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 통제 전략(16)] 뇌려풍비(雷勵風飛) 전략

선진국에서는 권력과 언론의 '핫라인' 형성은 그 자체로 언론자유 위험 신호로 본다. 영국은 “총리와 언론사 책임자들의 만낮이 잦아지면 언론자유가 위태로와지는 신호”라고 저널리즘 시간에 가르칠 정도다. 정치권력과 언론사 사주 간의 '핫라인'은 정상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실을 해칠 위험 신호로 본다. 

긴장 관계에 있는 남북 핫라인은 긴장 해소와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러나 언론사 사주와 정치권력의 '핫라인'은 서로의 목적과 이해관계를 해결하는 은밀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핫라인’은 은밀하게 운용되는만큼 투명사회, 열린사회, 정보공개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청와대, 언론이 알아서 잘 다뤄주지 않을 때 '핫라인' 활용

청와대 춘추관 전경
청와대 춘추관 전경

‘뇌려풍비(雷厲風飛)’란 벼락같이 빨리 일을 해치운다는 뜻이다. '전광석화(電光石火)'와도 같은 뜻이다. 최고 정치권력과 언론사 사주들의 핫라인은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투톱 간의 합의는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뛰어넘어 신속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국민을 위한 것인지 정의로운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청와대는 주요 언론사 사장, 보도본부장 등과 일종의 ‘핫라인’을 세워놓고 정치적 민감한 사항에 대해 수시로 지시를 내리는 전략을 가동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이나 홍보비서관 등이 언론사 보도, 편성 책임자 등과 연결된 핫라인이지만 때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정치권력이 방송사나 신문사 보도에 개입하거나 특정 앵커나 언론인을 지목하여 배제 등을 요구하는 것은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다분하여 헌법과 방송법, 언론중재법 등으로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이 알아서 잘 다뤄주지 않을 때, 청와대에서 마사지가 좀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수시로 가동하는 직접적 언론통제 전략이 바로 핫라인 활용법이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017년 이례적으로 내밀한 정보를 공개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손석희 앵커 교체와 관련된 외압을 받은 일이 있다”며 “제가 받았던 구체적 외압이 5~6번 되고 그중 대통령으로부터 (외압이) 2번 있었다”고 털어놨다. 

"핫라인 시스템 작동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위험 요소"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그는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건에 연루돼 고초를 치렀던 입장에서 위협을 느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한다는 것은 제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고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외압을 견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전에 박근혜 정부 홍보수석 등이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통해 압력 행사를 했다는 주장은 처음이다. 또한 직접 압력을 받은 당사자가 고백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매우 높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본인의 해임에 대해 “정윤회 문건 보도 후 청와대가 재단에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같은 맥락의 사건이다. 핫라인을 통했지만 뜻을 이루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그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위험한 요소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홍보수석, 정무수석 등이 헌법이 보장한 언론자유를 위배하며 개별 언론사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한 것은 불법이다. 홍 전회장이 ‘압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만큼 대통령은 부당한 압력을 불법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청와대의 핫라인은 가동됐음을 녹취록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세월호 사건을 왜곡·축소 보도한 실상의 이면을 공개하는 청와대 홍보수석과 KBS 보도국장 간의 적나라하고도 내밀한 녹취록이 2016년 공개되자 정치권과 언론계에 큰 파문을 가져왔다. 야권과 언론계는 ‘청문회 개최를 통해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여권은 ‘홍보수석의 통상적 업무’로 맞섰다.

 ‘진실’보다 '대통령의 심기’ 최우선...진실 통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왼쪽)과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오른쪽)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왼쪽)과 김시곤 KBS 전 보도국장(오른쪽)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뜻으로 볼 수 있는 이원종 대통령실장도, 황교안 국무총리도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아마 협조를 구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홍보수석의 통상적 업무’로 볼 것인지 ‘제2의 보도지침 사건’으로 규정할 것인지는 녹취록 내용과 실제 보도 내용 등을 종합 검토해봐야 한다. 이 사건은 흐지부지됐지만 재조명해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사안이다.

