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 칼럼

"우리는 대일본 제국의 신민으로서 천황폐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일본신문이 아닌 민족지를 자처한 <조선일보>가 1936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현란한 충성맹세 문구 어디에서도 민족의 고통과 저항을 대변한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1939년 4월 29일 사설에선 더욱 낯부끄러운 수식어로 사설을 도배했다. 이른바 ‘봉축천장절(奉祝天長節)’이란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춘풍이 태탕하고 만화가 방창한 이 시절에 다시 한 번 천장가절(天長佳節)을 맞이함은 억조신서(億兆臣庶)가 경축에 불감(不堪)할 바이다. 성상 폐하께옵서는 옥체가 유강하시다니 실로 성황성공(誠惶誠恐) 동경동하(同慶同賀)할 바이다. 일년일도 이 반가운 날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홍원한 은(恩)과 광대한 인(仁)에 새로운 감격과 경행이 깊어짐을 깨달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적성봉공 충과 의를 다하야 일념보국의 확고한 결심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 일본 국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사설로 실으면서 온갖 예의를 다 갖추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도 모자라 낯 뜨거운 표현인 ‘옵', '황공’도 모자라 ‘성황성공’이라 하며, '경하’도 부족해 ‘동경동하', '충성’이 아니라 ‘극충극성(克忠克誠)'이라 하며, 일왕을 '지존(至尊)'이라고까지 치켜세웠다. 나라와 민족을 짓밟고 온갖 무도한 행태를 일삼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한 반민족 친일 행각은 도를 넘어 급기야 1940년 1월 1일 조간 1면에서 ’천황폐하(天皇陛下)의 어위덕(御威德)‘이란 제목과 함께 일왕 부처의 사진을 싣는가 하면, 제호 위에 일장기를 게재했다.

이어 1940년 2월 11일 1면‘봉축(奉祝) 황기이천육백년(皇紀二千六百年) 기원절(紀元節)’이란 사설에서도 일본 왕실을 찬양하고,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에 조선민중이 적극 협력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조선일보>는 폐간 4개월 전인 1940년 4월 30일에도 일왕의 생일을 맞아“황공하옵게도 천황 폐하께옵서는 이날에 제39회 어탄신을 맞이하옵시사……신자(臣子)의 충심으로 흥아성업도 황위하에 일단은 진척을 보아 선린의 새 지나 국민정부가 환도의 경축을 하는 이때에 이 아름다운 탄신을 맞이한 것은 더욱 광휘 있고 경축에 불감할 바이다”라고 보도했다. ‘신민(臣民)’이라고 표현했던 조선의 민중을‘신자(臣子)’라고 지칭함으로써 일거에 일왕의 자식으로 격하시켰다.

“독립 염원하는 민족정신·신념 배반하는 악질적인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

과연 이 신문이 어느 나라 신문인지, 우리 민족의 한 사람이 쓴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다. <조선일보>는 이처럼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최 정점이자 상징인 일본 국왕과 왕실을 찬양, 미화하고 일제의 시책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독립을 염원하는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는 악질적인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를 일삼았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일제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대륙을 침략하자,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현하고, 침략 전쟁의 수행을 위해 조선을 후방 병참기지로, 조선 민중은 일제 침략전쟁의 지원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도함으로써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과 신념을 배반하고 일제와 그 시책에 적극 협력하는 보도를 일삼았음에도 해방 이후 청산되지 않고 다시 복간하여 승승장구한 신문이다.

박정희 유신독재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시절에도 친일 반민족 신문은 오히려 정권에 부역하며 사세가 날로 확장돼 부끄럽게도 대한민국 1등 신문을 유지했다. 오죽했으면 2004년 10월 15일 <조선일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민간법정 재판부가 열려 <조선일보>의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 2002년에 이어 두 번째 열린 민간법정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민족과 역사 앞에 참회하고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해오고 있다.

당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민간법정에서 재판장은 "민간법정 검사단이 기소한 공소사실을 모두 받아들여 <조선일보>의 반민족 행위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다"면서 <조선일보>에 대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유죄의 인정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사죄할 것, 친일진상규명법의 통과를 방해하는 공작을 중단할 것, <조선일보>의 주식을 국민주로 전환하고 편집권을 독립시킬 것 등을 권고했다.

민간법정 검사단은 "<조선일보>는 일본 왕실의 찬양,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민중 참여 선동, 친일 반민족 단체 가입, 각종 친일 동원행사 주최, 노골적인 친일 광고 게재 등 친일 반민족적 언론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에 민간법정에 기소한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12명의 배심원단은 검사단의 기소사실을 모두 인정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간법정의 권고는 아무런 구속력이나 강제력을 지니지 못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고 오히려 민족신문인 듯 위장”

 

한발 더 나아가 <조선일보>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공소장에서 검사단은 "<조선일보>는 친일 행위에 대한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고 오히려 창간기념일 때마다 민족신문인 듯 위장하고 나서길 서슴지 않고 있다"며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입법을 방해하는 것도 <조선일보> 스스로 친일을 시인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암울한 식민통치 시대에 통치국가의 대변지 역할에 충실하고도 오늘날 대한민국 최고신문, 1등 신문임을 참칭하며 100년 역사를 자랑하다니 참담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역사가 오래고 뿌리가 깊다. 촛불혁명 이후 적폐청산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임에도 <조선일보>는 적폐의 역사 앞에 반성과 청산은커녕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있는 모양새다. 정파성을 무기로 왜곡된 의제설정을 휘두르고 있기는 1백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하다. 친일 행각의 버릇 또한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조선일보> 일본어판, ‘제2 안티조선운동’ 촉발

