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분석-2020년 8월 11일(화)
수자원공사 방류량조절 실패 탓?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은 탓?
역대급 기습 폭우로 인한 최악의 홍수피해 원인과 책임을 놓고 정치권과 언론의 주장이 분분하다. 특히 언론의 책임소재 의제설정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전북·충남 언론들, "수자원공사 댐 관리 부실 탓"

우선 언론들은 전국을 할퀸 홍수 피해를 ‘최악의 물난리’, ‘역대급 폭우 피해’로 규정하는 데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제목과 기사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습 폭우로 인한 섬진강 제방 붕괴와 용담댐의 갑작스런 방류로 인한 피해를 인재로 보는 언론의 시각 또한 우세하다.

그러나 세부적인 책임론에선 입장이 갈린다. 특히 섬진강 제방이 붕괴돼 전북 남원시, 전남 곡성군 등 섬진강 수계 6개 시군에서 2,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주택 2,000여 곳이 물에 잠긴 원인을 놓고 각기 다른 주장이 나온다.
우선 지역언론과 서울언론들의 시각 차이가 극명하다. 지역언론들은 수자원공사의 방류량 조절 실패 등 댐 관리를 잘못한 책임이 크다는 데 방점을 찍는 모양새다.
지역언론들은 수자원공사의 부실한 댐 관리와 수위조절 실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11일 전북, 충남지역 언론들의 지면과 영상에서 특히 묻어났다.
섬진강 제방 붕괴뿐만 아니라 용담댐 하류지역 홍수 피해도 수자원공사에 책임을 묻는 기사들이 많다.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전북지역과 충남지역 언론들은 지역 정치권과 주민들의 주장을 앞세워 지면과 영상에 수자원공사의 책임론에 군불을 지피는 양태다.
그러나 서울언론들은 뜬금없이 4대강 사업을 끌어들여 논란을 키우고 있다.
보수언론·통합당, “4대강 사업 확대했더라면 피해 덜했을 것” 궤변
보수언론들은 미래통합당이 “섬진강 홍수 피해는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4대강 사업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자 힘을 보태는 형국이다. 그러나 물난리 고통 와중에 4대강을 들먹이는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조선일보가 앞장섰다. 11일 사설에서 신문은 “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던 섬진강에 대해선 ‘다른 강처럼 준설을 했더라면 제방 붕괴는 없었을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4대강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폭우 피해도 4대강 사업 탓, 전 정권 핑계 댈 건가’란 제목의 사설에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신문은 한발 더 나아가 “전국 홍수 피해에 관한 재해연보 자료를 보면 4대강 사업 이전보다 이후의 피해가 크게 줄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만일 지류를 정비해야 홍수·가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이제라도 서둘러 정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강 사업 예찬론이 어이 없게도 다시 부활한 것이다.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는 주장, 근거 없어” 반박
그러자 마침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이날 사설에서 4대강 문제를 거론했다.
특히 경향은 사설 ‘4대강 사업 덕분에 홍수 피했다고? 사실을 말하라’란 제목과 함께 야당과 보수언론의 주장에 일침을 가했다.
“4대강 사업의 속내가 대운하에 있었음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는 사설은 “4대강 보 건설이 홍수 피해를 줄였다는 주장은 이 사업의 본질을 외면한 궤변이며 섬진강 유역의 홍수가 4대강 사업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고 맞받아 공격했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지금은 추가 피해 예방과 이재민 지원, 피해 복구가 무엇보다 시급한 때"라고 지적하면서 "여야는 소모적 정치 공방을 그만두고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실질적 피해 대책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점잖게 타일렀다.
이처럼 역대급 폭우와 홍수피해를 놓고 정치권의 설전이 언론에 옮겨 붙어 진보와 보수언론사들 간의 대립과 갈등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또 다른 과학적인 주장과 의제가 오히려 주목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 기후변화 등 ‘기후재앙’ 원인”, 설득력 돋보여
세계일보는 지난 3일 인터넷판에 ‘홍수·폭염·허리케인…‘기후재앙’ 세계를 덮쳤다‘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에선 2일 새벽부터 쏟아진 기습 폭우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8명 실종됐다. 중국은 남부지방 홍수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며 수재민이 한국 인구를 넘어섰다. 유럽은 최근 각국에서 잇달아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미국에는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이 상륙했다.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는 8만년에 한 차례 있을 법한 고온현상으로 산불 피해가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홍수, 가뭄, 폭풍, 폭염 등 극단적 기상이 더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문은 기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기습 폭우로 인한 피해가 확산되고 있음을 예의주시하며 이러한 원인을 이상 고온현상과 기후변화에서 찾았다. 결국 인재는 인재이지만 4대강 사업이나 수자원공사 등의 댐 관리에 의한 원인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의제를 짚어줌으로써 차별을 보였다.
이 신문은 열대성 기후 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집중호우가 한국에서 나타나 미처 대비할 틈을 주지 않고 있는 원인도, 중국에는 남부지역에서 두 달째 이어지는 홍수로 수재민이 5,000만 명을 넘긴 초유의 사태 원인도, 스페인 국립기상청(AMET)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부 해양도시 산세바스티안지역 기온이 관측 이래 최고치인 섭씨 42도까지 올랐다고 밝힌 원인도, 영국 런던 서부에 있는 히스로 공항이 지난달 31일 섭씨 37.8도를 찍어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로 기록한 원인도, 네덜란드가 35도를 찍고, 오스트리아와 불가리아에서도 올해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원인도 ‘기후재앙’으로 보았다.

MBC도 3일 보도한 ‘"곳곳에 폭우·홍수"…이상기후 지구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심각한 현상을 짚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인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힌 기사는 “폭우와 홍수가 4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인도 전역 수천 개 마을이 물에 잠겼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만 800만 명, 사망자는 100명이 넘는다”며 “230여 개의 강이 밀집해 저지대가 많은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3분의 1 정도가 침수됐고, 인도 동북부 국립공원의 85%가 물에 잠기면서 멸종위기의 희귀 외뿔코뿔소를 비롯해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죽음을 맞아야 했다”고 보도했다.
환경·기후에 관한 언론 의제설정 중요한 시기
그러면서 기사는 “최근 몇 년간 더 자주, 더 강하게, 세계 곳곳을 덮치는 극단적 이상기후들, 이 모두는 지구 온난화 현상에 따른 피해”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수십 년 동안 경고해 왔던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우리가 받고 있다. 앞으로 저탄소 사회로 전환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를 계속 볼 수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말을 덧붙여 강조했다.
폭우와 폭염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대목들이다. 이상고온으로 러시아 시베리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있고, 홍수와 폭염이 미국 등 전 대륙 국가들에서 속속 발생하는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의 기록적인 폭우와 기후변화를 거시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그런데 전북지역에선 한 일간지가 10일 ‘한가하게 환경을 논할 때가 아니다’란 제목의 사설을 내보내 빈축을 샀다. 사설은 “현재 전북 전주시에 부족한 것은 자연과 환경이 아니라 지역개발과 기업유치, 그리고 일자리”라고 주장해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보수언론과 일부 야당 정치인들의 정치적 쟁점화 시도는 더욱 위험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채 근시안적인 땜질처방과 책임문제를 놓고 정치적 논쟁거리로 확대시키려는 정치권과 언론의 볼썽사나운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기후 변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논의와 대안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환경과 기후변화에 관한 언론의 의제설정이 매우 중요한 시기로 보여진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