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이후 ‘적성국 운동’으로 전락
조선 체육인들은 1920년대부터 해외 원정에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다. 1930년대 들어서는 일본 체육단체가 주최하는 전국 규모 대회에 대거 참가하기 시작한다. 1933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되는 명치신궁 경기대회에 출전하여 저력을 과시한다.
1930년에 발족한 군산체육회는 육상부, 수영부, 씨름부 등이 추가로 구성된다. 1935년 8월에는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수영대회를 개최한다. 1936년 군산고녀(현 군산여고) 배구팀이 제12회 조선신궁 경기대회에 출전했으며, 군산 출신 채금석(축구), 오수철(농구), 홍문길(농구), 송길윤(마라톤), 하용남(마라톤) 등이 국내 및 해외에서 빼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전쟁 협력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창씨개명, 조선역사 공부 금지, 신사참배 강요, 기독교 학교 폐쇄 등 황국신민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그중 체육계 대표적 사건이 1938년 7월 4일 조선총독부의 조선체육회 강제 해산이었다.
따라서 군산 야구팀은 1937년 8월 개최된 제2회 전조선 도시대항 야구대회와 그해 10월에 개최된 제13회 조선신궁 체육대회(일반부 연식야구 준결승에서 춘천팀에 1-6 패)를 끝으로 전국규모 대회에 출전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일본인으로 구성된 군산체육협회는 1940년 6월 16일 일출정 공설운동장에서 부민 체육대회를 개최한다. 경기 종목은 각종 육상경기(초등부·여자부·일반부 100m 달리기, 400m~1500m 계주)를 비롯해 원반 던지기, 투포환, 연식야구 등이었다.
조선체육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각종 경기와 모임을 금지했음에도 체육대회를 개최한 일제의 속내는 부민(府民)들의 친목과 체력증진이 아니라 황기 2600년(1940년)을 맞아 일본의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황국사관을 뿌리내리기 위한 주입식 행사에 불과했다.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로 전환한 일제는 일장기 게양, ‘궁성요배(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의식)’ 등 우리의 민족성을 철저히 말살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각 가정에 가미다나(神棚)라는 소형 신단을 만들어 모시도록 조치하였다.
환갑잔치 마당에서까지 ‘궁성요배’를 강요하였고 수형자들도 참배할 수 있도록 군산형무소에 봉안전(봉안소)을 설치하였다. 학생들은 1주일에 한 번씩 신사를 참배해야 했으며,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갈 때는 군산공원 아래 신사광장에서 장한 뜻을 품고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송별하는 의미로 장행회(壯行會)를 거행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서양선교사가 운영하는 미션스쿨과 병원에도 봉안소 설치를 의무화하고 참배를 강요하였다. 민족교육의 요람이었던 군산영명학교는 1937년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고 수업을 계속하다가 1940년 마지막 졸업생(보통과 19명) 배출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영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3·1만세운동(서래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군산멜볼딘여학교 역시 그즈음 폐교된다. 선교사들이 호남 최초로 설립한 구암병원(군산예수병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한국기독교사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1940년 11월 16일 국내에서 활동하는 서양선교사 160명과 그들의 자녀 49명을 본국으로 추방하였다.

1941년 가을, 조선체육협회는 제15회 조선신궁 중등학교대회(10월 24~26일)를 경성운동장에서 개최하였다. 다섯 개 중학팀(대구상업, 선린상업, 신의주상업, 용산중, 평양 1중)이 참가한 이 대회는 조선의 마지막 공식 야구대회로 기록된다.
그해 12월 8일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야구를 ‘적성국 운동’이라는 이유를 들어 통제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격화되는 1943년에는 국내의 모든 스포츠를 ‘전투 훈련용’으로 대체하고,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프로야구를 제외한 모든 야구 경기 및 회합이 중지된다.
※덧붙임: ‘연식야구’는 사용하는 볼이 두꺼운 고무로 되어 있지만, 하드(硬式)는 딱딱한 가죽으로 싸여 있다. 연식(軟式) 야구는 주니어 층과 비전문적인 일반인들이 즐겼다. 경기 방법은 같았으나, 규칙은 조금 달랐다. 경기장 다이아몬드 규격도 다르고 배트도 가볍고 작았다. 연식 야구는 일본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계속)
/조종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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