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중의 자전거 이야기(17)
디트로이트와 포틀랜드까지 곁들여 해석해 보는 '도시의 미래'

도시의 운명과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꺼내면서 예를 드는 두 도시가 있다. 미국의 포틀랜드와 디트로이트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미국 내에서 가장 잘 나가던 도시였다. 20세기 초반 포드가 자동화된 생산시스템을 만든 이래로 미국의 주요 산업이 된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였다. 이 도시의 전성기는 대략 1950년대부터 1970년대부터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은 고임금과 후발주자인 일본 회사들의 시장잠식으로 인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자구책을 찾게 된다. 언제까지고 불멸의 도시일 것 같던 디트로이트의 암울한 미래가 서서히 이 도시민을 옥죄며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 도시민의 운명이 똑같이 적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산업구조의 변화를 직감하고 또 다른 활로를 찾던 디트로이트의 백인들은 시내를 버리고 교외로 탈출한다. 도심은 점차 비게 되고 세금을 내서 도시를 지탱해 줄 사람들은 끝없이 줄어든다. 디트로이트의 교외화는 인종갈등과도 연결되어 있다. 인종간 갈등은 나날이 격화되고 그럴수록 교외화는 심화된다.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도시는 사람 살 공간이 못되었다. 결국 디트로이트는 파산의 길을 걷는다. 엄청난 재정이 투입되어 디트로이트를 살리려 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조적인 미국의 도시가 있다. 디트로이트가 1940년대 말 185만에 육박하는 인구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음에 반해 포틀랜드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디트로이트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 포틀랜드의 인구는 37만이 못되었다. 포틀랜드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주력산업이던 조선업과 목재산업, 그리고 제조업의 쇠퇴도 포틀랜드를 위기에 빠트렸다. 연중 절반 이상의 날에 스모그 경보가 울리는 우울하고 우중충한 도시로 불렸던 포틀랜드 사람들은 디트로이트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교외화가 아니라 도심의 재생을 통해 살길을 찾는다.
아울러 디트로이트와는 달리 인종갈등을 도시를 위협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임대주택 등의 성공적 정착 등을 비롯한 여러 도시계획을 고민한다. 그리고 포틀랜드가 주목한 것은 대중교통과 자전거였다. 도시가 주력산업으로 삼는 산업구조의 변화야 도시민들이 어떻게 못한다 하더라도 기본적 인프라에 해당할 환경과 교통에서 도시의 기반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한 결과일까? 포틀랜드도 1970년대 한때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이후 꾸준하고 착실하게 성장한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인구는 포틀랜드와 디트로이트가 엇비슷한 65만 명 수준의 도시가 되었다.
두 도시의 운명이 이후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그 공간에 터전을 마련하는 도시민들이 어떻게 도시를 만들어 가는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두 도시의 운명은 이후에도 어긋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포틀랜드 등 수많은 세계의 도시들이 참조하는 네덜란드의 도시들, 경외의 대상인 '하우턴'
여기서 거론하는 포틀랜드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도시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어느 도시를 참조할지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도시들이 네덜란드와 덴마크, 그리고 독일의 도시들이다, 도시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몰라도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계획가와 정치가, 도시에 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하우턴이다.
워낙 따라 하기 힘들 만큼의 높은 혁신을 이미 오랜 시절에 시작했고 완성시켜 왔다. 하우턴 사람들은 자전거 도시라는 선행하는 모델도 존재하지 않던 1970년대에 이미 자연으로부터의 교훈을 도시에 적용시켜 독특한 도시를 만들어 오고 있다. 우리가 미래라 여기는 일들은 이미 과거형이며 진행형이기 때문에 많은 도시계획자들이 부러워하고 참조하지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앞서 연재한 글에서도 얼핏 견해를 밝혔지만 하우턴은 엄밀하게 말해서 자전거도시가 아니라 자동차와 자전거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현명함을 이미 보여줬다고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필자가 하우턴을 찾았던 3월 1일 아침, 20여분 버스를 타고 위트레흐트에서 하우턴 시청 인근에 도착하고 공식적인 일정을 진행하기 전에 우리를 맞이했던 안드레아 보더만 국제 자전거 대사가 꺼낸 이야기는 “왜 버스를 타고 왔을까요?”라는 궁금증에 대한 질문부터였다. “자전거를 타고 하우턴을 돌아보고 다시 위트레흐트로 돌아가 저녁에 있을 독일 뮌스터 일정을 고려한 불가피한 사정 때문입니다”를 듣고서야 수긍 했다.
