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 기간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1·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던 이학수 정읍시장이 '직위 상실'의 위기를 가까스로 면했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판결을 내렸지만 기소 후 무려 2년여 만에 이뤄진 결과란 점에서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특히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해야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제규정'을 사법부가 스스로 위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울러 지난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도내 단체장 및 기관장들 중 이 시장과 더불어 가장 늦게까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서거석 전북교육감의 재판에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대법원 ”2심의 유죄 판단은 법리 오해한 잘못”...무죄 취지 판단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3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 전주재판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날 “TV토론회 발언과 라디오 토론회 발언, 보도자료 내용 등을 구별해 판단해야 한다”며 “2심의 유죄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고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또한 대법원은 “TV토론회에서는 상대 후보가 이를 반박하거나 해명할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다”며 “이 시장이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취지를 밝혔다. 이밖에 “문제가 된 표현들은 전체적으로 ‘의견의 표명’에 해당한다”고 밝힌 대법원은 “진실에 반하거나 과장된 일부 표현을 근거로 허위사실공표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더 나아가 “후보자가 정책공약이나 이를 비판·검증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에 포함된 일부 표현을 근거로 그 전체적인 취지나 맥락에서 벗어나 사후적인 해석을 가미해 형사처벌의 기초로 삼는 것은 선거의 공정이라는 목적에 비춰 보더라도 선거 과정에서 장려돼야 할 표현을 지나치게 위축시키거나 봉쇄하는 것”이라는 법리를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날 판결로 이 시장은 일단 시장 직 상실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선출직 공직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돼 직을 상실하게 된다. 이 시장은 원심의 형(벌금 1,000만원)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시장 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1·2심 모두 벌금 1,000만원 '당선무효형', 대법원서 뒤집혀
이 시장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을 앞둔 그해 5월 말 당시 경쟁 후보였던 무소속 김민영 후보가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허위사실을 TV와 라디오 토론회, 보도자료 등을 통해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 시장은 “김 후보가 산림조합장 재직 당시 구절초 테마공원 인근의 임야와 밭 16만 7,081㎡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며 부동산 투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 후보가 해당 공원의 국가정원화 추진을 공약한 배경에 사적인 개발 이익이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김 후보 측은 "제기된 의혹이 허위"라며 이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재판에 넘겨진 이 시장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아 위기에 놓였었지만 대법원서 결과가 뒤집혔다. 그런데 이 시장은 기소 후 무려 8개월 만에 1심 재판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정읍지원 제1형사부는 2023년 7월 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이어 이 시장은 1심 판결 이후 4개월 만인 2023년 11월 항소심에서도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았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는 지난해 11월 1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시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문제는 2심 판결 후 1년이 다 돼서야 대법원 상고심 판결 일정이 확정되고 판결이 이뤄져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해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제규정'을 사법부가 스스로 위반한 셈이 됐다.
그런 사이에 이 시장은 임기 반환점을 지나 후반기에 접어들었고 선거법 위반 혐의로 당선 무효형을 1심과 2심에서 선고받고도 각종 시정을 추진하며 인사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는 시민들은 불안하고 불편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나 이 시장과 변호인 측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은 토론회 직전 상대인 김민영 후보 측근으로부터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고 의혹을 제기한 것 뿐”이라며 “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줄곧 주장했다.
정읍시민들 “사법부 판단 너무 지체...시정 불안·불만 가중"
이 시장은 이날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 직후 기자간담회를 갖고 “기소된 지 1년11개월 동안 함께 아파하고 격려해 준 시민들의 덕분에 상고심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며 “현명한 판단으로 단절 없는 시정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해준 재판부에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직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다툴 쟁점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고등법원에서 잘 설명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민경 씨(정읍시 충정로) 등 정읍시민들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 “군산시장이나 익산시장처럼 지난 지방선거 기간 중 발생한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한 상고심 심리가 빨리 이뤄져 무죄를 확정 받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이 나오도록 기소 후 무려 2년이 걸리고, 1심과 2심 재판에서 연속 1,0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은 시장에게 신뢰를 갖기 힘들었다. 사법부 판단이 너무 지체되면서 시정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더욱 가중됐다"고 입을 모았다.
서거석 교육감 항소심 진행 중...6·1 지방선거 선거범 재판 왜 이리 늦나?
한편 지난 2022년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도내 단체장 및 기관장들 중 이 시장과 더불어 가장 늦게까지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서거석 전북교육감에 이번 이 시장의 대법원 판결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서 교육감은 당시 상대 후보였던 천호성 전주교대 교수가 제기한 '동료 교수 폭행 의혹'에 대해 방송 토론회 등에서 "폭력은 없었다"고 말하며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 교육감은 전북대 총장 시절 '동료 교수를 폭행한 적이 없다'고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한 혐의(허위사실 공표)로 지방선거가 있던 해인 2022년 11월 25일 기소됐다.
이어 기소 후 9개월 만인 2023년 8월 25일에야 1심 판결이 이뤄져 공직선거법 제270조 '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을 사법부가 어겼다. 더욱이 1심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하면서 2심 판결은 1년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 교육감은 호화 변호인단 선임으로도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렇듯 늑장 재판에 호화 변호인단 구성 등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서 교육감 재판은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또 위증교사 혐의 재판이 함께 열리고 있어 해당 재판에서 어떤 변수가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 교육감 다음 재판은 12월 2일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법정 다툼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하다는 지적이 교육계 안팎에선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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