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점검] 조합장 선거, 무엇이 문제인가?③
오는 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21일부터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 등 이미 재임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현직 조합장들의 후보 등록이 적지 않다. 농협법상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끊이질 않아 개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북지역에서는 홍어가 조합원들에게 전달되고 기부행위 등 돈 선거가 기승을 부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단속에 비상이다. 심지어 후보자 매수 행위까지 나오고 있다. 연임 제한이 없는 데다 현역 조합장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제도라는 지적이 따갑게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제도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 등을 3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불법 선거, 현역 조합장 관련 신고 사례 '다수'
3월 8일 실시될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임박해 오면서 선물·금품 전달, 각종 기부 행위 등에 이어 후보자 매수에 이르기까지 선거법을 위반한 사례들이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와는 다르게 후보자들은 후보자들대로, 투표권이 있는 조합원들은 조합원대로 누가 누군지를 알지 못한 채 깜깜이 선거를 치러야 하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극성을 부린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나 투표에 나서는 조합원들 모두 동시조합장 선거와 관련된 각종 규정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관련법이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이 바람에 현직 조합장들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전에 곶감과 홍어, 돈 등이 동원되고 후보자 매수까지 이어지는 ‘혼탁 선거'가 지속됐다. 그 중에는 현직 조합장과 관련된 위반 사례들이 많다.
전북지역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례 없이 다양한 조합장 선거법 위반 사례가 드러났다. 사례별로 보면 기부행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매수 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북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1일까지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모두 20건(고발 7건·수사 의뢰 2건·경고 11건)의 위법 행위를 적발했다. 위반 유형 중 금품제공 등 기부행위가 10건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으며 이어 △전화·문자메시지 등을 이용한 위반 행위 4건 △인쇄물·시설물 위반 행위 3건 등으로 집계됐다.
전북경찰청도 같은 기간에 모두 24건(45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건(1명)은 송치 종결했으며, 나머지 23건(44명)에 대해서는 수사를 진행 중이다. 단속 유형별로는 △금품 및 향응 제공 18건·38명 △사전 선거운동 4건·4명 △허위사실유포 등 2건·3명 등이다.
주요 위반 사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조합장 선거 50여일 전인 지난 1월 말, 김제시 봉남면과 성덕면, 진봉면 등에서는 지역농협에 출마한 한 조합장 후보 측 관계자로 알려진 인사들이 조합원들에게 홍어를 전달해 위탁선거법상 기부행위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홍어 받은 조합원 색출 ‘비상’...“자수하여 감경·면제 받자?” 이색 현수막 등장

사건이 불거진 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10여 곳에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금품(홍어 등)을 받은 조합원은 선거관리위원회에 자수해 과태료를 감경·면제 받기 바란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어 전국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후 실제 20여명의 조합원들이 선관위에 자수했지만 경찰은 수사를 확대해 홍어를 받은 조합원들 색출에 주력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익산지역 한 농협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고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현직 조합장들은 4년 임기 동안 다음 선거를 위해 유권자인 조합원들에게 지나친 호의를 베풀며 심지어 다음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 달라며 노골적인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어 지난해 12월 한 지역농협의 이사 등 36명이 2박 3일 동안 워크숍 명목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농협의 예산 3,000만원을 들여 자동차 박물관이나 말 공연장 등을 도는 외유성으로 드러나 파문이 컸다. 참석자들 가운데 14명은 이사의 배우자들이었고 특히 이 중 12명은 이 농협의 조합원이었다.
전북선관위는 이들 12명에 대해 960만원 상당의 식사와 이동 편의를 제공한 것은 불법 기부행위라고 보고 선거에 출마 예정인 해당 농협 조합장을 위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그런가 하면 도내 한 산림조합장의 경우 그동안 조합의 경비로 조합원의 경조사에 축·부의금을 제공하면서 조합의 경비임을 밝히지 않거나 본인의 명의로 제공하는 등 총 500여건, 2,600여만원 상당의 축·부의금을 제공한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됐다. 이 역시 현직 조합장의 선거법 위반 사례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는 조합의 경비로 관혼상제의식이나 그 밖의 경조사에 축의·부의금품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해당 조합 등의 경비임을 명기해 해당 조합 등의 명의로 해야 하며, 해당 조합 대표자의 직명 또는 성명을 밝히거나 그가 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는 행위를 기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후보자를 위한 금품 제공이 도내에서 잇따랐다. 전북지역 조합원 A씨는 입후보예정자 B씨의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조합원 C씨 등에게 11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고발됐다. 또 한 축협조합에서는 지난 설 명절 때 조합원들에게 홍어와 곶감 선물 세트 등을 돌린 행위가 발각돼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1억 7,000만원 줄게 포기하라?”...후보자 매수 논란

