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 통제 전략(14)] 이포역포(以暴易暴) 전략
협박은 한국의 언론인들이 종종 사용하는 무기다. 펜과 마이크를 들고 멋대로 떠들 수 있다는 것은 취재원의 입장에서는 위협적인 무기로 느낀다. 언론인 당사자들은 ‘요즘 협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취재당하는 입장은 다른 법이다.
그러나 권력은 때로 협박으로 협박하는 언론인을 관리하기도 한다. 흔히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을 다스린다고 할 때 채찍에 해당되는 것이다. 협박이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 그 형태가 다양할 수 있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만큼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언론인이 권력 앞에서 협박당하고 심지어 대량으로 직업 잃기도...'이포역포'

'이포역포'란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정치를 하는데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언론인의 직업은 때로 협박을 당하기도 하지만 때로 협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협박은 어느 경우나 잘못된 것이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쉽게 목격된다. 언론인들은 취재과정에서 보도를 무기삼아 취재대상을 협박·압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제주지역의 모 신문사 기자가 공무원 폭행과 협박한 혐의가 사실로 확인된 적이 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는 "언론인으로서 역할을 되돌아보고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문제의 기자’는 제주시 연동에 있는 한 아파트 인근 사거리에서 A 공무원을 그만두게 하겠다'는 취지의 협박과 함께 폭행해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았다. 그는 혐의가 확인돼 사법처리 당했다.
기자가 이처럼 공무원을 협박하는 일이 흔한 경우다. 특히 지방에서 언론인은 여전히 일종의 갑으로 군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언론인이 권력 앞에서 거꾸로 협박당하고 심지어 대량으로 직업까지 잃기도 한다. 협박하는 대상에게도 협박 전략은 통하는 법이다.(아래 내용 '이포역포' 참조)
이포역포(以暴易暴)
이포여포란 위정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편(伯夷叔齊列傳篇)〉에 실려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왕은 아우 숙제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어 문왕(文王)에 추존되었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무왕의 호위 무사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공이 이들을 의인이라고 하며 돌려보내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여 천하가 주(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비(薇)를 꺾어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 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禹),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고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역사 이전부터 백이와 숙제가 힘의 정치에 대한 부당성을 비판하였지만, 지금도 이런 정치 형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한다.
언론인들 스스로 자기검열로 비겁...침묵 일관

전두환 군사정권은 언론인, 언론사를 회유하기 위해 보안사를 통해 K공작계획을 비롯한 수 차례 언론 공작을 했으며, 언론인 협박과 언론인 대량 해직, 언론 강제 통폐합 조치에도 관여했다. 그 전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언론인들을 ‘채찍과 당근’으로 다스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도 언론 통폐합으로 언론인 강제 해직을 감행했다.
사이비 언론인들도 있었지만 양심적인 저항언론인들도 포함됐다. 언론인 협박은 무더기 해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민주주의 사회가 왔다고 생각했지만 언론인 협박은 여전했다. 살해, 투옥 등의 협박만이 아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인 협박은 또 다른 행태로 나타났다.
이완구 총리 후보는 2015년 드러난 그의 언론인 다루는 솜씨는 단연 주목받았다. 그는 당시 ‘김영란법’으로 기자를 협박하고 때론 말잘듣는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교수’, ‘총장‘도 시켜줄 수 있다고 당근도 내비쳤다. 문제는 눈앞에서 언론인들을 무시하고 겁박하는 폭언을 듣고도 기자들은 이를 바로 기사화 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뒤늦게 알려지긴했지만, 언론인들 스스로 자기검열로 비겁해졌기 때문이다.
정부 비판 뉴스 수정·삭제해달라고 요청한 녹취 파일 공개 '파문'
국무총리라는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그가 기자들 면전에서 드러낸 천박하고 교활한 언론관은 다른 정치인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의 언행에서 드러난 언론관을 보고도 적절하고도 용기있게 대응하지못한 언론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런 오만한 인사들이 고위 공직에 가면 어떤 식으로 법을 악용하고 언론 통제술로 한국언론을 황폐화할지 우려스럽다.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못하는 용기없고 초라한 언론인들의 입지가 더욱 안타깝다. 취재 기자나 언론사 간부나 똑같이 논리와 용기, 정의감이 요구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에 언론인이 존중받는 것처럼, 권위주의 국가의 순치된 언론인들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가장 확실하게 망가진 공영방송 KBS와 MBC는 ‘비극의 세월호 보도 사건’에 대해 납득할 수 없는 뉴스를 전했다. 이미 낙하산 사장들의 보도불법 개입이 드러났지만 녹취록 파문으로 밝혀진 사실은 더욱 강력하고 직접적이었다는 점이다.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개입 사건’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의심케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이 전 수석이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정부 비판 뉴스를 수정·삭제해달라고 요청한 녹취 파일이 공개돼 언론계 파문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21세기에 정부가 언론 통제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믿지못했다. 민주주의가 정착됐다고 생각한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 통제 시도가 벌어졌고 상당수 먹혀들었다는 점은 충격이었다. 청와대 권력자가 과거 군사독재정권처럼 언론사에 직접 ‘협박’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방송은 방송에 맡기고 정부는 정부의 길로 가야

