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가장 짧은 재임 기간을 기록한 장관이기도 하지만 불과 취임 36일 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사퇴한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오죽 착잡했으면 ‘희망이 꿈이 되었다’고 했을까.
대통령은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집권 3년차 징크스를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조국 전 장관이 후보자로 지명되고 사퇴하기까지 두 달 동안 우리 사회는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뉘어 불신과 갈등의 골이 커진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촛불 민심이 쥐어 준 ‘적폐청산’ 과제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다.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 그리고 두 공간에 끼지 못하는 어딘가로 갈린 민심을 불신과 분노가 할퀴고 지나갔다. 지금도 앙금과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디로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모른다.
세 달 가까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듯 위력이 뜨거웠던 ‘조국 정국’이 당사자의 사퇴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후유증이 곳곳에 남아 꿈틀거린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그러나 다행히도 조국 정국에서 우리 사회의 시급한 개혁과제가 재차 확인됐다. 바로 검찰개혁, 정치개혁 그리고 언론개혁이 그나마 공통된 화두로 부각됐다. 오랜 기간 이 3개 영역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지만 조국 정국을 통해 그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단연 언론개혁이다. 검찰개혁으로 시작된 조국 정국은 언론개혁으로 옮겨 붙어 활활 불이 지펴지고 있는 형국이다. 왜 언론개혁인지, 거센 지탄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기자들, 검사의 필경사․앵무새 소릴 듣는 이유
검찰과 언론사가 일심동체가 되어 검사가 피의사실을 흘리면 기자들은 필경사처럼 그대로 받아쓰거나 앵무새처럼 따라 하기 바쁜 양태를 반복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격권을 문제 삼거나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나오면 양 기관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또는 ‘살아있는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며 발뺌하기 일쑤였다. 철면피가 따로 없다.
대부분 언론은 지난 8월 9일 조국 전 장관 지명 후 약 세 달 간 물밀 듯 쏟아진 보도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만한 진기록들을 만들어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기자들이 ‘기레기’란 오명을 낳아 전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된데 이어 이번 조국 사태에서는 먹레이킹 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과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을 화려하게 부활시켜 또 다시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먹레이킹 저널리즘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취재원의 인격은 상관하지 않고 쓰레기 더미를 갈퀴로 파헤치듯 취재・보도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 보다 한 수 위 겪인 가차(Gotcha) 저널리즘은 ‘I got you'의 준말로 '너 잘 걸렸어' 또는 ’너 딱 걸렸어‘ 정도의 어감이다. 이는 언론사가 의도하는 쪽으로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교묘히 편집하거나 공인의 말실수나 해프닝을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말한다. 1960년대 전후 미국에서 유행했던 저널리즘들이다.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저속적인 저널리즘의 유형들이다.
그런데 한국 언론들이 지난 3개월 동안 무수히 생산하고 유통시킨 ‘조국 의제’들을 복기해 보면 다시 1960년 전 미국으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조국 정국은 언론들이 ‘공직 후보자 검증’을 이유로 후보자의 가족들까지 ‘먼지털이식’으로 취재보도 경쟁을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초기부터 불붙은 과열 취재보도 경쟁은 ‘연좌제’를 씌우기까지 했다. 물론 공직 후보자는 엄밀한 검증 보도의 대상이며 그 가족의 경우에도 비리나 의혹이 있다면 응당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나 다름없는 선정성이 두드러졌다. 후보자 검증과는 관계가 없는 가족들에 관한 사안들조차 모조리 ‘후보자 의혹’으로 보도한 것은 ‘사실 학인’, ‘검증 보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보수신문과 종편들은 당시 조 후보자의 집 앞을 지키며 거의 매일 그곳을 사고 현장처럼 묘사하여 중계하다시피 했다. 후보 개인은 물론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속보로 클로즈업됐다. 일부 신문은 주차장에 외제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조국 딸은 외제차 타고 다닌다’는 허위 프레임까지 꺼내들었다가 망신을 당했다.
먹레이킹ㆍ가차 저널리즘 전형 보여준 한국 언론
조 전 장관 사퇴 후에도 먹레이킹․가차 저널리즘적인 취재보도는 계속 이어졌다. 10월 16일 <채널A>는 조 전 장관이 웃고 있는 영상에 욕설을 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초유의 사태라고 하기 에도 낯부끄러운 일이 빚어졌지만 언론은 당연하다는 듯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집 앞에서 가족의 동향을 감시하고 딸 자택까지 찾아가 주변을 샅샅이 뒤지는 등 주차장의 차종까지 살피는 것을 마치 ‘후보자 검증’으로 착각한 듯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행태에선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울 정도였다.
