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김종석 기상청장
우리나라는 그동안‘기후 악당국가’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기후변화 문제에 매우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2016년 영국 기후행동 추적(CAT)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속도가 빠르고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한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대한민국을‘세계 4대 기후악당’으로 지목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9년에도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 지수(CCPI)에서 100점 만점에 28.53점, 조사대상 60개국 중 57위를 차지할 정도이니 ‘악당’소릴 들어도 더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최근 우리나라는 두 가지 새로운 유형의 재해를 경험하고 있다. 첫째는 봄철에 닥치는 고농도 미세먼지이고 둘째는 여름에 발생한 폭염과 가뭄이다. 두 재해 모두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 중 특히 온난화의 경우 역시 그동안 계속되어 온 것이다. 여름이 길어지고 더워진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지난 수년 동안 경험적으로 체득한 바 있다. 또한 1994년 한반도가 겪은 최악의 폭염은 그 시기를 경험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들이 좀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두 재해 모두 갈수록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기후의 역습(climate penalty)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파란 하늘과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사라지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높다. 그렇다고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시사· 인문·학술 계간지 <사람과 언론>이 지난 2019년 6월 1일 창간 1주년을 맞아 제5호(여름호)에서 ‘기후변화·미세먼지 대응, 어떻게?’란 특집을 마련하고 다양한 전문가 의견들을 수렴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 첫 번째로 기후변화를 일선 현장에서 오랫동안 예측하며 관리해 온 김종석 기상청장으로부터 기후변화의 과학적 예측 및 대응방법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김 청장이 <사람과 언론> 5호에 특별기고로 의견을 제시해 준 내용의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2019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이회성 의장과 가수 방탄소년단을 선정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회성 의장이 선정된 배경은 지난 30년간 IPCC가 전 세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전 세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변화, 미래가 아닌 지금 닥친 현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로 발생하는 인위적인 현상이라는 주장과, 간빙기에 들어선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IPCC는 제5차 평가보고서(2013)를 통해 기후시스템의 관측된 변화를 분석한 신뢰도 높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지구온난화는 명백하며, 1950년 이후 관측된 많은 변화들은 지난 수천 년간 전례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 평가보고서는 조목조목 기후변화 원인을 온실가스 등에 의한 인위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밝혀내면서 ‘2015년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가 매년 상승하는 추세이며, 1994년 357ppm 수준이었던 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가 2017년 현재 405ppm까지 치솟았다. 이로 인해 전 지구 평균기온이 높았던 1~20위의 해가 지난 22년간 나타났고, 그 중에서 4위까지 지난 4년에서 나타났다(그림1).

인류가 만든 ‘이상기후’, 그 대응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2018년 한 해 동안 가장 춥고 가장 무더웠던 계절을 오가며,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꼈으며, 기후변화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강한 한파로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한 반면에 장기간 폭염 발생으로 일 최고기온 최고치를 경신(41℃, 홍천)하는 등 극한의 기온 변화를 보였으며, 이례적으로 태풍 2개(솔릭, 콩레이)가 연이어 한반도에 상륙하며 비 피해를 야기했다.
또한, 2018년 동안 한랭질환자가 631명(사망 11명) 발생하여 2011년 이후 최다를 기록했다. 해양 저수온으로 약 103억 원의 수산업 피해가 발생했고, 바로 뒤따른 봄철에는 이상고온으로 과수의 개화가 앞당겨진 가운데 일시적인 이상저온(4월 초)이 발생했다. 그 결과, 과수 꽃 냉해(50,466ha) 등 농업적 피해(전국 8,464가구)로 가을철 수확을 급감시켜 사과, 배 등 과수 가격이 급등하였다. 폭염도 예외는 아니었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자수는 4,526명(사망 48명)으로 2011년 이후 역시 최다를 기록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출발점부터 기준을 명확히 확인하고 대응 목표를 정량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기후변화 대응의 명확한 기준과 목표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이를 추진하는 데 소요되는 경제적,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차단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기후변화 대응은 기후변화 감시를 통해 기후변화 원인을 규명하고 현황을 정확히 진단하여 그 영향을 과학적으로 전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IPCC는 이를 ‘기후변화 과학(Climate Change Science)'이라고 정의한다.
기후변화, 과학적 감시로부터 출발
기상청은 1992년부터 세계기상기구(WMO) 지구대기(GAW: Global Atmosphere Watch)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기후변화 감시 자료를 전 세계 자료센터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이 되는 지구대기 화학・물리적 조성에 대한 과학적 관측 자료와 자연・인위적 대기조성 변화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IPCC,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그 밖의 국제기구, 정부기관, 과학자 등에 제공되어 현재와 미래 기후시스템 변화를 분석・예측하여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 수립에 활용된다.
우리나라는 안면도, 제주 고산 및 울릉도·독도 기후변화감시소를 상시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7개 대학 및 연구소를 위탁관측소로 지정하여 협력하고 있다. 기후변화감시소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소스를 최대한 배제한 대기 배경농도를 감시하는데, 온실가스, 에어로졸, 대기복사, 자외선 등 WMO에서 권고하고 있는 기후변화감시 요소 36종을 상시 관측하고 있다. 이렇게 관측된 온실가스 농도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 기온 상승과 그 경향을 같이 하고 있다(그림2).