<조선일보> 일본어판 기사에서 드러났다. 국내 독자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기사를 내보내 비난을 자초한 <조선일보 >는 지난 4월 26일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칼럼 ‘어느 쪽이 친일이고, 무엇이 나라 망치는 매국인가’를 ‘반일로 한국을 망쳐 일본을 돕는 매국 문재인 정권’으로 번역해 일본을 자극시켰다. 이밖에 <조선일보> 일본어판에는 ‘관제 민족주의가 한국을 멸망시킨다’(3월31일), ‘국가 대전략을 손상시키는 문 정권의 감성적 민족주의’(4월28일), ‘북미 정치 쇼에는 들뜨고 일본의 보복에는 침묵하는 청와대’(7월3일),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7월4일) 등의 기사가 실렸다.

<중앙일보> 일본어판도 이에 가세해 일본 주요 언론보다 한국 보수 언론들의 일본판이 오히려 양국 갈등을 부추겼다. 특히 <조선일보>는 ‘반한’여론을 원하는 일본 극우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정도로 강도가 셌다. 혐한집회에 참가한 일본인들 중에는 “<조선일보>를 많이 읽으며 한국 신문 중에서는 <조선일보>를 신뢰한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가 하면, “<조선일보>처럼 매우 객관적으로 작성된 기사는 본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라니 더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언론시민연합,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진보연대 등 언론·시민단체 회원들이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친일언론, 왜곡편파언론, 적폐언론 <조선일보>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규탄하며 <조선일보>를 또다시 ‘친일 언론'으로 지목한 것은 당연지사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삼아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두고 일본 정부를 옹호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정파성에 눈멀어 일본의 폭거를 편드는 신문이라는 비난이 거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유언론실천재단 이부영 이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일보>의 DNA는 '친일'”이라고 꼬집을 정도다.

지독한 정파성, 왜곡된 의제설정...조선일보는 어느 나라 신문인가?

일제 강점기에도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기득권을 옹호하고 친일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7월 20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에서 더욱 혹독하게 평가하며 일갈했다.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된 <조선일보>는 '쇠는 나이’로 치면 올해로 꼭 100살이다. 같은 해 4월 1일에 첫 호를 펴낸 <동아일보>보다 27일이 앞섰으니 현존하는 인쇄매체 중에서는 '최고령'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역사는 물론이고 '현재 최고의 발행부수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1등 신문'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런가? 한국사회에서 '1등 신문'이라고 자랑하려면 민족 구성원들의 최대 염원인 통일에 이바지하고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와 정반대 길로 치달아 왔다. 그러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정권의 운명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듯이 '안하무인' 격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 폐간 및 TV조선 설립허가 취소’를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봇물을 이룬 가운데 시민단체들이‘<조선일보> 광고 불매운동 시즌2’를 천명하고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2008년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을 벌인 바 있는 한 시민단체는 주간 단위로 <조선일보> 지면 광고를 집계하고, 1~3순위 기업을 온라인 카페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다고 하니 안티조선이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꼴이다. 지독한 정파성과 왜곡된 의제설정이 성난 벌집을 건드린 양태다.

<조선일보>가 일본어판에서 일본 극우가 선호할 만한 표현으로 기사 제목을 고쳐온 것은 악화일로의 한-일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듯, 이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안티조선 운동 움직임 또한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이제야말로 현실을 직시할 때다. 100년 신문역사 속에서 친일 반민족 언론행위에 대한 반성과 참회는 찾아볼 수 없다.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이란 사시(社是)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현재의 모든 언론사를 통틀어 <조선일보>가 과거에 보도한 가짜뉴스에 대해 정정보도를 가장 많이 한 신문사임을 이유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폐간조치 시키고, 거대 언론사의 여론호도 횡포에 맞서 싸워주십시오. 계열사인 <TV조선> 또한 연일 선정적이고 원색적인 문장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뉴스로 국익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방통위의 절차에 따라 방송국 설립허가처분을 취소해주세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7월 11일‘일본 극우여론전에 이용되고 있는 가짜뉴스 근원지 <조선일보> 폐간 및 <TV조선> 설립허가 취소’란 제목과 함께 올라온 한 청원인의 글이다. 이 글에 20여일 만에 20만 명이 동의했다.

더는 참지 못하겠던지 1975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조선일보>에 대해 "반민족 친일행위"라고 강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70년대 대량 해고사건으로 물러난 30여 명의 기자가 만든 언론자유투쟁단체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이하 조선투위)는 8월 1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와 함께 "<조선일보>가 조금의 양심이라도 갖고 있다면 작금의 친일 행위에 대해 사죄해야 하며, 국민들은 그 책임을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한국의 신문인가?’, ‘친일백년 조선일보’ 등의 플래카드를 앞세운 조선투위는 "지금 이 언론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는 더 심각한 혼란과 위기를 맞을 것이다. 언론이 스스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국민들이 나서 바로잡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며 "거짓된 언론을 부정하고 추방함으로써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격앙된 어조로 비난했다.

<조선일보>가 스스로 행동으로 답할 차례다.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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