더 심각한 것은 검찰 발 기사가 여과 없이 그대로 보도됐다는 점이다. 초반부터 언론은 검찰을 너무 믿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했다. ‘검찰 받아쓰기’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언론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으며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는 기자들로서는 부득이 검찰 발 정보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준 정보를 무조건 진실인 양 받아쓰는 행태는 언론의 역할을 빗나간 부적절한 관행이다. 검찰 발 정보도 다른 출처와 마찬가지로 검증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이다. 주는 대로 보도한다면 언론은 그저 검찰의 복제기나 확성기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이 검찰 발 정보만으로 수많은 ‘조국 의혹 단독 보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받아쓰기 관행’의 문제점이 극대화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9월 10일부터 24일까지 서울의 7개 주요 일간지(경향‧국민동아‧조선‧중앙‧한겨레‧한국)들이 ‘조국 관련 단독 보도’로 내보낸 기사 수는 모두 75건 중 40%(30건)가 검찰을 출처로 한 것들이었다. 다른 취재원이나 출처를 압도했다. 법조계가 16%(12건), 자유한국당이 11%(8건)로 뒤를 이었다.
검찰 발 단독보도는 모두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누군가가 검찰에서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라고 보고 있다’는 형식을 지녔다. 검찰의 주장이나 검찰로부터 전달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보만으로 ‘속보’나 ‘특종’을 내보냈다는 의미다. 대부분은 반론이나 추가 취재가 없으니 왜곡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9월 24일자 ‘단독 : 검찰에 압수수색당한 첫 법무장관’이란 기사가 전형적인 사례다. 이 신문은 9월 23일 검찰의 조 전 장관 자택 압수수색을 전하면서 “검찰이 집행한 압수수색 영장에는 조 장관이 ‘피의자’로 적시됐다”, “조 장관이 수사 대상인 것을 검찰이 분명히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영장에 조 전 장관이 ‘피의자’로 적시된 경우는 그 후 한 달 내내 없었다. 다른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검찰은 ~라고 보고 있다”는 어법으로 많은 기사를 썼고 그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하고 말았다. 이런 보도로 인해 조 전 장관을 무리하게 ‘피의자’로 몰아가려는 검찰이 의도적으로 언론에 그런 내용을 흘리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이 흘러나올 만도 했다.
수많은 의혹 보도, ‘검찰에 따르면~’...사실 확인․검증은 뒷전
언론이 의혹의 근거 및 사실관계 확인과 검증을 엄밀하게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수많은 의혹 보도들 중에는 다층적인 교차 검증과 더 다양한 근거 확보에 노력해야 하고, 흩어져 있는 정황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하는 논리 구조에서 정합성 및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속보경쟁에 떠밀려 왜곡된 사실을 검증하지 못하고 진실인양 경쟁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의혹을 확대하고 선정적 프레임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조국 보도’의 양적 불균형도 극심했다. ‘조국 보도’에서의 일방성, 보도의 전체적인 이슈 편중은 과연 ‘장관 후보자 검증’ 차원에서 비롯된 것인지, ‘낙마’를 목표로 이뤄진 의도적인 ‘여론몰이’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민언련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이 높은 종편 4사(JTBC‧TV조선‧채널A‧MBN)는 조 전 장관과 함께 다른 부처 인사 청문회가 이뤄졌던 8월 12일부터 9월 6일까지 오로지 조 전 장관만 보도했다. 당시 7명의 장관급 인사가 이뤄졌으나 종편 4사 주요 시사 프로그램 11개 경우 7명 후보자 관련 총 방송 시간 8,480분 중 사실상 전부라 할 수 있는 8,453분(99%)을 모조리 조국 후보에만 집중 보도했다.
다른 후보자 뿐 아니라 아예 다른 이슈들도 덮었다. 8월 26일부터 9월 6일까지 종편 4사 11개 시사 프로그램은 총 방송 시간 7,126분 중 77.5%에 이르는 5,522분을 오로지 ‘조국’에 할애했다. <TV조선> 3개 프로그램의 경우 이 비중은 무려 89.6%에 달했다. 이 시기 일본의 무역 보복 및 지소미아 종료,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관련 진상조사 결과 발표 등 굵직한 이슈들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정상적인 수치는 결코 아니다.
신문과 다른 지상파 방송 뉴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8월 9일부터 9월 4일까지 27일 간 5개 서울 일간지(경향‧동아‧조선‧중앙‧한겨레)의 사진 기사를 제외한 ‘조국 관련 기사’는 총 1,083건에 이르렀으며 보도량이 가장 많은 <조선일보>는 309건, 하루에 11건 꼴로 기사를 냈다. <조선일보>는 한 달 넘게 매일 조국 기사를 1면 톱으로 다뤄 눈총을 샀다.
