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이스타항공의 제주항공 매각 불시착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애꿎은 1,600여 명의 직원들은 물론 전북도민들에게까지 불똥과 파장이 번지고 있다.
특히 제주항공의 주식매매계약(SPA) 해제 발표로 파산 위기에 몰린 이스타항공이 신규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는 소식은 뜬금없다.
이스타가 '플랜B'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서서히 나오고 있음은 예사롭지 않다.
예정된 수순처럼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이스타항공의 ‘플랜B’는 과연 무엇일까? 실체와 성사 가능성 여부를 진단해 본다.
이스타 '플랜B', 신규 투자유치 중점...누구를 대상으로?
이스타항공에 우호적인 전북지역 일간지들과 서울의 일부 언론들에 의해 보도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이스타항공은 23일 제주항공의 SPA 해제 선언 이후 대응 방안 중 하나로 신규 투자자 확보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공통을 이룬다.
이스타항공의 ‘플랜B’의 요체는 바로 신규 투자인데 그 대상이 누구인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제주항공 대신 자금을 수혈해 줄 수 있는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며 새로운 투자처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제주항공의 계약해제로 항공 인수합병(M&A)시장에 찬물이 끼얹어진 만큼 경영권 매각이 아니라 소수 지분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과 함께 “그러나 지분 절반 이상을 매입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수천 억 원의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투자자를 단시간 내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타항공 경영진이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선 것은 완전자본잠식(-1,042억 원)에다 체불임금과 조업료, 유류비 등 미지급금이 1,700억 원에 달해 자력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체불임금과 편법증여, 세금탈루 의혹 제기로 인한 법적 공방이 불가피하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최근 "파산이나 폐업에 이르기 전에 이스타항공이 플랜B를 내놔야 정부에서도 지원을 결정할 수 있다"며 정부 지원의 전제로 이스타항공의 자구안 마련을 강조했다.
체불임금, 편법증여·세금탈루 의혹, 법적공방...넘어야 할 산 많아

이스타항공은 신규 투자자 물색 작업과는 별도로 전라북도와 군산시에 지원을 직·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린다.
이는 당장 국내선 운항만이라도 재개해 투자 유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항공업계 전반의 업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과 지원은 또 다른 실패와 좌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더욱이 이스타항공은 지난 3월 이후 전체 운항노선을 중단하면서 운항증명(AOC) 효력이 상실됐다. 운항재개 계획을 국토부에 제출하면 3개월 만에 효력을 되살릴 수 있지만 그 전에 밀린 임금, 조업비 등을 지불해야 한다.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계약해제 빌미가 됐던 체불임금과 미지급금 규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지속한다는 방침이지만 신통치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상직 의원과 자녀 등 일가에 대해 제기된 숱한 의혹의 실체 규명과 체불임금 해결 등의 문제를 놓고 법적 공방이 불가피한 상황이 가장 큰 변수이자 악재로 작용할 소지가 높다.
그런데 전북지역 일간지들은 ‘향토기업’, ‘전북기반’, ‘전북의 하늘 길’ 등을 내세워 일관되게 이스타항공에 거도적 지원을 한 목소리로 주장하며 의제를 연대·확산시키는 모양새다. 일종의 담합의제로 볼 수 있다.

특히 새전북신문은 이스타항공의 매각 불발에도 불구하고 “17년 전 하림처럼 향토기업 이스타항공 살리자”며 '2003년 화재 사고로 어려움을 겪었던 하림에 대한 향토기업 살리기 운동' 사례와 ‘플라이강원’의 사례까지 들먹였다.
“향토기입 살려야” 온정주의 vs. "진짜 향토기업으로 볼 수 있는지 의문" 비판
23일 기획시리즈 두 번째 기사에서 신문은 “필요 자금은 강원도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거나 자치단체가 지분을 가지고 들어오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고 운을 뗐다.
이어서 신문은 “강원의 경우 최근 설립한 항공사 '플라이강원'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추후에 사용할 수 있는 항공권을 미리 구매하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며 “구매자는 항공권을 미리 사두고 필요한 시기에 사용하고, 항공사는 구매자로부터 현금을 확보해 유동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라고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강원도는 '플아이강원'에 대한 막대한 혈세를 지원하고도 그다지 좋은 성과를 보지 못한 채 무분별한 예산낭비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동안 이스타항공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전북일보도 24일 “지역 차원에서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전북도민일보 등 다른 일간지들도 ‘군산-제주 항공 노선 ‘불투명’‘, “지역 도움 절실”, ’전북경제 휘청‘, ’군산시민 충격‘, ’대량실직 비상‘, ’관광업계 타격 우려‘, ’새만금 신공항도 악영향‘ 등의 기사로 전북도에 미칠 경제 피해를 강조하며 이스타항공의 파산을 막아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역 언론들의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이스타항공이 전북 지역 향토기업이라는 인식과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평했다.
그럼에도 책임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상직 의원은 22일 KBS전주방송 라디오 ‘패트롤전북’에 출연해 ‘정부와 지자체 지원의 필요성’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책임 회피성 발언이라는 따가운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히려 지역 방송사들의 차분하고 냉철한 기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JTV, ‘17년 전 하림 살리기 도민운동과 상황이 다른 이유’ 조목조목 밝혀

