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980년 5월 27일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광주학살 진상규명 촉구’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전국 최초로 고교 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가장 앞장섰던 학생들이 제적을 당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어 카메라에 담지 못해 가장 아쉽습니다.”
지난 2019년부터 3년 동안 장편 '전북의 5.18' 다큐멘터리를 직접 제작하며 취재를 하고 있는 김종관(49)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겸 독립PD의 꺼지지 않는 열정의 원천은 바로 '오월'이었다.
김종관 감독, '전북의 5.18' 3년 만에야 마무리 단계...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그가 대표로 운영하는 제작사 이름도 '오월'이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자 민주화를 향한 긴 도정의 출발점인 5·18과 관련된 현장이라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오월의 상처와 아픔의 현장, 그 중심에 섰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담아내는 일이 직업이 된 김 감독이 16일 <전북의소리>에 불쑥 찾아왔다.
광주도 아닌 전북에서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벌어진 10대 고교생들의 '신군부 퇴진, 계엄 철폐'를 외친 사건에 대한 다큐의 마무리 단계에서 추가적인 증언이 필요하다며 방문한 그와 8개월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지난해 7월 '전북의 5·18'을 주제로 다큐 영화를 제작한다는 내용과 함께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여 시간이 흘렀다.
[해당 기사]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사람들 찾는 일 가장 힘들어, 그 중에서도..."
'그동안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 묻자 그는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80년 5월 10대의 나이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 중 선봉에 섰던 학생들이 지금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당시 제적당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는 그들을 찾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열사들의 증언이 꼭 필요한데 그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해 가장 아쉽다"고 말하는 그는 "80년대 암울했던 언론의 상황과 이후 달라진 언론 환경,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이 국내 언론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취재하기 위해 찾았다"면서 질문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약 2시간 동안 필자와 대화를 나눈 내용을 녹음하며 영상을 동시에 담아내느라 분주했지만 그의 질문과 답을 피해 잠깐 사이 역 인터뷰가 진행됐다. 즉,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동시에 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인터뷰를 이끌어 낸 셈이 됐다.
20여년간 독립 PD, 독립다큐 감독, 미디어 교육자 등으로 활동해 온 그는 2019년부터 기획하고 제작해온 '전북의 5.18' 다큐멘터리를 올해 안에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해 완성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의 악재를 만나 많은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연됐다"고 말했다.
'가장 집중해 온 분야'에 대해 묻자 김 감독은 "1980년 5월 전주에서 무슨 일들이 발생했는지 알기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듣고 녹음하며 촬영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며 "그러나 기억의 차이 등으로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고 말한다.
"지금도 당시 상황 공개하기 꺼려하는 사람들 만나면 가슴 아파"
그는 또 "당시 상황을 떠오르게 하는 질문을 하면 혹시 피해를 입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잔뜩 경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 과정의 피해 가족들은 지금도 당시 상황을 공개하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 당시 전주신흥고에서 제적당한 학생 2명은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끝내 행방을 알 수 없어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북지역 언론들이 1980년 당시 취재한 기사와 촬영한 영상들을 당시 신군부의 보도 지침 등에 의해 내보내지 못하고 창고 등에 간직하고만 있었던 상황을 확인하면서 마음이 아팠다"고도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당시 상황을 조명하는데 지역언론들이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김 감독이 구상하는 다큐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날인 5월 27일까지도 전북 민주화운동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당시 전주신흥고등학교(전주신흥고) 학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방송실을 점거하여 호소문을 읽고 ‘계엄 철폐’와 ‘전두환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부터 전개된다. 결국 학교를 장악한 계엄군으로 인해 학교는 혼란에 빠지고 학생 시위를 돕던 교사들은 구속되고 주도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1980년 5월 27일 전주신흥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다큐의 중심 배경

1980년 5월 27일을 전후로 전주신흥고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배경과 당시 긴박하고 가슴 조였던 상황들, 또 40년 만에 이루어진 당시 학생들과 교사들의 화해를 담은 대화들이 한 편의 다큐로 제작되기까지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이전에도 광주의 5.18뿐 아니라 조명된 적이 없는 다른 지역의 민주화운동을 취재해왔다. 그렇게 알게 된 것이 5월 27일 김 감독의 고향인 전주의 한 학교, 바로 전주신흥고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다큐 제작 배경에 대해 회고했다.
김 감독은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신흥고 학생들의 입장과 어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대 편에 설 수 밖에 없었던 교사들 사이의 오해와 앙금, 그리고 40년만의 대화, 유혈 진압을 하지 않은 전북 계엄군 이야기를 추가로 취재해 지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화해를 다룬 1시간 30분 분량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5.18 이후 이뤄진 전국 최초의 신흥고 시위는 5월 27일 발생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이강희 씨, 이우봉 씨 등은 구속되면서 제적됐다 13년 만인 지난 1994년 2월에야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해당 기사]
전북, 5·18 민중항쟁 발화지점...최초 '희생자' 이세종 열사, 역사 뒤안길 묻힐 뻔
5·18 이후 이뤄진 전국 최초의 고교 시위, 당시에도 지역언론들은 '침묵'

그러나 당시 엄혹한 군부 통제 등으로 전북지역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들이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고 묻혀지고 잊혀졌다. 그 당시 전북지역 언론들은 학생과 시민들의 처절하고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을 그저 바라만 보며 침묵으로 외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은 "영화 제작을 위한 취재 과정에서 알게된 일이지만 당시 상황이 언론, 특히 방송에 거의 보도되지 않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다"며 "지금도 일부 방송사에는 당시 보도되지 않았던 육성 테이프 등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어 그 당시 보도하지 못했던 암울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압축 분량 다큐 4~5월 쯤 지역방송 소개 후 본 영화 개봉 예정"

한편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추가 취재와 상영을 위해 지난해 제작비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성공적으로 모으기도 했다. 이 외에 부족한 제작 비용 일부는 영화관련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김 감독은 말한다.
이 다큐 영화는 1시간 30분 분량이지만 50분 내외의 압축 분량을 먼저 공개할 방침이라고 한다. 김 감독은 "다가오는 5월 전에 시사회를 가진 뒤 지역방송을 통해 압축된 분량의 다큐가 먼저 방영되고, 전체 분량의 다큐는 전주영화제 등을 맞추어 개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북은 5.18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먼 변방이 아닌 5.18 민중항쟁의 도화선이자 민주화를 향한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게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그는 다음 인터뷰이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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