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97)

구관이 명관이 되는 길은 두가지였다. 구관이 명관이 되는 길은 가장 어려운 일이거나 가장 쉬운일 중 하나였다. 가장 쉬운 일은 가장 무능하고 무식했던 원님도 명관이 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보다 더 무능하고 무식한 원님이 후임으로 부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후임으로 부임하는 원님이 자신보다 더 무능하고 무식하면 구관은 명관칭호를 절로 얻을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원님 자신이 재임기간동안 자신의 꿈보다 백성들의 꿈을 키워내는 일을 많이 하고 떠난 후 백성의 꿈보다 자신의 꿈을 더 키우는 일을 하는 원님이 부임하면 명관 칭호를 절로 얻울수 있었다. 이나 저나 백성의 입에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이 오르 내리는 것은 현재의 고을 앞에 놓인 쇠락의 큰 징후다.
호랑이를 그렸는데 고양이가 된 것은 희망의 남음이고 호랑이를 그렸는데 토끼가 된 것은 절망뿐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은 그 두개의 이음이다. 백성들의 기억과 기록은 고을의 흥망성쇠를 담은 향토사이다. 그 속에는 천년고도를 쇠락시킨 구관의 명관록도 들고 나는 것이니 만인의 상속물 향토사가 두렵지 않은 결과는 구관이 명관이 되는 길뿐이다.
고을 민초들이 세운 선정비 속의 명관은 백성들의 꿈을 고을의 꿈이 되게 한 목민관들이었다. 고을 백성들의 꿈은 하늘에서 별과 달을 따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마시는 우물에 이끼끼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동서남북 사방 백리가 사농공상으로 이웃사촌이 되어 천년동안 꾸어왔던 것은 옥야백리 천부지지 공동체다. 그 꿈의 결집체 하나가 춘향문화로 세상을 향한 것이었으니 이제는 옥야백리 천부지지 공동체의 꿈 조각을 맞춰 완성해 가는 일이 남원 스타일의 자치이리라.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