7개 방송사(지상파 3사‧종편 4사)의 저녁 종합뉴스도 같은 기간 총 923건의 ‘조국 보도’를 내보냈는데, 이 중 보도량이 가장 많은 <채널A>가 214건, 하루 8건 꼴로 보도를 했다. 보통 하루에 25건 정도(스포츠‧날씨 제외)의 리포트를 내보내는 저녁 종합뉴스에서 매일 3분의 1에 달하는 분량을 ‘조국 의제’를 쏟아낸 것이다. 이례적인 수치다. 이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4월 7일부터 6월 12일까지 67일 간 7개 방송사 저녁 종합뉴스의 지방선거 보도 총 613건보다도 훨씬 많은 양이다.
특정 이슈에 쉽게 매몰되는 양적 불균형, ‘여론몰이’ 비판
여기서는 또 다른 불균형도 엿보였는데 바로 ‘후보자 검증’에서 오직 ‘가족 관련 의혹’ 등 ‘도덕성 검증’에만 치중했다는 점이다. 5개 주요 일간지의 ‘조국 보도’ 총 1,083건 중 ‘사법개혁’ 등 ‘정책 검증’에 해당한 기사는 24건, 2.2%에 불과했다. 방송 뉴스 역시 총 총 923건 중 고작 20건, 2.2%를 ‘개각 발표 및 전문성 검증’에 할애했을 뿐이다.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언론인지, ‘여론몰이’하는 언론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 사례들이다. ‘조국 사퇴’는 끝이 아닌 ‘성찰’의 시작이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을 법도 하다. ‘조국 사퇴’를 ‘승리’ 또는 ‘패배’로 받아들이는 국내 언론사들의 이념적, 정파적 성향은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이 아니다. 그렇지만 조국 사태에서 언론은 균형감 있는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 지나친 속보경쟁과 정파성이 한데 어울려 오보를 오보로 덮고, 피의사실을 남발하면서 인권 등 기본권은 무시했다는 점에서도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해도 너무 했다는 싸늘한 반응이다.
“검사․기자, 일심동체” 개탄
보다 못했던지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한 라디오에 출현해서 “검사와 기자가 서로 엉켜 일심동체가 되었다”고 개탄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검찰과 언론이 유착돼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오래 지속돼 왔고 특히 그 검찰 기자들의 출입처 시스템을 보면 아마 우리나라 검찰, 다른 기자실보다도 기자실 문이 가장 높고 들어가기가 가장 힘든 굉장히 폐쇄적이고 배척적인 그런 일종의 집단입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이제 검찰 최고 권력집단이죠. 검찰하고 같이 이렇게 늘 하고 하면서 제가 볼 때는 기자들이 많이 검사화가 돼 버렸어요.”
그럼에도 조 전 장관 사퇴 이후에도 가차 저널리즘적 행태는 계속 이어졌다. 그의 일가족에 대한 언론의 스토킹은 가히 점입가경이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단독’기사라며 ‘조국, 학교 안 나가고 매일 등산’이란 제목과 사진의 기사를 10월 21일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신문은 기사에서 “그는 주변 시선을 의식한 듯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로 집을 나섰다. 그래도 산에서 그를 알아본 한 시민이 그 뒤에서 ‘얼굴도 두껍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썼다.
이미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였으나 갈퀴로 쓰레기 더미를 헤집듯 한 스토킹은 계속 됐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대통령이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언론 스스로 그 절박함에 대해 깊이 성찰”할 것을 당부하자 즉각 다음날 사설에서 “성찰은 무능한 국정과 이해할 수 없는 아집으로 나라와 국민을 힘들게 만든 문 대통령이 해야지 왜 기자들이 해야 하나”, “대통령의 무지한 인식”이라고 역정을 낸 신문이다.
“친일신문들 창간 100주년 잔치 좌시하지 않겠다“
이처럼 의혹을 사실로 포장하면서 권력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려는 언론에게 성찰과 반성을 주문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성찰과 반성을 거부하는 언론사가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며 버젓이 활개치고 누빈다. 무려 10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오죽했으면 “친일·거짓 보도로 얼룩진 100년의 역사를 심판하겠다”며 백발의 해직 언론인들이 보다 못해 삼보일배에 나섰다. 지난 시월 가을이 무르익을 무렵 <동아일보>·<조선일보>에서 44년 전 강제 해직된 기자들은 백발이 되어서 "거짓과 배신의 100년 조선․동아 청산하자“며 거리에 모여 청산을 외치며 삼보일배로 전진했다. 사주와 경영진들이 깊이깊이 반성하고 성찰할 때까지 백발 해직기자들은 계속 이어간다는 각오다.
”내년 3월에는 <조선일보>, 4월엔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잔치를 벌일 텐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 왜 두 신문이 폐간되어야 하는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운동을 적극 펼칠 것이다.”
백발 해직기자들의 성난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언론개혁의 횃불이 다시 족벌 보수신문들을 향하고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들려온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