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점검] 조합장 선거, 무엇이 문제인가?②
오는 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21일부터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 등 이미 재임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현직 조합장들의 후보 등록이 적지 않다. 농협법상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끊이질 않아 개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북지역에서는 홍어가 조합원들에게 전달되고 기부행위 등 돈 선거가 기승을 부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단속에 비상이다. 심지어 후보자 매수 행위까지 나오고 있다. 연임 제한이 없는 데다 현역 조합장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제도라는 지적이 따갑게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제도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 등을 3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최대 10선 노리는 조합장...3선 이상 연임 조합장 ‘수두룩’, 왜 가능한가?
3월 8일 실시될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등록을 마친 후보들이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조합장 선거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중앙선관위)의 위탁 하에 진행되고 있어도 혼탁한 이유는 조합장이 가진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조합장에게 주어지는 4년 임기 중 평균 연봉은 1억 1,000만원에 달하고 높은 업무추진비와 직원들의 인사권까지 갖는다. 게다가 조합장에 당선되면 조직 장악력이 높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정이다. 이른바 토호세력으로 지역에서는 ‘제왕적 권력’의 자리로 통용되고 있다.
연임도 자유로워 지역에서 10년 이상 조합장을 하는 사례는 다반사이고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 지방의회 의원이나 자치단체장까지 출마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번 3회 조합장 선거에서도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 등 이미 재임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현직 조합장들이 해당 지역 언론들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 무기한 연임 가능...경영 전문화 무색, 지역에선 ‘상왕’으로 불려

농협법상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선 연임 제한의 규제를 받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선거제도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끊이지 않아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조합장 선거는 총선, 지방선거 등과 마찬가지로 금품을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모두 처벌 대상이지만 현직 조합장들은 굳이 선거 기간이 아니더라도 선물 외에 식사 대접, 찬조금 등 돈을 뿌리는 방법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다양하다는 지적이다. 평소에 유권자인 조합원들의 선심을 살만한 권한과 특혜가 주어진 때문이다.
연임 제한이 없는 조합장들은 이 때문에 보통은 3~4선은 기본이고 10선까지 가능한 곳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이들은 재임 기간에 해당 조합에서 상왕 노릇은 물론 지역에서 토호로 불린다.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대전과 충북에서는 일부 조합장이 ‘10선’을 바라보고 있다. 또 7선과 5선은 물론 4선에 도전한 현직 조합장들이 수두룩하다.
현재 4선 이상 농협 조합장은 전국에서 110명이 넘는다. 이들은 당선 시 최대 40년, 최소 16년간 조합장 자리를 맡게 된다. 전북지역에서도 4선 이상 조합장이 5곳, 6선 이상이 1곳으로 이미 무투표로 당선된 21곳에 포함된 조합도 있다. 이처럼 장기간 조합장을 역임하면서도 계속 연임할 수 있는 비결은 '제왕적 권력'에서 기인한다.
‘소왕국의 왕’이라고 부르는 비상임 조합장...이유는?
농협법은 자산 규모 2,500억원 이상 지역조합의 경우 조합장 지위를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전환하고, 전문 경영인인 상임이사에게 조합 운영을 맡기도록 규정한다. 조합장 업무도 대외 교류와 복지, 교육 등 금융·경제사업 이외 부문으로 제한돼 있다. 조합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경영 전문성을 강화해 조합원 이익을 증대시키자는 게 법 취지다.
농업협동조합법 제48조에는 조합장과 이사는 4년, 감사는 3년으로 임기를 정하고 있다. 단, 조합장은 2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지역농협은 비상임 조합장을 두도록 하는 대신 연임 제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 전국적으로 비상임 조합장을 두고 있는 지역농협은 462개로 전체의 41.3%를 차지한다. 이들 중 16.2%가 4선 이상이며 10선을 한 조합장도 있다.
더욱이 법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농협이 태반이다. 일부 지역에선 비상임 조합장이 농산물 유통·판매부터 금융사업까지 경영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비상임 조합장은 상임이사를 선임하는 인사추천위원회에 참여하고, 2년마다 경영 실적 평가도 주도한다. 상임이사가 비상임 조합장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조합장 입맛에 맞는 측근이나 친인척을 상임이사로 선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사회에서 비상임 조합장을 ‘소왕국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종신·세습형 조합장 가능…법적 책임지지 않아 폐해 속출

이런 제도적 모순 때문에 모든 권한을 조합장이 가지면서 책임 없이 권한만 누리는 구조 속에 종신적 조합적, 제왕적 조합장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지 오래다. 조합의 상임이사는 선임하는 인사추천위원 의장이 조합장인데다 위원 7명 중 2명을 조합장이 추천하기 때문에 종신적 조합장 또는 전직 조합장이 선택한 사람이 조합장이 되는 세습적 조합장인 형태가 가능하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토호세력으로 통한다.
따라서 조합장들은 재임 기간에 채용 비리와 일감 몰아주기, 특혜성 대출, 횡령 사고 등 각종 폐해가 발생하지만 비상임 조합장은 결재권자가 아니라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부 지역 농협에서는 비상임 조합장이 임금 체불로 피소됐으나 재판에서 '업무집행 권한이 없는 명예직'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2021년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철옹성 같은 비상임 조합장의 권력 테두리 안에서 조합원이 조합장 전횡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는 조합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비상임 조합장을 견제·감시할 수단이 없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비상임 조합장은 무제한 연임이 허용되지만 이를 제어할 법적 장치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현역 조합장들이 비상임 조합장 제도를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이로 인해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다.
일정 규모의 자산 규모면 조합 자율로 비상임 전환을 결정할 수 있다는 법 규정을 이용해 ‘자산 증가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조합 정관을 바꾼 사례도 있다. 이용희 전국농민회총연맹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무리한 비상임 전환 시도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제재 방법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비상임 조합장 ‘3선’ 제한 농협법 개정안, 국회 상임위 문턱 넘지 못해...왜?
국회에도 비상임 조합장 연임을 ‘3선’으로 제한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해당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농촌 지역구인 여야 의원들이 표 확장력을 가진 조합장들 눈치를 보면서 법안 처리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현역 조합장 연임 위주의 선거제도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합장 선거 관련 규정이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관한법률’로 묶여 있어 국회의 법률 개정 절차를 밟지 않고는 개선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러한 틈을 타 ‘조합장 선거운동 기간 외에 사전선거운동이 금지되며 허위사실 공표, 후보자 등 비방, 선거운동 목적 매수 임직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등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돈 선거 등 불법·비리 선거 고발과 수사 의뢰는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조합장 선거와 관련한 법률안 개정이 국회에 발의 돼 있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일부 법률 개정안은 계류 중이다”며 “해당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 아무래도 현재와 같은 불합리한 점들은 훨씬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계속)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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