‘출마를 포기하면 1억원이 넘는 돈을 주겠다’며 상대 후보를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전북지역 한 현직 축협 조합장이 허위사실공표죄와 명예훼손죄로 피소당한 사례도 나타났다. 조합장 선거를 6일 앞둔 지난 2일 전 조합장인 D씨는 현직 조합장인 E씨를 위탁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와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D씨는 고소장에서 “현직 조합장 E씨는 한 방송사의 후보 매수 혐의에 대한 해명을 요청 받고 ‘상대 후보가 먼저 단일화를 요구하며 돈을 요구했고, 본인은 금품제공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며 거짓 해명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E씨는 후보를 사퇴하도록 고소인에게 금품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한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금품제공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이로 인해 고소인의 명예가 심하게 훼손됐다”는 내용도 고소장에 담겼다.
해당 조합은 선거 후보 등록 기간을 앞두고 현직 조합장이 전직 조합장에게 "1억 7,000만원을 줄테니 후보 등록을 하지 말라"고 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결국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다.
깨끗하고 공명하게 치르기 위한 위탁선거법...오히려 '혼탁', 왜?
전북선관위는 이 외에도 이달 들어 조합원에게 기부행위를 한 혐의가 있는 F후보자와 G조합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F후보자는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조합원에게 7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합원 G씨는 또 다른 후보자의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조합원에게 5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에 따라 누든지 기부행위 제한 기간 중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선거인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그 제공 의사를 표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 현행 위탁선거법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후보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포함)에게 불리하도록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후보자 비방죄 역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다.
그럼에도 조합장 선거가 갈수록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져 혼탁한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장 선거의 불법을 방지하고 그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2005년부터 선관위가 위탁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개별적으로 실시하던 조합장 선거를 2015년부터는 전국 동시선거로 실시하고 있지만 전국에서 불법 선거운동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선거관리를 위탁한 주된 이유는 선거를 깨끗하고 공명하게 치르기 위함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합장 선거 ‘금품 수수’, 법원 판결 가장 많아

KBS전주총국이 2월 21일 보도한 ‘법원 판결로 본 조합장 선거…‘금권 선거 만연’‘의 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북지역 1심 법원이 내린 조합장 관련 판결 3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선거 사건은 28건이었고, 이 가운데 25건은 금품 수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는 “선거 출마자가 수백만원씩 조합원들에게 뿌리거나 지지를 부탁하며 조합원을 모아 식사를 제공하고 선물을 주는 등 유형은 다양했고, 금품 수수 절반 이상이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이뤄졌다”며 “실제 당선으로 이어져 재판에 넘겨진 조합장은 9명이었고, 5명에겐 당선 무효형이 선고됐다”고 밝혔다.
이밖에 “선거인이 조합별로 적게는 200명 안팎에서 많게는 7,000여명에 그치고 지인 관계로 얽혀 돈을 주고 표를 사는 일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기사는 전북선관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투표권이 조합원에게만 부여된다는 점하고, 조합의 자율성을 강조해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직선거와는 선거운동 방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전북과 인접한 광주·전남지역에서도 이번 조합장 선거와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57명 가운데 기부행위 위반이 80%에 육박한다. 아예 유권자인 조합원을 매수하는 사례도 있다. 전남에서는 한 조합장 후보자의 측근이 조합원에게 100만원을 주고, 이 조합원이 다른 조합원에게 50만원을 건네는 ‘다단계 매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기부행위 외에도 선물, 식사 대접, 찬조금 등 돈을 뿌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2015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는 선관위가 불법 단속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돈 선거 관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쉽게 말하면 ‘돈을 많이 주는 후보를 찍어주는 조합장 선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지만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조합장, 어지간한 지역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보다 낫다?”
조합장 후보들이 형사 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불법 선거를 벌이는 건 조합장이 갖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조합 규모가 큰 지역에선 ‘조합장이 어지간한 지역 공기업 사장이나 공공기관장보다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조합장의 평균 연봉은 통상 1억 1,000만원 수준으로 규모가 큰 조합은 연봉이 더 많다. 업무추진비 등 수당은 별도고, 운전기사와 차량도 제공 받는다. 또 조합 직원 채용 등 인사권에 더해 조합의 대출 등 금융, 농수산물의 판매 및 유통 등을 관장한다. 조합장을 두고 ‘제왕적 권력’, ‘소왕국의 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지역에선 돈과 이권, 조합원 등의 물적·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국회의원과 시장, 군수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중요한 표밭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른바 ‘조합장 파워’가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더 나아가 국회의원들의 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 농협법·조합장 위탁선거법 개정하지 않으면 ‘불공정·돈 선거·후보 매수’ 반복될 것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해당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농촌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표 확장력을 가진 조합장들 눈치를 보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높다.
여기에 '위탁선거법 개정안'은 예비후보자 제도 도입과 선거운동 방법 확대, 후보자 배우자 선거운동 허용,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운동 허용, 조합원 휴대전화 가상번호 제공 근거 마련,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 허용 등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지만 이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낮잠만 자고 있다.
국회가 움직이지 않고 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조합장 선거의 불공정, 돈 선거, 후보자 매수 등 불법·혼탁 선거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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