JTV는 새전북신문의 이스타항공 살리기 캠페인성 기획 기사에 반한 기사를 내보내 주목을 끌었다. 24일 ‘'2003년 하림'과 '2020년 이스타항공' 차이는?’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다.
기사는 “17년 전인 2003년, 익산의 하림공장에 큰 불이 나자 전북도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 하림 살리기에 나선 적이 있다”며 “파산 위기에 놓인 이스타항공을 놓고도 도민들의 온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지만 이스타항공을 살리자는 주장은 17년 전과 달리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기사는 “이스타항공의 부실경영과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 자녀들의 편법 증여 논란으로 도민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며 “전라북도도 이런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이스타항공 돕기에 선을 긋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는 더 나아가 “안타까운 건 이스타항공이 파산하면 1,600명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고 했다.
기사 말미에선 “왜 17년 전 하림의 사례처럼 도민들은 이스타항공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은지, 이스타항공과 이상직 의원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전주MBC, "새만금관광개발 주식 이스타 자본금으로 써놓고 또 손 벌릴 자격 있나?“

전주MBC도 23일 ‘청산위기 몰린 이스타항공.. 힘드니까 "향토기업"’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어 보이는 이스타 측은 결국 향토기업이라며 전라북도에 손을 내밀고 있지만, 지역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이어서 “군산공항에 본점을 둔 향토기업임을 강조하며 지역차원에서 이스타 살리기 운동을 하자는 게 이상직 의원의 주장이지만 정작 전라북도는 애써 거리두기에 나서는 분위기”라며 “이스타항공 사태로 고용위기에 내몰렸다고 알려진 직원은 1,600여 명 중 당초 이스타 측은 지역인재가 30%에 달한다고 말해 왔지만, 실상은 딴판“이라고 꼬집었다.
기사는 전라북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실질적으로 인원은 도내에 몇 명 근무를 안 했다”며 “8명 정도 밖에 근무를 안 했고 사무실은 서울에 있고, 전주에서 운영됐던 예약 콜센터도 이스타항공과 별개인 인력파견 업체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기사는 “더구나 사실상 도민의 혈세가 투입된 새만금 관광개발을 인수해 관련기업의 주식을 부양시켜 이스타항공의 자본금으로 썼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라며 “새만금 개발을 지연시켰다는 논란과 함께 이제 와서 지역에 손을 벌릴 자격이 있는지부터 질문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스타항공 출범당시 군산시가 주주로 참여하며 출자한 10억 원도 휴지조각이 될 처지”라며 “지역사회의 기대를 기반으로 출범한 뒤, 군산-제주 노선 증편 때도 지원금을 요구했던 소위 향토기업 '이스타항공'은 위기에 내몰리자 또다시 도민에게 온정을 호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주MBC는 24일에도 ‘이스타 신규 투자자 모색, 시장 전망 암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스타항공이 자구책으로 신규 투자를 물색하고 있지만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그런 뒤 기사는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의 인수 포기 이후 정부지원을 타진했지만 '플랜B' 요구로 여의치 않게 되자, 전라북도와 군산시에도 별도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사는 “체불임금과 유류비 등 미지급금이 1,700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를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며, 전라북도와 군산시 또한 공적자금 투입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대책 없는 이스타항공, 전북도와 정부 눈치” 비판

KBS 전주방송도 24일 ‘대책 없는 이스타항공…지역경제 파장은?’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스타항공의 앞날이 더욱 불투명해졌고 정부는 자구책부터 마련하라는 입장인데, 이스타항공은 제주항공 탓을 하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인수합병이 무산된 뒤 이스타항공이 내놓은 입장이라곤 “제주항공이 매매 계약을 위반했다”며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 편으론 ‘플랜B’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군산시와 전라북도, 정부 등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문제는 전라북도와 군산시 등 지자체들이 언제 또 입장과 태도를 달리할지 모른다.
전라북도는 현재까지는 “항공사 소속 직원들 가운데 도민이 얼마나 되는지 등 직접적인 지역 피해 규모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금전적 지원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이상직 국회의원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 차기 민주당 전북도당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점, 송하진 도지사 등 많은 지자체장들과 같은 소속 당인데다 지역의 유력 일간지(사주)들과도 친밀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라는 점 등이 향후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자본잠식 심각단계에서 혈세투입은 큰 위험 초래”, 전라북도 신중한 판단 경고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허희영 교수는 지난 17일 전북CBS '사람과사람‘에 출연해서 체불 임금뿐만 아니라 자본잠식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자체가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제주항공의 경우 제주도가 7.75% 가량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 경영에 참여할 수 있지만 전북도의 경우는 지분이 없는 상태에서 투자하는 것은 위험 소지가 많다“고 경고했다.
허 교수는 또 ‘플라이강원’의 사례를 거론하면서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 영업손실이 늘어나 자본잠식 상태가 더 악화되고 있다”면서 “강원도는 지난해와 올해 80여 억 원을 지원한 데 이어 조례를 바꿔 추가지원에 나설 계획이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아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항공업계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이강원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데다가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강원도의 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언론, 행정 기본책무 망각할 때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 몫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가 최근 항공산업 현안 관련 백 브리핑을 통해 "이스타항공은 경영 정상화가 매우 불투명해 보여 차선책(플랜B)을 마련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한다"며 "관계 부처와 협의하면서 추진 상황을 살펴보고 근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석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향후 지원 대책을 '자구노력에 따라 조율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지만, 전북도 등 지자체들이 거센 지원압박 요구를 핑계 삼거나 실제로 감당하지 못하고 선뜻 지원에 나섰을 때 또 다른 파장과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이전부터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스타항공의 경우 법정 관리에 돌입하면 기업회생보다는 청산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역 언론들이 다른 지역 등의 사례들을 들며 향토기업 차원의 지원을 지자체에 촉구하거나 압박을 가하는 것도 모자라 도민들의 지원까지 부추기는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작금의 이스타항공 사태는 언론의 기본 책무와 공직의 기본윤리, 기업의 기본 상도의가 서로 맞닿아 있다.
어느 쪽이든 본분과 책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을 때 그 피해와 파급은 애꿎은 도민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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