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점검] 조합장 선거, 무엇이 문제인가?①

오는 3월 8일 치러지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21일부터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최대 10선을 노리는 농협 조합장 등 이미 재임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현직 조합장들의 후보 등록이 적지 않다. 농협법상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 조합장 규정’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이 끊이질 않아 개선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북지역에서는 홍어가 조합원들에게 전달되고 기부행위 등 돈 선거가 기승을 부려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가 단속에 비상이다. 심지어 후보자 매수 행위까지 나오고 있다. 연임 제한이 없는 데다 현역 조합장에게 절대 유리한 선거제도라는 지적이 따갑게 제기된다. 조합장 선거제도의 실태와 문제점, 대안 등을 3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8일 실시하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지난 2월 8일 '돈 선거와 허위 비방 없는 깨끗한 선거'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실시했다.(사진=전북선관위 제공)
전라북도선거관리위원회는 3월 8일 실시하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지난 2월 8일 '돈 선거와 허위 비방 없는 깨끗한 선거'를 기원하는 퍼포먼스를 실시했다.(사진=전북선관위 제공)

“현역 위한 조합장 선거, 신인 제한 많아 하늘의 별따기 선거” 

“현직만 유리한 기울어진 조합장 선거법...시급히 개정해야” 

“조합장 ‘불공정 연임' 제한,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일이 오는 3월 8일로 다가왔지만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후보자와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비등하다. 새로운 농·어촌 지도자들을 뽑기 위해 지난 21일과 22일 이틀간 후보자 등록을 마친 뒤 23일부터 2주간의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조합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 대부분은 현역 조합장들이 두드러지게 많다. 

무투표 당선 '수두룩'...현역에게 절대 유리한 희한한 선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3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후보자등록을 마감한 결과 1,347개 조합에 총 3,082명이 등록,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1회 때 선거 경쟁률은 2.7대 1, 2회 때는 2.6대 1이었던 점에 비추어 조금 낮아진 경쟁률이다. 전국 조합별로는 농·축협 2,591명, 수협 208명, 산림조합 283명이 등록했다. 

전북지역에서는 111개 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 농·축협 219명, 산림조합 28명, 수협 6명 등 253명이 후보 등록을 마쳐 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익산 망성농협과 부안 중앙농협, 부안 산림조합에서 각각 5명이 출마해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또 단일 후보 등록으로 무투표 당선된 조합은 농협 14곳, 산림조합 5곳, 수협 2곳 등 21곳으로 나타났다. 무투표 당선 조합장 대부분은 현역 조합장들이다. 

농·어민 권익보호와 새로운 미래 농·어촌 100년을 선도해나간다는 취지에서 올해로 세 번째 실시하는 전국동시조합장 선거다. 그런데 현역 조합장을 위한 ‘특혜 선거제도’라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뭘까? 신인 후보들은 얼굴을 제대로 알릴 수 없는 ‘깜깜이 선거’라며 이구동성으로 볼멘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역 조합장 후보로 나선 신인들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13일로 너무 짧고, 운동원이나 사무소 없이 후보자 혼자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 데다 제한 규정도 많아 신인들의 경우 인지도를 높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바람에 유권자인 조합원들도 현역 조합장 외에 어떤 도전자들이 나섰는지, 정책이나 공약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불만을 연달아 제기하고 나섰다. 

기울어진 '조합장 선거법' 개정 요구 '봇물'...이유는? 

KBS전주총국 2월 3일 뉴스 화면(캡처)
KBS전주총국 2월 3일 뉴스 화면(캡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행 조합장 선거운동 기간은 후보 접수 마감일부터 선거 전일까지 13일에 불과하다. 2주가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신인 후보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4년 동안 선거운동을 해 온 현역 조합장들에 비해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시작부터 '불공정 선거'라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후보자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정해진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또한 조합원 연락처 등 깊숙한 정보를 많이 지니고 있는 현직 조합장이 선거운동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전주의 한 조합장에 출마한 김모 후보는 "신인 후보자들이 조합원 명부를 받으면 주소와 성명만 기재돼 있고, 전화번호는 개인정보 때문에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한돼 있기 때문에 직접 찾아다니지 않는 한 지지를 호소하고 싶어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조합원의 알 권리 보장과 선거운동 방법 확대 등을 담은 법 개정안이 수년 전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장 선거는 2005년부터 선관위에서 위탁관리를 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선거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4년마다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과열·혼탁 선거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현직 조합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폐쇄적인 선거 구조가 각종 불법 행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북지역에선 최근 한 현역 조합장이 상대 후보자를 돈으로 매수하려다 들통이 난 사례도 있다.