녹취록에 따르면, 이런 협박은 방송제작, 편성에 영향을 미쳤고 국민이 ‘기레기’라고 할 정도로 기자와 언론사를 믿지않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MBC에도 이런 협박술을 구사했는지 알 수 없지만 MBC 로고가 붙은 방송카메라를 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방송사는 신뢰를 잃고 배척과 불신의 대상이 됐다.
내용을 잘모르는 국민은 분노하고 언론인들을 욕하는데 그쳤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보면 부정한 권력의 부당한 방송개입이 이처럼 음험하게 작용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런 범법행위를 한 소위 친박인사들이 여전히 국회의원 행세를 하며 위정자 노릇을 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비극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청와대의 협박술은 국민으로 하여금 ‘대통령 주위 사람들이 대통령을 추종하며 언론을 조종하려 든다’는 생각을 갖게했다. 권력의 속성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이를 부정하고 공개하여 문제삼지 못한 방송사는 외면을 당했고 언론인들은 ‘기레기’ 신세로 전락했다.
이명박 정권 때 이동관 홍보수석은 이를 ‘뉴스 마사지’라고 표현했고 박근혜 정권에서 이정현 홍보수석은 ‘협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정치인은 ‘언어를 강간한다’라는 격한 표현이 있다. 권력자가 무슨 표현을 사용하든 보도국장 등 언론책임자가 방송법이 규정한 외부의 일체간섭을 배제하도록 한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은 외압이다.
방송은 방송에 맡기고 정부는 정부의 길로 가야 한다. 비판받을 일이 있다면 비판받고 개선해야 한다. 그것을 감추고 왜곡하고 축소하게 되면 결국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사기꾼으로 만든다. 그리고 언론인은 기레기가 된다.
11월 2일이 세계 언론인의 날이 된 이유?
지난 10년간 언론인 827명 사망...4.5일마다 한 명. 지난 10년간 전 세계에서 살해당한 언론인 수가 8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리를 파헤치거나 분쟁 또는 전쟁이 벌어지는 지역에서 취재하다 이런 희생을 당하고 있다.
지난 2014부터 2015년 사이에 목숨을 잃은 213명의 언론인 가운데 78명은 아랍 국가에서 살해됐다. 시리아와 이라크, 리비아 등 분쟁 지역에서 취재하다 사망한 기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이라고한다.
유네스코는 2016년 언론인의 사망 원인이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된 것은 10건에 한 건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10년간 발생한 언론인 살해 사건만 집계했을 뿐 언론인 납치와 감금, 고문, 협박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는 지난 2013년 프랑스 언론인 2명이 무장괴한에 납치돼 숨지자 매년 11월 2일을 '세계 언론인 보호의 날'로 선포했다.
/김창룡(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