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93)

연말 백성들의 소리청에서는 '아우성'이 나고, 원님과 토호들의 기생방에서는 '삼희성'이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연말이 되면 다양한 모임이 생겨난다. 특히 관청에서는 종무식이 있고 며칠 앞에는 일년을 자찬하는 식사 자리도 갖는다. 이때쯤 백성들은 일년살이의 마음을 모아 한목소리를 내는 모임을 가졌다 소리청이 그것이었다. 

백성들의 소리청에서는 무슨 소리가 났을까? 해마다 아우성이었다. 억울했던 일, 원님의 불통과 무능과 아집과 사심과 불공정의 통치로 가슴에 맺힌 백성들의 한이 쏟아지는 소리가 아우성이었고, 그 아우성을 질러내는 소리꾼의 소리에 추임새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냈다. 

원님과 토호들의 연말 기생방에서는 무슨 소리가 났을까? 해마다처럼 세가지 웃는 소리, 즉 삼희성이 났다. 하나는 원님의 과업을 칭찬하는 찬양성이고, 두 번째는 토호들이 백성들에게 착취로 얻은 재산이 얼마 더 늘었다고 자랑하는 축재성이며, 세번째는 관솔들이 누가 뇌물을 더 많이 받았는지 과시하는 관뇌성이 그것이었다. 

수십년간 그 관행은 계속 되었다. 그러던 어느해 청풍양수(淸風兩袖), 즉 양 소매에 맑은 바람만이 소유의 전부이어야 한다는 것과 백성의 고을이라는 공심을 가진 원님이 부임하면서 연말이면 동헌 마당에 토호와 관솔과 백성이 함께 하는 종무식 소리청을 열게 되었다. 고을 원님이 가장 두려워 했던 연말 종무식 소리청 이야기는 그렇게 생겨났다.

소리꾼은 고을의 인심과 그 지역 유지들의 선행과 악행을 재담소리로 쏟아냈다. 거기에 원님의 일년 살이 좋고 나쁨도 빠지지 않았다. 원님이 모르고 있었던 일들이 함께 한 사람들과 공유 되는 날이었다. 고을의 자정작용은 그렇게 해마다 이어졌다. 

수많은 원님들의 오고 감에 강요된 선정비 없는 것의 실체가 거기에서 나왔다. 일년살이의 풍흉은 백성이 잘 알고 그것을 잘 듣는 것이 새해설계의 첫걸음이었다. 소리청의 사회적 기능 그것은 고을 공동체의 접착체였다. 고을 공동체의 유류상종과 원님의 무지는 고을의 운명을 내는 악이고, 제대로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혜는 고을 부흥을 내는 선이다. 

간담회에서 봉임자들의 통찰적인 의견 개입과 소통은 공동체의 폭넓은 사고를 끌어 내는 것이니 그것은 곧 시민이 제대로된 주인이 되게 하는 마당이다. 그것을 비껴간 간담회는 소리청의 짝퉁이고 변종이다. 추임새 없는 일방통행이 그 증거다. 원님의 '쇠귀에 경 읽기' 치유제는 연말 '동헌 소리청'이었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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