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 칼럼
“대학이 수상하다. 해방 이후 줄곧 진보의 보루였던 대학이 보수의 아성으로 변해가고 있다. 논쟁적이고 혁명적인 담론을 풀어놓던 교수는 깔끔하고 표준화된 논문의 생산자로 순치되었고, 사회 변혁의 아방가르드였던 학생은 ‘소확행’을 꿈꾸는 착실한 모범생으로 변신했다.”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가 한겨레신문 4월 8일자 ‘대학의 보수화를 우려한다’는 제목의 칼럼 서두에서 우려한 대목이다. 김 교수는 이어서 “한국 민주주의의 견인차였던 대학이 보수화되는 현상은 경영총장의 등장과 함께 대학의 기업화와 더불어 시작되었다”며 “이제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 아니라 취업학원이 되었고,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 공동체’가 아니라 생존 경쟁의 새로운 전쟁터로 바뀌었다”고 개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휩쓸면서 높은 건물들과 현란한 상업시설들이 들어섰고, 게시판은 뜨거운 변혁의 대자보 대신 싸늘한 기업 홍보물로 도배되었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군사독재시절 유일한 정치적 공론장이었던 아크로폴리스는 자본독재의 전시장처럼 변신했으며, 대학은 심각한 정치적 사건이 터져도 대자보 하나 붙지 않는 정치의 무풍지대, 심지어 이념의 불모지대로 불릴 만큼 변했다.
이 모든 것들이 ‘대학의 기업화’에 있다는 주장에 일면 동의한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그건 바로 외국인 유학생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상아탑 내부의 심각한 병폐현상이다. 대학의 보수화에 비할 바가 안 된다.
농촌의 초·중·고교, 공동화 넘어 붕괴단계
좀 더 솔직히 현실을 들여다보면 대학의 보수화나 학생들의 변신은 행복한 고민거리다.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대학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특히 지방에 소재한 대학들은 갈수록 심각하다. 비단 대학뿐만이 아니다. 초·중·고교가 다 겪는 현상이다. 농촌의 학교들은 이른바 공동화 현상을 넘어 붕괴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한다. 직접 현장을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각종 통계수치에서 족히 읽히고 남는다.
매년 줄어드는 학령인구는 2020학년도를 기점으로 감소폭이 더욱 가팔라지면서 향후 2년 내에 11만 4천명이 감소해 전국 학령인구는 처음으로 40만 명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나 통계기관은 출산율 감소 탓이라고 둘러대지만 학령인구 절벽현상이 두드러지고 수도권으로의 학생 유출까지 늘어나면서 지역 대학들은 그야말로 존폐의 기로에 내몰린 암울한 상황이다.
지난 수년 동안 정부가 단행한 대학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대학들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 대학들은 특성화 등을 앞세워 타지에서도 학생모집에 나서고, 유망학과를 중심으로 취업률 높이기에 고심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개혁 흐름 속에서 대부분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교육부가 오는 2023년까지 유학생 20만 명을 목표로 정한 이유도 그만큼 대학들의 정원 채우기가 어려워졌음을 예고한다.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유학생 유치를 위해 입학기준을 턱없이 낮추고 등록금을 깎아주는 등 ‘학위장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유학생의 이탈과 불법체류·취업 문제가 함께 동반되고 있다.
2년 전인 2017년 교육부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외국인 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은 12만 3,685명이었다. 이들 중 어학연수나 교환학생·방문학생 등을 제외하고, 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 온 유학생은 7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불과 1년여 만인 지난해 8월 기준 교육부와 법무부가 분석한 '외국인 유학생 현황' 자료를 보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16만 1,371명으로 4만 명 이상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1만 명 이상이 불법 체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체류 규모는 지난 2016년 5,652명에서 2017년 8,248명으로 45.9% 증가했으며, 2018년에는 전년 대비 35.5% 증가한 1만 1,176명에 달했다.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두 부류다. 처음부터 학업보다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온 유학생과 유학생활 중 과도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탈하는 경우다.