먼저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관점에서 녹취록 내용을 보면 가장 두드러진 점이 ‘진실’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최우선으로 살피고 있는 점을 볼 수 있다. 당시 이 수석은 왜 ‘해경 비판’을 못하게 하거나 아예 관련 아이템을 빼달라고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했을까. 해경의 잘못을 몰라서가 아니라 해경 비판은 곧바로 정부 비판이고, 박 대통령 비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수석은 “...그 배에 있는 그 최고의 전문가도 운전하고 있는 놈들이 그 뛰어내리라고 명령을 해야 뛰어내리고 지들은 뛰어내릴 줄은 몰라서 지들은 빠져나오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놔두고 그러는데 그걸 해경을 두들겨 패고 그 사람들이 마치 별 문제가 없듯이 해경이 잘못이나 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몰아가고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 그게 맞습니까?”라며 김 국장을 몰아붙였다. 

오직 한 사람 위해 존재하는 홍보수석 전화질, 공영방송 위상 위태롭게 만들어 

뉴스타파 화면 캡처
뉴스타파 화면 캡처

이 수석은 KBS에 ‘선장과 선원들의 잘못’ ‘선주의 잘못’에 집중해 달라며 해경 비판, 정부 비판 아이템은 아예 바꾸라고 요구했다. 말투는 사정조지만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위압적이었다. 홍보수석이 그렇게 보호막을 치려했던 해경에 대해 얼마뒤 박 전 대통령은 ‘해경 해체’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해경의 초기 대응 실패와 구조 실패 등 총체적 실패에 대한 당시 언론의 비판이 옳았다는 것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다.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관련 아이템의 순위 배정, 넣고 빼기에 대한 요구, 간섭은 진실을 통제한 결과가 됐다. 진실과 국민을 두려워했다면 그렇게 전화할 수 있었을까.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홍보수석의 전화질이 공영방송의 위상을 위태롭게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까. 이는 언론자유를 명시한 헌법을 위반한 사항이며 특히 방송법에서도 일체의 외부에서 보도 편성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한 법규 위반사항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 어떻게 주무르는지 알려줘

JTBC 화면 캡처
JTBC 화면 캡처

방송법 제4조 제2항,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제목 하에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 그 처벌 규정도 두고 있다. 방송 제작, 편성에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간섭이나 압력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김 국장이 용기를 내 녹취록을 공개한 일은 평가받아야 한다. 청와대라는 최고 권력기관에서 홍보수석이란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사에 어떤 식으로 개입, 압력행사를 하는지 적나라하게 공개한 것은 반면교사가 된다. ‘권언  유착’이라는 용어가 민주화를 거치며 사라지는 듯 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정치권력이 공영방송을 어떻게 주무르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BBC 공영방송은 외부 압력에 어떻게 대응하나?

영국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영국 BBC방송 홈페이지 캡처

전 세계 공영방송의 모델이 되고 있는 영국의 BBC도 때로 정치권력으로부터 압력과 회유를 받았지만 독립성과 중립성을 세우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1982년 4월 포클랜드 전쟁 당시였다. 당시 BBC는 영국 군을 ‘우리 군'이 아닌 '영국 군’으로 호칭했다. 전쟁을 이끌던 마가렛트 대처 총리는 “BBC는 지나치게 아르헨티나 편을 들고 있다. BBC는 영국인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한다. 적군인가 아군인가”라며 비판했다. 

아군과 적군으로 극명화되는 전쟁이라는 상황에서조차 BBC는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을 내세워 대처 정부와 대립각을 형성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는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 침공에 공동으로 보조를 맞췄다. 

정당성 논란을 가져온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BBC는 공개적으로 블레어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때문에 당시 BBC 사장인 다이크와 블레어는 원수지간이라고 회자됐다. 영국의 BBC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치권력의 회유와 압박에 맞서서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사장과 경영진, 보도국장, 기자, PD 등 전 BBC 가족들이 똘똘 뭉쳐 지켜냈다. 

영국 시민들이 전 세계에 영국의 3대 자랑 거리로 꼽는데 BBC방송(영어와 옥스브리지)을 반드시 포함시킨다. 공영방송의 수준이 그 나라의 정치 수준, 국민의 수준으로 평가된다.(계속) 

/김창룡(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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