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의 영화 속으로 :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영화 '곰돌이푸' 표스터
영화 '곰돌이푸' 표스터

푸, 너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시작해야할 것 같아. 난 솔직히 너와 네 친구들에 대해 아는 게 없었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란, 너희들이 그냥 어떻게 생겼구나, 하는 정도? 그래. 까놓고 얘기할게. 난 네가 꿀만 밝히는 하의실종 곰탱이인 줄 알았어. 그런데 맙소사. 너, 아니 푸 님은 현자셨어요!

워라밸, 소확행

Work and Life Balance,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최근 널리 사용되는 신조어 둘이다. 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실제로 찾고 누리기는 생각보다 어려운 두 가지. 그런데 푸는 그것을 참 쉽게 이야기한다. 어렵게 생각하는 크리스토퍼 로빈이나 내가 오히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동화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어린 시절은 관객으로 하여금 포근한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시절의 생각과 행동은 과거에 불과하고, 어른이 된 지금은 그 책을 덮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크리스토퍼 로빈의 경우는 가족을 위해서다. 하지만 로빈은 가족을 위해서 하게 된 일을 위해 가족에게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고 만다. 현실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들을 영화에서 발견하면서, 문득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책 <월든>이 생각났다. <월든>에서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2년 간 생활한다. 검소하게,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면서, 자연과 함께 지내는 그 생활이 부러우면서도 현실불

가능한 판타지처럼 느껴졌었다. 소로우가 노동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가족이라든지)을 오히려 놓치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를 지을 때, ‘당신은 혼자라서, 책임질 것이 없어서 그렇게 자유롭게 당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괜히 입이 댓 발은 나오기도 했었다. 혼자라고 해도 막상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은데. 용기 없는 자신이, 혹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을 쉽게 놓지 못하는 자신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 푸를 다시 만나다

푸와 친구들을 잊지 않겠다던 어린 크리스토퍼 로빈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점점 어른이 되어 간다. 기숙학교로 진학하면서 순수하고 행복했던 시절과 이별하고, 엄격한 규칙을 따르며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청년이 되어서는 폭격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고, 귀환 후에는 자본주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개인의 행복보다 조직의 성장을 우선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내와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런던의 가방회사 윈슬로에서 효율관리 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회사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20% 이상 비용 절감 방안을 내놓아야만 하게 되었고, 미리 약속되어 있던 가족여행은 당연한 듯이 함께 떠나지 못하게 되었다. 점점 멀어지는 아내와 딸을 느끼면서도, 일을 놓지 못하는 로빈. 그런 그의 앞에 선물처럼 혹은 재난처럼 푸가 나타난다.

푸는 숲 속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서 로빈에게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했지만, 어쩌면 도움이 필요했던 것은 크리스토퍼 로빈이나 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뒤뚱뒤뚱 느릿느릿 일견 답답해 보이기만 한 푸지만, 입에서 나오는 족족 명언이니, 이거야 받아쓰기 준비를 하고 영화를 봐야 할 기세다.

길을 잃었다는 로빈에게, 그래서 내가 널 찾았다고 하는 푸. 익숙한 곳에서 멀어져야 가고 싶은 곳에 닿게 된다는 푸.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대단한 무언가를 하게 된다는 푸. 내가 나다우면 안 되는 거구나, 라면서 시무룩해하던 푸.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역설법이 떠오르기도 하는, 쉬우면서도 매우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대사들이 많았다. 푸의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며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찡-하게 울려서,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하지는 못했다.

헤팔럼, 우즐은 누구?

로빈이 숲 속 친구들을 찾았을 때, 친구들은 로빈이 어릴 적 친구인 그 ‘크리스토퍼 로빈’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크리스토퍼 로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로빈은 친구들이 무서워하는 헤팔럼과 싸워 이기는 척 하게 된다.

우산으로 서류 가방을 찌르고 던지고 치열하게 싸우는 척하는 장면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빈에게 중요하다는 그 직장서류가방이 오히려 행복을 잡아먹는 코끼리인 헤팔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빈에게 비용삭감방안을 찾아낼 것을 떠넘기고, 자신은 주말에 유유자적 골프를 치러 다녀온, 희생만 강요하는 상사가 우즐이라고 언급되기도 했고.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는 존재는 무엇인가? 혹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행복을 우리도 모르는 새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언가’가 날 찾아 와

발표를 앞둔 로빈에게 아내가 찾아와 딸이 사라짐을 고한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로빈은 미련 없이 돌아서 아내와 함께 딸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딸을 찾았을 때, 그것으로 소중한 것을 되찾았다며 회사 일은 반쯤 체념했을 때,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애써도 보이지 않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로빈의 눈에 보인다.

그것은 바로 역삼각형. 원래 삼각형의 꼭대기인 상위 몇 %에게만 집중되던 고객을 뒤집어보자 가방을 팔 수 있는 대상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어떤 사람은 우리 가방이 개나 소나 다 가질 수 있는 형편없는 상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버럭 화를 냈지만, 윈슬로 회장은 로빈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직원들에게 유급휴가를 주고 여행을 떠나게 한다면, 그들과 그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은 윈슬로 가방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는 로빈.

사실 어찌 보면, 해피엔딩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영화 속이기에 가능한 상황 설정이 아닌가 하고 삐딱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적이 전혀 없는가?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섰을 때, 혹은 잠시 잊고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푹 자고 일어났을 때, 답답하기만 하고 안개만 자욱한 듯했던 머리가 맑아지며 보이지 않던 해결책이 떠오른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는가?

이실직고하자면,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가 지극히 서투른 사람이다. 충분한 시간이나 여유가 생겨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게으른 사람 같아서, 어떻게든 없는 일도 만들어내서 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온몸이 아프다. 가끔 천변에서 느릿느릿 거의 움직이지 않는 커다란 새를 보며, 유튜브에서 몇 분 동안 꼼짝 않고 잠만 자는 고양이를 보며 ‘나도 저 느긋함을 배워야 하는데’ 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곰돌이 푸를 만나서 행복했는가? 그렇다면 설령 매일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처럼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이 silly old bear를 따라 뒤뚱뒤뚱 빈둥빈둥 꿀이나 퍼먹어보면 어떨까? 혹시 모르지. 빨간 풍선 같은 하루를 내게 선물해주면, today is my favorite day가 될지.  /<사람과 언론> 제3호(2018 겨울).

/김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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