과 상의하세요. 우리가 여러분에게 건넬 수 있는 조언이며 확신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김길중(자전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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