하우턴 시청의 공무원인 보더만 씨의 직함은 ‘국제 자전거 대사’다. 교통국이나 정책담당관, 또는 자전거 담당 정책 책임자가 아닐까 싶었지만 ‘국제 대사’라는 직함에 하우턴이 꿈꾸는 미래에 대한 깊은 생각이 담겨있다는 것을 점차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세계의 수많은 도시에서 하우턴을 찾는다. 하우턴은 이런 손님들을 위한 별도의 담당자를 두며 스스로가 만들어온 자긍심을 은연중에 자랑한다.
보더만 씨와 우리 일행이 한 시간가량 둘러보는 내내 많은 주민들이 말을 건네 온다. ‘굿모닝!’과 ‘헬로!’라는 인사는 기본이며 ‘훼어 아유 프롬?’과 같은 좀 더 진척된 이야기가 건네 온다. 그러나 ‘왜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보더만 씨가 점심식사 시간에 들려준 이야기이기도 한데 작은 도시규모라서 서로 간의 교류와 연대감이 매우 높다고 한다. 아울러 보더만 씨가 하는 일을 아는 주민들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우리를 찾아왔는지’에 관한 보도를 수시로 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낯선 피부색의 무리가 보더만 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사정을 이들은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심지어 짧은 하우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시청사 앞에서 보더만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데 우리는 준비해 간 깃발을 앞에 내세우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어느 주민이 ‘여러분의 도시는 자전거로 충분합니까?’라는 내용의 깃발을 슬쩍 살펴보더니 “물론입니다(오브 코스)!”라고 짧게 내뱉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가던 길을 향해 페달질 하며 사라졌다.
도시의 정체성을 스스로 만들고 지켜가는 '하우턴 시민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보더만 씨의 공식적 브리핑에서의 첫마디가 ‘히스토리 오브 하우턴’이었던 이유가 명확하게 정리된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우턴의 오늘은 역사적 맥락에 뿌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설명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가 말한 하우턴의 히스토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알맹이는 ‘본래 하우턴이 가져온 뿌리를 바탕으로 중앙정부가 베드타운을 만들려는데 대해 반대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하우턴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도시는 그 안에서 삶의 터전을 이룰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모든 게 달려있는 삶 자체라 할 수 있다. 공동체가 서로 간을 챙겨가며 훈훈한 연대가 살아 있는 도시로 갈지, 격화된 갈등 속에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들로 이웃을 대하게 만들지를 설계하고 담아 가는 게 도시계획이다. 일정한 수의 시민들을 수용할 공간의 필요성에서 접근했던 네덜란드 정부에게 ‘이곳은 나를 비롯해 많은 이웃이 살아갈 소중한 공간인데 우리의 바람이 담기도록 해야 합니다’를 요구한 것이 오늘날 하우턴의 출발이었던 점을 보더만 씨가 내내 강조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모는 ‘하우턴의 DNA'를 정립해 내는 작업을 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많은 주민들에게 어떤 도시여야 하는지를 묻고 정립해 도시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을 하는 도시다. 네덜란드에서도 활발한 이웃 간 사교와 사회적 모임이 진행되는 도시로 꼽힌다. 나아가 이런 모습은 시리아 난민을 하우턴에서 수용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보더만 씨의 어느 기사에서도 확인되는 모습이다.
많은 외부자들이 텔레토비 동산과 같은 모습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지만 한걸음 더 깊숙이 다가서지 못하는 이질감에 머물러 있는지 몰라도 하우턴은 오래전부터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살아있는 증거라 생각한다.
도시는 그 공간을 통해 탐욕을 취하고자 하거나 (자기 취향의) 이데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이니만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의견과 지혜를 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하우턴에서 느낀 가장 큰 영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사례들은 다음기사에서 소개할 독일 프라이부르크 보봉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임을 예고하며 하우턴에 관한 마무리를 아쉬움을 담아 이렇게 정리한다.
/김길중(자전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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