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창업주인 이상직 국회의원(무소속‧전주을)이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이스타항공과 근로자들은 ‘매각’과 ‘청산’, ‘부당 해고’와 ‘구제 신청’ 등을 놓고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상직 구속으로 인해 리스크와 불신감이 더욱 가중된 이스타항공과 전현직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힘든 상황을 짚어본다.
먼저 근로자들이 회사와 장기간 벌이고 있는 미지급 급여 및 해고 관련 소송 투쟁이 가장 처절하다. 지난해 12월 14일, 605명의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된 가운데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서를 접수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14일 이스타항공이 대규모 정리 해고를 단행한지 62일만이었다. 이스타항공 노조와 시민단체는 지난해 9월 3일부터 국회 앞에서 정부와 여당에 정리해고 사태를 해결해 달라고 촉구하며 농성했지만 진전이 없자 마지막으로 지노위 구제 신청 카드를 빼들었다.
부당 해고 구제신청서에는 이스타항공의 경영상 해고의 부당성과 사업주가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뼈를 깎는 고통분담 자구안 들고 찾아갔지만 면담 거부하거나 묵묵부답"
단식 투쟁에 나선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은 “노동자들은 체불된 임금도 일부 포기하고 인력 감축에 상응하는 임금 삭감, 무급 순환휴직 등을 통한 고용 유지방안을 제시했지만 경영진은 회사편에 선 근로자 대표 일부와 뜻을 같이하며 거부했다”며 “말도 안 되는 대량 해고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하며 이에 노동자들이 지노위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은 1차로 44명만 한 상태”라며 “지노위에서 부당 해고 판정을 받고 구제가 되면 2차로 신청할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9월 초 많은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하고 10월 14일 정리 해고를 단행했다. 605명이 정리 해고가 단행 된지 2개월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서 또 다시 국회 앞을 노동자들이 찾은 것이다.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와 정리 해고 철회 및 운항 재개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이스타항공 대량 정리 해고 사태가 이상직 의원의 매각대금 챙기기 먹튀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온 국민이 알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스타항공 M&A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그 모든 반노동 패악들을 방조, 지원해온 정부와 여당은 ‘단 하나의 일자리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던 약속과는 달리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노동자들이 뼈를 깎는 고통분담 자구안을 들고 찾아갔지만 면담을 거부하거나 묵묵부답이었고 노동자가 단식으로 실신해 쓰러질 때까지 철저히 외면했다”며 “그 뿐만 아니라 정부 여당의 태도가 이러하니 볍률을 통한 구제 신청이나 송사들도 흐지부지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노조의 자구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이스타항공의 운항 재개와 고용 유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며 “9개월치 임금도 못 받고 정리 해고 된 노동자들이 더 이상 거리에서 한겨울 강추위에 떨며 절규하지 않도록 하라”고 촉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관망만 할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 후로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이 구속되고 나서야 5개월만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위원회가 이스타항공의 정리 해고에 대해 부당 해고 판정을 내렸다.
이스타항공 해고자 41명 부당 해고 구제 신청 첫 인용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에 따르면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3일 이스타항공 해고자 41명의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인용했다. 또 육아휴직 중 해고 대상에 올랐다가 사측이 해고를 철회한 뒤 사직한 다른 3명은 구제 신청이 각하됐다.
노동당국이 이스타항공 정리 해고의 부당함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7월 제주항공과의 매각 협상이 무산되자 3개월 뒤 경영난과 인수·합병(M&A)을 이유로 605명에게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해 이미 많은 직원들이 생존을 위해 삶의 현장에서 아르바이트와 공사장 등에서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온 사례가 다반사였다.
다행히 해고자들 중 일부가 지난해 12월 서울지노위에 부당 해고 및 부당 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제기했기에 이런 판정을 그나마 오랜 시간 후에 받아낸 것이어서 값진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해고 근로자들은 “긴박한 경영상 이유나 해고 회피 노력이 없었고 대상자 선정이 불공정했다고 구제 신청 이유를 설명했는데,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판정 이유는 판정서가 공개되는 한 달쯤 뒤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정리 해고에 ‘부당 해고’ 첫 판정 내렸지만 돌아갈 수 없는 상황
더욱이 구제 신청이 인용됐지만 해고 노동자 41명은 당장 회사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사측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라며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져 해고 근로자들이 복직하는 데는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상직 구속 리스크가 악재로 작용하면서 이스타항공은 기업회생 절차가 순탄치 않다. 매각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청산 절차에 들어가게 되는데 벌써 업계에서는 청산 쪽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다.
