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의 철거현장에서 발생한 외국인 노동자 추락 사망 사고와 관련해 경찰이 철거업체 관계자 2명을 불구속 송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적용하지 않아 발주처와 시행업체 봐주기 수사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해당 공사 현장의 총 공사 금액이 54억원이지만, 업체 두 곳이 나누어 공사를 맡아 각각 공사 금액이 중대재해처벌 기준치(50억)를 밑돌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발주처와 시행사는 모두 빠져 나가고 애꿎은 하청업체에 책임을 넘겼다는 지적이다.
전북경찰 “현장소장·안전관리자 등 2명 불구속 송치 마무리”

전북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28일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의 철거현장에서 지난해 12월 29일 안전조치 의무를 소홀히 해 철거 작업을 하던 40대 A씨(태국인 노동자)를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현장소장과 안전관리자 등 2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망 사고 이후 태국 국적의 불법체류자로 밝혀진 A씨는 지난해 12월 전주시 완산구청에 착공 신고를 하지 않고 공장 건물을 해체한 공사 현장에서 가림막 설치 작업을 하던 중 6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숨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공사 현장에 안전 발판 설치 등 추락 방지 조치를 해야 하지만 당시 작업 공간이 협소하다는 등의 이유로 안전망이나 발판 등을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해당 사건을 함께 수사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역시 현장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보고 안전관리자와 A씨가 속해 있던 철거업체 법인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최근 송치했다. 이날 경찰 관계자는 "관련 수사를 마무리하고 현장소장 등 2명을 송치했다"고 밝혀 사실상 사건이 마무리됐음을 시사했다.
54억원 공사 둘로 쪼개 발주...‘중대재해처벌법 피하기 위한 꼼수’ 지적

그러나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적용하지 않아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공사 현장의 총공사 금액은 54억원이지만, 업체 두 곳이 나누어 공사를 맡아 각각 공사 금액이 기준치(50억)를 밑돌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원청업체 두 곳이 각각 38억원(70%), 16억원(30%)으로 계약해 공사금액이 50억원을 넘지 않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으나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발주’란 지적이 일고 있다.
더구나 사망 사고 이후 관련 현장을 점검하던 전주시 완산구청은 착공 신고를 하지 않고 공장 건물을 해체한 사실을 확인해 건축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옛 대한방직공장 소유주인 ㈜자광을 경찰에 고발했지만 정작 책임은 하청업체 관계자들에게만 전가되고 말았다.
특히 ‘외줄 비계 졸속 공사' 논란과 하청업체와 철거업체 사이에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구두계약 공사 강행’ 의혹에 이어 착공 신고를 하지 않고 철거 및 해체 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나 사고 발생 당시 파장이 컸음에도 이에 대한 발주처와 시행사 등의 책임은 규명되지 않았다.
“착공 신고 하지 않고 불법 공사... 노동자 죽음 진상 엄중히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해야”

앞서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지역본부(민노총전북본부)는 성명을 내고 "지난해 12월 21일 대한방직 전주공장 터에서는 (주)자광 회장과 도지사, 시장·군수, 연예인 등이 참석한 화려한 철거 착공식이 열렸고 불과 8일 만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며 “노동부는 반복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에 진상을 엄중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애초 향후 개발 협상 당사자가 될 우범기 전주시장과 고위 행정 관료, 지역 정치권 및 언론 등 각계 인사들이 착공식도 아닌 철거를 위한 대규모 행사를 벌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민노총전북본는 “개발 분위기를 빠르게 띄우기 위한 겉치레 행사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며 "이런 속도전 과정에서 노동자 안전 조치가 소홀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북평화와인권연대도 성명을 통해 "명분도 없이 철거공사를 강행하며 한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광을 규탄한다“며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작업을 중지해야한다"고 촉구했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대상 확대하고 공무원 처벌 조항 들어가야"
한편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는 시행 1년을 맞은 지난 1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법 시행 1년을 맞았지만 정부 당국의 노골적인 무력화 공세에 중대재해는 오히려 증가했고 노동자의 참혹한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공무원 처벌 조항이 들어가야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법 개정을 촉구한 바 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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