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101)

나는 천년고도의 남원이라는 큰 방죽에 향토문화는 큰 고기였다는 어르신들의 구전 실체가 무엇인지 찾아 보았다. 그러다가 그 중심에 있었던 백성의 유전자가 세상을 향해왔던 판소리와 여성문화의 실체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중 일제 강점기의 '남원 권번'에서 세상을 향해 쏘아 올렸던 항일 애국의 속살을 알게 되었고 그 한 가지 이야기 요체는 이렇다. 

남원 춘항제는 일제 강점기에 탄생 되었고 그 발원지는 남원 권번이다. 남원 권번은 왜 춘향제를 내게 되었을까? '권번'은 고을 문화 유전자의 집성체다. 남원 권번의 씨앗 유전자는 판소리였고 그 중심에는 소리꾼 선생과 전수생인 제자 기생이 있었다. 

40여명의 권번 기생들은 직업의 일상을 가졌으나 그 기생중 일부는 남원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것 중 하나는 소멸에 처한 동편제의 보존과 전승이었다. 그 일로 남원 권번의 선생은 모두가 남원의 명창들이었다. 김정문과 박중근 같은 소리꾼이 이화중선 자매와 최봉선 자매 같은 어린 권번 예기들에게 구전심수의 소리를 학습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 일제의 남원고을 문화 침탈이 심해졌고 광한루의 재판소와 감옥, 남원권번 소리선생이던 김정문 명창의 기획된 수사로 체포 구금, 또한 '일본 소화천황의 봉축대례 행사'에 권번기생과 남원 백성의 강제 동원이 구체화 되고 있었다. 일제의 조선인 '일본 천황 식민화'를 위한 민족혼 말살 만행의 하나로 개최한 '소화천황즉위봉축대례'는 광한루 앞 광장에서 남원 백성 2,000여명을 동원해 개최 되었고 일제 앞잡이들을 내세운 백성들과 기관 단체의 참여는 면마다 인원을 배정하여 강제 동원했다. 

그 중 남원 권번은 그 행사의 축하 공연과 참석을 거부했고 이후 다양한 탄압의 계기가 되었다. 그 와중에 남원 권번 출신 이화중선 명창의 동생 이중선의 남편 강남중 명창에게 김구 선생이 오현이라는 호를 지어주게 되었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남원 권번의 독립군 연계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가중 되었다. 남원 권번은 일제 탄압에 생존의 자구책을 내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가 일제 탄압에 대항하는 백성들의 결집체 마중물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제의 '소화봉축대례'에 침탈 당한 백성들의 민족혼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자발적 결집 마중물이 필요했고 그 명분을 춘향제의 문화축제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춘향제는 그렇게 남원 사람들의 문화유전자를 모아 일제의 민족혼 탄압에 대항하는 백성들의 결집체로 탄생된 것이다.

지금 일제 침탈의 대항체 춘향제를 낸 남원 권번 사람들은 역사의 은둔자가 되어 있고 그들이 낸 춘향제 정체성 훼손에 앞장섰던 일제 앞잡이들은 자신들의 실체를 은둔시킨 현실이 우리 앞에 있다. 

남원 광한루 앞 광장에서 개최한 일본 소화천황봉축대례 축사에 나선자들, 면마다 봉축대례 축하문을 무명천에 써서 대나무에 달아 행사장에 들고 나오게 한 자들, 행사장에 백성들의 강제 동원에 앞장선자들, 권번의 축하공연을 독려한자들, 그날 행사비용을 자발적으로 낸 자들, 그 행사비용을 백성들에게서 강제로 뜯어낸 자들, 그 일제 앞잡이들 후손들은 지금 쇠락해져 가는 고을에서 어떤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일제 강점기 남원 권번에서 백성들의 항일 문화 결집체로 세상에 태어나게 했던 춘향제의 유전자를 가진 권번의 문화 의병들 그중에 김정문 명창과 이화중선 자매의 실체는 조사되어 세상에 내보낸지 오래다. 이제 그동안 역사의 은둔자로 존재했던 박중근 명창과 최봉선 자매의 실체를 두 번째로 꺼내려 한다.

그 일의 조각이 거의 맞추어졌고 삼사월 만화방창 시절에 맞추어 그 분들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 드리려고 하는 것은 백성의 기억과 기록이 역사인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춘향제의 속살을 꺼내 세상을 향하게 하는 것이 춘향제의 색깔이고 그 실행이 행사다. 그것의 재료는 백성들의 공통 과목인 향토사에 있다 집안일을 집안 사람들 역량으로 잘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음이라.

공통 과목 향토사의 무관심으로 얻는 낙제는 고을 주인인 백성의 포기이고 그 백성에게 지배 당하는 시대에 살게 된다. 천년 넘게 이어온 '옥야백리' 공동체에 들어 산 백성들이 내는 선한 기운을 유유상종 빨대 기운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고을 쇠락의 매개체다. 

천년고도의 문화적 결집체는 이름 없는 백성이었고 정유년 남원성 전투의 만인순국과 일제 강점기 춘향제에 자발적 참여한 것이 그것의 실체다. 천년고도 남원고을의 실체는 문화로 무장한 무명의 백성이었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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