특히, 우리나라는 동북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수준 높은 관측자료 제공과 연구 활동을 통해 국제 네트워크와 프로그램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11년에는 대기 중 극히 미량으로 존재하는 대표적 온실가스 중 하나인 육불화황(SF6)의 측정 기술을 인정받아 WMO로부터 육불화황 세계표준센터(World Calibration Centre)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강수화학 국제비교 실험과 온실가스 관측기술 적합성 평가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기후변화, 미래를 알아야 미리 대비할 수 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관측자료를 통해 기후변화를 정량적으로 진단하여 현재의 수준을 파악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는 미래 기후변화 전망정보기반으로 기후변화 영향 및 변동성 등을 예측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기후변화 전망을 위해서는 기후변화 시나리오라는 핵심 툴이 필요하다. 미래의 경제, 기술 등을 고려한 미래 사회·경제 시나리오와 미래 온실가스·에어로졸 배출량 시나리오를 결합하여 미래 기후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흘러갈지 예측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후모델링 기술과 슈퍼컴퓨터 운영기술이 필수인데 전 세계 15여 개국 정도만 산출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로 기상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IPCC 제5차 평가보고서 발간에 크게 기여했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 지금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 수준이 지속될 경우 21세기 말 우리나라 평균기온은 현재(1981~2010년) 12.5℃에서 16.9℃로 온도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된다면 2018년 여름에 경험했던 폭염과 열대야가 21세기 말에는 한 달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제48조 및 같은 법 시행령 38조(기후변화 적응대책 수립 등)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 관계부처, 광역 및 기초지자체, 공공기관에서는 기상청이 생산·제공한 기후변화 전망 정보를 토대로 미래 기후변화 영향과 취약성 등을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반영하여 농업, 임업, 수자원 등 분야별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상황에 맞게 수립하여 추진한다.
예를 들어, 미래 기온 및 강수량 전망 정보를 활용하여 물 관리 분야에서는 기후변화로 나타날 수 있는 홍수취약 지역을 평가하고 ‘홍수·침수 예상지도’를 작성하여 자연재해 위험지구를 관리한다.
농림업 분야에서는 이상고온에도 잘 견디는 작물 또는 산림을 육성하거나, 재배적지의 북상 등을 농민에게 안내하는 등 미래 농업 계획을 새롭게 수립하게 된다. 아울러 지자체에서는 기후민감도, 고령인구수 등 지역특성을 반영하여 미래 기후변화를 고려한 안전한 도시 관리를 위해 기후변화적응 선도시범사업 운영 등 기후변화 대응 대책에 노력하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개선된 새로운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전 지구 기후변화 전망을 올해 12월에 새롭게 제공할 것이며, 2022년 발간예정인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도 활용될 예정이다. 새로운 기후변화 시나리오는 인구통계, 경제발전, 복지, 기술발전 등 21세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경제 영향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인 기후변화를 예측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층 과학적인 제3차 국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기상청은 관계부처, 광역·기초 지자체 및 분야별 공공기관에 기후변화 전망을 일정에 맞춰 차질 없이 생산하여 제공할 것이며, 각 기 관에서 사용하기 쉽도록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인류 위협하는 기후변화, 과학적 대응 노력ㆍ실천으로 극복해야
전 세계 기후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기후는 앞으로 더욱 자주 그리고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이례적인 모습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기온 상승은 해수면 상승에 따른 주거지역 감소, 폭염・가뭄・집중호우와 같은 이상기후 발생과 식량 생산량 감소 등 이미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녹아내리는 그린란드 빙산, 빙하 속에 갇혀 있던 바이러스가 출몰하여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제48차 IPCC 회의에서 「지구 온난화 1.5℃」 특별보고서를 승인했다. 이 보고서는 당초 목표였던 2℃ 상승으로는 지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였고, 서둘러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의 적극적인 감축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지구 온난화 2℃보다 1.5℃에서 2100년 해수면 상승폭은 10cm 낮출 수 있고, 천만 명의 사람이 해수면 상승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며,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을 확률을 반으로 줄일 것이다. 아울러 이상기후 현상은 건강, 생계, 식량과 물 공급, 안보 및 경제 성장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 빈곤계층, 사회적 약자에게는 더욱 혹독할 것이며, 0.5℃ 하향된 지구온난화 목표는 심각한 물 부족에 노출되는 총 인구비율이 최대 50% 감소할 정도로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도전적이나 지금 바로 우리가 지구 온난화 1.5℃ 목표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타임즈(NYT)는 2015년 12월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계기로 개인들이 바꿔야할 생활습관을 소개하며, 기후변화가 범국가적, 범지구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으로부터의 시작을 강조하고 있다.
고기보다 채식을 즐길 것, 자가용보다는 버스나 지하철을 탈 것, 냉장고 속에 쌓아둔 음식은 기후변화 대응의 적임을 알 것, 재활용품을 즐겨 쓸 것 등을 제안했다.
후손에게 아름답고 안전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 지금 당장, 내일 당장 실천만 한다면 충분히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김종석 기상청장>
※<사람과 언론> 제5호(2019 여름) 게재 글.
김종석 청장 : 제13대 기상청장, 전 한국기상산업기술원장, 전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자문관, 전 공군본부 공군기상단 단장, 경북대학교 대학원 이학박사 수료(천문대기과학 전공), 영남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환경공학 전공), (상훈) 보국훈장삼일장(2010)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