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주요 신문 톺아보기] 2020년 6월 10일(수)
"토호세력은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토호세력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과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지역패권의 중원에서 군림하려고 한다. 그들은 크고 작은 이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력을 확대·강화하는 습속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세가 밀린다 싶으면 인맥, 혼맥, 언론을 활용해 지역주의를 무기로 삼는다."
토호에 관한 연구자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인맥·혼맥관계를 유지하며 자본-권력-언론을 장악하여 세를 확장시켜 나가는 방법은 아날로그시대나 디지털시대나 큰 변함이 없다. 지역에서 굳건한 뿌리를 내린 토호세력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음을 알 수 있다.
10일자 전북일보가 1면에 쓴 ‘전북 기반 이스타항공 지원 절실’이란 제목과 기사에서 문득 ‘토호’의 두 글자가 스멀스멀 묻어난다.
제목에서 쉽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한 때 잘나가던 항공사를 다른 항공사에 매각하려고 했지만,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인수협상이 난항을 겪게 됐다고 주장하는 항공사 측 입장은 그렇다 치자.
한 때 전북지역 연고 기업임을 내세워 지역할당제로 채용했던 그 많은 지역출신 직원들이 넉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해고통보를 받거나 거리에 내몰려 사측과 힘든 투쟁을 벌이고 있는 내용은 기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0억 원이 넘는 임금을 지급하지 못한 항공사 오너 일가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에 비난이 고조되고 있고, 생계를 위해 조종사들이 일용직 막노동과 대리운전에 나선 기막힌 실상이 연일 서울의 주요 언론들에 의해 조명되고 있다.
그 사이에 창업주인 이상직 전 회장은 전북의 중심 지역에서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여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항공사 대주주인 그의 일가를 향한 책임론과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지만 그동안 이와 관련해서는 침묵해 왔던 지역신문이 꺼내든 의제가 희한하게도 ‘지역주의’다. 전북이란 지역주의를 자극시킨 형국이다.
전북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니 전라북도 차원의 지원을 호소한 기사는 누구를 위한 주문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자.
기사에서 강조한 핵심은 “새만금 국제공항 개항을 대비하고 코로나19 이후 지역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전북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항공사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심각한 유동성위기를 겪고 있는 이스타 항공이 전북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기사 리드에서 강조했다.
한발 더 나아가 기사는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도 사실상 무산된 상태”라며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 진행여부를 떠나 전북도 차원의 지원뿐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즉각적이고 지속성 있는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강원도 양양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신생 항공사 ‘플라이강원’의 사례를 들먹였다.
신문은 이날 1면뿐 아니라 2면과 6면에서도 작심하고 썼다. 2면 '전북 기반 이스타항공 지원 절실', 6면 '지역 기반 항공사 존폐 여부 곧 판가름' 이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전북 기반'을 유난히 강조했다.
그러나 서울의 언론들은 전날부터 “이스타항공이 '체불사업주'로 검찰에 형사 고발될 처지”라며 “이스타항공은 2월부터 5월까지 4개월 간 체불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고용노동청으로부터 받은 시정조치 이행 기한을 경과했다”는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다.
이상직 의원을 비롯한 일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직원들의 성토와 비난의 발언을 인용하기도 했다. 수개월째 급여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이스타항공 직원들은 지난달부터 항공사와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체불임금 해결 및 운항 즉각 재개 촉구 행동’을 벌이고 나선 때문이다.
매각협상을 진행 중인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이 직원들의 체불임금을 두고 핑퐁게임을 하며 해결 의지가 없자 항공사 조종사노조는 창업주인 이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상태다. 이들은 “‘반드시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단언한 민주당이나 국회의원이 된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은 묵묵부답”이라며 더욱 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날 전북일보는 지역주의 카드를 꺼내들며 ‘전북을 기반으로 한 기업이니 전북도가 나서서 지원을 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나섰다.
직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현장과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스타항공 설립자인 이상직 의원과 이 신문사 회장은 고교 동기동창 관계이다. 기사를 접한 독자들 반응이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다음은 6월 10일 수요일 전북지역 주요 신문들의 1면 기사 제목들이다.
전북일보
호남선 ‘저속철’ 우려 전북 대응 전략 필요
불꽃 튀는 열정
전북 기반 이스타항공 지원 절실
골목상권 디지털 플랫폼 구축’ 전북경제 위기 극복한다
전북도민일보
전북 도시재생사업 ‘지지부진’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 실효성 의문
기능경기대회 불꽃 활활
"한국탄소진흥원 전북에 지정돼야"
이기전 "도민들 문화 향유권 확대"
전라일보
전북도 일자리 지키기-만들기 온 힘
“수도권 유턴기업 지원 안될 말”
전주시 ‘인구늘리기’ 부서간 정책 협력
새전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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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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