홍어·곶감·여행 제공 이어 조합비 경조사비 사용 등 불법 선거운동 '난무' 

또 현역 조합장이 홍어와 곶감 등 선물 세트 제공 외에 제주도 관광, 조합 예산으로 조합원들의 경조사비를 내오다 적발된 사례들도 나왔다. 게다가 조합장 선거는 위탁선거법에 따라 공직선거보다 선거운동이 제한돼 후보자 연설회나 공개토론회가 금지된다. 현직 조합장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후보자들에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조합원들이 일 잘하는 조합장을 뽑을 수 있도록 관련법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 때문에 높다. 이런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 때문에 지난 2020년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깜깜이 조합장 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년 넘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안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예비후보자 등록이 가능해지고, 후보자들은 선거 기간 전에도 공개 행사에서 제한된 선거운동을 하며 자신의 정책을 알릴 수 있다. 그런데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도 지난해 10월 조합장 선거의 예비후보기간 도입과 선거운동 방법 확대, 인터넷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과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위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해당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의 심사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같은 당 윤재갑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도 지난해 지역농협의 비상임조합장·이사·감사의 연임 횟수를 2회로 제한하는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처럼 4년마다 열리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벌써 세 번째를 맞는 가운데 출마자와 유권자를 사이를 가로막는 관련 법규에 대한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어 '깜깜이'에 더해 혼탁한 선거가 이어지고 있다. 

선거운동 방법이 명함 돌리기나 문자메시지, 전화 등에 한정돼 있다 보니 출마자는 기껏 수립한 정책 청사진을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유권자는 도대체 무얼 보고 투표를 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전국에서 나오고 있다. 

"그들만의 선거, 혈연·학연·지연 중심...오랜 관행"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 전경(사진=전북선관위 제공)
전북도선거관리위원회 전경(사진=전북선관위 제공)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후보가 출마해도 얼굴과 이름 외에 정작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 아는 조합원 유권자는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조합장 선거를 ‘현역을 위한, 그들만의 선거'라는 지적이 높다. 

김제지역의 한 농협 조합원인 이모 씨는 ”조합장 후보들에게 명함을 받았지만 공약이나 정책에 관해서 들은 적도 없고 알리려 하지도 않는다“며 ”오로지 지지만 호소하고 있어서 도무지 선거가 개선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또 남원지역의 한 농협 조합원인 박모 씨는 "현역 조합장 외에 아무래도 다른 후보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혈연, 지연, 학연 중심으로 이어지는 분위기가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며 "기본적인 선거운동은 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행 조합장 선거 출마자에게 허용된 선거운동 방법은 △선거벽보·선거공보 △어깨띠·윗옷·소품, 전화·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정보통신망 이용 △공개된 장소에서 명함·지지 호소 등이 전부이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을 뽑는 공직선거와 비교해 제한적이다.

따라서 선거철마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차량 유세는 물론, 선거사무소 설치와 선거운동원 등 선거사무 관계자도 선임할 수 없다. 가장 쉽게 공약을 알릴 수 있는 거리 현수막도 허용이 안 되며, 토론회나 대담은 꿈도 꿀 수 없다. 심지어 후보자의 배우자조차 선거운동을 할 수 없고, 오로지 후보 혼자 뛰어야 하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자신을 알려야 하는 신인들에게는 불리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 

신인 후보들 얼굴 알리기도 힘든 선거...정책·공약은 '언감생심'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도 없다 보니 정책은 물론,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에도 빠듯한 조합장 선거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거를 해야 하는 것과 같다. 후보들은 후보대로, 조합원들은 조합원대로 '깜깜이 선거'에 대한 관련법 개정의 시급성을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이유다. 

호별 방문은 고사하고 연설회나 토론회조차 못 하게 돼 있어 현직 조합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는 불만이 높다. 특히 신인 후보들 사이에는 "다른 지방선거와 달리 예비후보 등록 제도가 없어 신인들은 사전에 이름 석 자도 알릴 수 없다"며 “이미 4년 임기 동안 자신을 알려 온 현역 조합장들에게 절대덕으로 유리한 선거구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익산에서 한 농협 조합장에 출마한 김모 후보는 "연임 제한이 없는 현역 조합장은 4년 이상 조합원들을 접촉하고 관리해 왔는데 신인 후보들은 얼굴은 고사하고 전화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불공정한 구조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푸념을 쏟아 놓았다. 

'국회의원 지역구 표밭' 연결, 현역 조합장들 심기 불편하게 했다가는? 

국회 본회의장 모습(자료사진)
국회 본회의장 모습(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2020년 대표 발의됐지만 3년 가까이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위탁선거법 개정안'은 예비후보자 제도 도입과 선거운동 방법 확대, 후보자 배우자 선거운동 허용, 모든 인터넷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한 선거운동 허용, 조합원 휴대전화 가상번호 제공 근거 마련, 후보자 초청 대담·토론회 허용 등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런데 왜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4년 마다 심판 받는 지역 선거의 표와 직결되기 때문이란 지적이 주목을 끈다. 전국 1,347곳의 조합에서 수많은 조합원들을 거느린 조합장을 뽑는 선거는 곧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표밭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현역 조합장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계속)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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