평가위해 유학생 머리수만 좇는 대학들 ‘문제’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유학생의 출석부를 조작해 불법 취업을 도운 한 지역 대학의 교직원들이 검찰에 적발되거나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대학이 나서 불법 취업을 알선하다 적발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당장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대학 입장에선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경쟁이 과열된 데는 대학들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 충족과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국내 학생들의 등록금은 10년째 동결되거나 인하된 반면 외국인 유학생들은 등록금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학령인구 감소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대학마다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문제는 외국인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부작용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만 가능한 유학생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학교적응 실패 등 중도탈락률이 증가하고 있다. 또 돈을 벌기 위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외국인 유학생도 큰 폭으로 늘면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나오고 있다.
지역의 한 대학 교수는 "학령인구 감소 등 위기 속에서 대학마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중도에 탈락하는 유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언어적인 문제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푸념했다. 각종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유학생 수에 의존하는 관행이 대학가에 팽배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턱없이 낮은 한국어 능력시험 자격, 등록금 할인까지
지난 2015년 교육부는 외국인 유학생 입학기준인 한국어능력시험(TOPIK) 기준을 기존 3급에서 2급으로 낮췄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한국어가 유학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기준을 낮췄다. 한국어능력시험 2급은 어휘 약 1,500개에서 2,000개 정도를 활용한 ‘음식 주문하기’, ‘전화하기’, ‘부탁하기’ 등의 수준이다.
따라서 2급으로 대학 교과과정을 이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가에서는 완화된 외국인 유학생 입학기준으로 인해 국내 재학생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원활한 수업 진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는 같은 수업을 받는 국내 학생들에게 전가되기 일쑤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17개 대학에서 어학능력을 충족한 학생이 한 명도 없는 대학(학부)이 무려 43곳(19.8%)이나 되며, 어학능력을 충족한 학생의 비율이 정부 기준인 30%에도 못 미치는 대학도 99곳(45.6%)에 달한다. 대학원은 한층 더 심각하다. 어학능력을 충족한 학생이 한 명도 없는 대학원은 전국 659개 대학원 중 285곳(43.2%)이며, 어학능력을 충족한 학생의 비율이 정부 기준인 30%에도 못 미치는 대학원은 594곳(90.1%)이나 된다.
그런데도 외국인 유학생은 국내 대학생보다 등록금도 적게 내고 있다. 2016년 기준 교육국제화평가인증을 받은 전국 126개 대학의 82.5%인 107개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등록금 할인을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5개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에게 받는 등록금은 한국인 학생이 내는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정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새로운 고등교육 수요 창출’에 대한 목표 실현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입학기준을 완화한다고 밝혔지만, ‘신입생 유치에 어려움이 없는 서울 지역 인기 대학에까지도 외국인 유학생만 늘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기준으로 전국의 대학 중 외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 상위 10곳 모두 서울지역 대학들이었다.
“한국가면 한국어 못해도 졸업장 수여?”...상아탑 획기적 학문 로드맵 절실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느슨한 입학기준과 등록금 부담 완화 등은 한국의 대학 이미지를 ‘싸구려 학위 대여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국내 학생들 사이에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일부 유학생들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늘어나는 외국인 유학생 수만큼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어를 제대로 할 줄 몰라도 졸업장을 준다며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는 대학들이 일차적으로 문제다. 대학들 간 과열 유치경쟁 탓에 외국 학생들 사이에는 ‘한국어를 잘할 줄 몰라도 한국에 가면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많다. 유학생 유치에 열을 올리며 학위장사에 눈 먼 대학 당국에 대한 국내 학생들의 불만이 높은 이유다. 이제라도 교육부는 외국 유학생에 대한 입학 기준을 강화하는 등 학사 관리에 책임감을 갖고 대학다운 대학 운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일부 지역에선 전체 학생 중 유학생 비율이 두 자리 수를 차지하는 대학들이 즐비하다. 사회 변혁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했던 상아탑이 외국 유학생들의 학위공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대학의 보수화나 기업화를 방치하여 발생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식과 지성의 산실인 상아탑이 외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위장사를 하는 곳으로 더는 전락해서 안 된다. 오로지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근시안적 접근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획기적인 대학 개혁과 학문정책의 획기적 로드맵이 절실해 보인다.
/<사람과 언론> 제5호(2019 여름).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