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의 영화 속으로

‘최근’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작년에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봤다. 6월에 개봉했던 ‘악녀’와 11월에 개봉했던 ‘미옥’. 여자 캐릭터가 주연인 것보다는, 화려한 액션을 좋아해서 보러 간 것이었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 아쉬움을 안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난 보통 액션 영화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이나 엔딩에 뜬금없이 키스신이 나오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액션 영화라면 제발 액션으로 시작해서 액션으로 끝내주세요~파(?)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영화에서 키스신이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왜 주인공 여자와 악역 남자 사이에 ‘로맨스’라는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여자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취하려면 ‘모성애’가 등장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바뀌고 다시 여름, ‘구자윤’이라는 여고생 캐릭터를 내세운 액션 영화 ‘마녀’가 개봉했다. 예고편을 보고 다시금 기대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조심스러움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녀’를 보고 난 후 나의 감상은 ‘재밌는데?’+‘다음 편이 궁금해!’이다.
10년 전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은 자윤은 양부모의 보살핌 아래 착하고 밝은 여고생으로 자란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돕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윤의 앞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솔직히 전반적인 내용이 완전히 신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앞서 말한 두 영화 외에도 ‘한나’, ‘루시’, ‘레지던트 이블’과 같은 영화라든지, ‘최종병기 그녀’, ‘엘펜리트’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도 많이 떠올랐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 약물, 훈련 등으로 만들어진 여자 캐릭터가 능력을 발휘하면서 주위를 파괴해나간다는 내용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 내용, 설정, 전개방식을 가지고 박훈정 감독님만의 스타일로 영화를 잘 버무려냈다고 생각한다. ‘악녀’와 ‘미옥’에 비하면 쓸데없는 군더더기는 빼고 균형을 잘 잡은 영화라고 느꼈다. 정의감에 불타지도, 비극적 기억에 잠식당하지도 않은.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오프닝 시퀀스다. 고대부터 현대에 걸쳐 행해진 ‘마녀’와 관련된 생체 실험(인신공양, 해부, 나치독일 등) 사진들이 차례로 지나가는데, 우리가 쉽게 믿기 힘든 일들이 만화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실제로 자행되어 왔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는가에 대해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예고편만을 봤을 땐 여자 캐릭터를 내세워 화려한 액션을 뽐내는 소위 ‘엔터테인먼트’용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도입부에서 그와 같은 사진들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마녀’라는 존재에 대해 접근했다고 느꼈다.
‘마녀’라는 것은 뭘까? 사전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유럽 등지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요녀. 주문과 마술을 써서 사람에게 불행이나 해악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2. 악마처럼 성질이 악한 여자.
뭔가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정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련 단어로 뜨는 ‘마녀 재판’이나 ‘마녀 사냥’ 쪽이 오히려 더 내 머릿속 이미지와 가깝다고 할까? ‘특정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라…….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캐릭터는 ‘잔 다르크’였다.
영화 속에서 자윤은 어려운 집안 사정을 타개하기 위해 막대한 상금이 걸린 오디션에 참가한다.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여 방송에서 자윤과 같은 초능력자들만이 할 수 있는 묘한 개인기를 펼쳤을 때, 부모님은 걱정 어린 눈길로 자윤을 보며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것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 해.”라고.
창간호 잡지에서 리뷰 했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도 그렇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신과 괴물, 스타와 마녀라는 것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선보이는 것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선을 기점으로 그것을 초과하게 되면, 상대를 철저히 배척하고 죽여 없애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는다. 숭배와 멸시, 아이돌과 마녀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탄생 오디션의 유력한 우승 후보 ‘구자윤’과, 차원이 다른 살인병기로 키워진 번호로 불리는 아이. 둘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다.
기억을 잃은 자윤의 앞에서 친구의 목에 칼을 들이밀며 위협하는 남자에게 자윤은 반복해서 말한다.
“저 정말 아니에요. 정말 아니라고요. 사람을 잘못 보신 거예요.”
왠지 예수의 제자라는 것을 삼세 번 부인하던 베드로가 생각났다. 성녀와 마녀, 종교재판 등 기독교적 색채를 띠는 단어를 먼저 떠올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부인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서 유사함을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으면, 나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나를 모두 드러내는 순간, ‘마녀’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마녀’는 제목이 나오는 초반부터 PART 1. SUBVERSION 이라며 대놓고 시리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녀의 첫 번째 이야기인 ‘전복, 파괴’에서는 “내가 네 엄마야. 내가 널 만들었어.”라면서도 위협을 느끼고 자윤을 오히려 죽이려는 닥터 백도, 일종의 실패작인 자신의 몸을 복구시키는 데 이용하려 함과 동시에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라며 자윤을 죽이려드는 미스터 최도, 같은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키워졌음에도 공감하기보다는 힘의 우열을 가리려고만 한 귀공자도 모두 사라졌다.
이후는 ‘충돌’이라는데, 자윤이 어떻게 사람들과, 회사와, 세상과 충돌할지 기대가 된다. ‘마녀’를 보기 위해 나는 또 극장으로 달려가겠지만, 사실은 마녀가 마녀로 불리지 않기를 원한다.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에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마녀’로 불리는 것은 조금 슬프고 안타깝다. 아니, 반대로 ‘마녀’라는 영화를 통해 ‘마녀’가 새롭게 정의되기를 바란다면, 조금 큰 욕심이려나? 어쨌든 오늘의 결론은, 그래서 2편은 언제 나온다고요?
/김명주(<사람과 언론> 제2호(2018 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