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87)

가뭄이 들 때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는 열 번을 울어대도 비가 오지 않지만 들에 사는 개구리는 한 번만 울어도 비가 온다. 그 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할머니 이야기 20여년 전 산청의 산골 마을로 '너삼식혜'를 잘 만드신다는 할머니를 뵈러 갔다.
지리산 사람들의 생활음식을 찾아 다니다가 산청 장터에서 그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도 20여분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다랑논 십여마지기에 둠벙 하나 밭 몇 뙈기 그리고 오두막 집 뒤로 감나무와 밤나무가 있었다.
원래 그 주변에 세집이 살았었는데 60년대 정부의 독가촌 정비 이주시책으로 모두 떠났으나 할머니네만 남아 살게 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시고 홀로 살아내기 힘든 산중생활을 걱정하는 서울 외아들이 있지만 할머니는 지금의 생활이 천국이라고 하셨다.
"세상에 무서울 것도 외로울 것도 모다 사람에게서 생겨난 것 아니겟소. 나는 그것들을 나무나 땅 같은데 두고 살았소. 그러니 나무나 논밭이 늘 착허게 나한테 대해 준개로 무섬이나 외로운 것은 없이 살고 있소. 세상일 이라는 것이 죄다 지 그럭만큼만 채우고 살아야 재앙이 없인개로 여그가 천국이제."
할머니에게 이른 저녁을 얻어먹고 '너삼식혜' 만드는 요령을 채록하고 나서는데 개구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인자 비가 좀 올랑갑네. 어치케나 가물든지 호매이를 밭에 대먼 말처럼 폴딱 튀어분당개"
"할머니! 저 둠벙은 가뭄에도 물이 있네요?"
"이 ~ 거그서는 일년 내내 물이 안몰라. 긍개 이 가뭄에도 웬갖 것들이 안죽고 살제. 근디 저안에 사는 것들은 제구실 헌놈들이 별로없어"
"왜요?"
"허다못해 개구리도 그랴. 저그서 사는 개구리가 열번 울어도 비가 안오거든. 근디 이런 들판에 사는 놈들은 한번만 울어도 비가 온당개. 긍개로 옛날 어른덜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드라고. 우물 안 개구리가 백번 울어봤자 비는 안오는디 마당 구석에 사는 개구리는 한번만 울어도 비가 온다고 말이어. 고곳처럼 산중 사람들도 인자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어 텔레비가 다 알켜주잖은개비. 소나기 퍼붓기 전에 어여 내려가시오. 얼렁."
세상은 똑같은 사람살이 무대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