더욱 복병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부채 문제 등이다. 인수자 선정 작업이 지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악재들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는 20일까지 법원에 제출해야할 회생 계획안도 내놓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회사의 1차 매각 불발과 근로자들의 대량 해고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받는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은 지난달 28일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영어의 몸이 돼 이스타항공의 매각 협상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여당 정리 해고 방조, 악의적 운항 중단‧구조조정 진상 밝힐 것”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가 4일 발표한 성명 내용은 그동안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는지 알 수 있다.
노조는 성명에서 “부당 해고 판정은 막무가내 먹튀 구조조정을 확인한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정리 해고 방조를 반성하고, 악의적 운항 중단과 구조조정의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이스타항공 정리 해고에 대해 부당 해고 판정이 내려진 것과 관련해 노조는 “구속된 창업주 이상직 의원을 거액 매각대금을 챙기기 위한 '먹튀'자로 규정”하고 "이번 판정은 이상직과 경영진이 애초에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의지가 전혀 없었고, 오직 먹튀를 위해 거액 매각대금을 챙기고자 막무가내로 인력을 감축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정부기관이 인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한 "노동자들의 항의와 단식 절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불법적으로 자행된 무려 605명의 정리해고에 대해 정부당국과 여당이 방치하고 심지어 방조까지 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며 “불법적 집단해고가 자행되는 동안 정부당국과 여당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노조는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감독은커녕 중재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노조가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했으나, 매각을 통한 회생이 먼저지 부당해고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하냐며 무시했고, 임금체불 진정건은 1년이 넘도록 지금까지 조사가 완료되지 않았으며, 4대보험료 횡령 고발건도 해를 넘겨서야 입건조치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더욱 괘씸한 것은 고용노동부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 취업알선에 나서며 반발을 무마시키려고만 했다는 점이다"며 "사실상 정부 여당과 정부기관 모두가 한패가 돼 이상직 의원을 감싸고 정리해고를 방조한 것"이라고 성토했다.
끝으로 노조는 "이상직의 처벌로 할 일 다 했으니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겠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라며 “이제라도 정부와 여당은 정신을 차리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상직 리스크 작용? 이스타항공 ‘청산 수순’ 전망 우세
한편 이스타항공의 재매각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청산 작업이 우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과 관련된 비리 혐의가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매각 협상이 점점 꼬이고 있다. “청산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이스타항공은 오는 20일까지 입찰자가 포함된 회생 계획안을 제출해야 하지만 이때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할 경우 청산 판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청산 우세’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과의 매각이 결렬된 이후 재매각을 추진했으나 새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 공개 입찰 전 예비 인수자를 먼저 정하는 '스토킹 호스' 방식의 매각을 시도해왔다.
스토킹 호스 방식은 예비 인수자를 선정해 놓고 별도로 공개 입찰을 진행해 조건이 더 좋은 매수 의향자가 나타나면 매수자를 변경할 수 있다. 공개 입찰이 무산될 경우 예비 인수자에게 매수권을 넘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6~7곳이 관심을 보인다는 회사 측 주장과는 달리 인수 의향자는 나타나지 않은데다 이상직 의원의 구속 이후 리스크가 더욱 커지면서 인수에 대한 관심도 점점 멀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재매각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은데다 이스타항공의 존속 가치가 청산 가치보다 낮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했던 100억원 상당의 전환사채를 ‘아이엠에스씨’ 등에 임의로 옮겨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이상직 의원과 이스타홀딩스 대표인 장녀 이모 씨를 배임 등의 혐의로 추가고발했다.
이스타항공의 불투명한 운명 속에 전현직 근로자들의 한숨과 고통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회사는 차치하고 애꿎은 직원들을 위한 정부와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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