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 위에서'

페루의 마추픽추(Machu Picchu). 황금을 찾는 이들에게 쫓기고 쫓겨 도망친 잉카인들이 비밀도시를 건설하고 복수를 꿈꾸었다는 곳. 어느 날 갑자기 1만 명이 넘던 도시의 주민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185구의 미라 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곳. 여성과 아이들을 땅에 묻고 사라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더 깊은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렇다면 아마존 어딘가에는 어째서 그토록 깊은 정글에서 살게 되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잉카의 후예들이 남아있지 않을까? 

‘잃어버린 공중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마추픽추는 페루에 있는 잉카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다. 15세기에 남아메리카를 지배했던 잉카제국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남미에서 유일하게 정복자의 손이 닿지 않은 도시이기 때문에 페루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도시다. 이 도시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11년 7월 24일이었다.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은 몇몇의 대원과 이 근처에 있는 잉카의 유적 초케퀘라오를 발견했지만 잉카제국의 최후의 수도이자 전설 속에 수도라는 빌카밤바를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09년에 페루를 다시 찾은 빙엄은 쿠스코에서 망코가 피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을 더듬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시냇가에서 천막을 쳐놓고 쉬고 있는데, 멜초르 아르테가라는 남자가 찾아왔다. 그 사람에게 조사단원들이 근처의 지형에 대해서 묻다가 얼마간의 돈을 주자 몇 백년 간 인디오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안내를 자청했다. 강을 건너고 밀림 숲을 헤치면서 가파른 길을 오르고 오른 뒤 산 허리에 오르자 몇 백년 간 인간의 눈에서 사라졌던 광경, 즉 거대한 석조 도시가 나타났다.

“절묘한 건축물이 광활한 계단식 축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표면은 돌로 덮여 있었고, 너비는 수십m나 되었으며, 높이는 모두가 3m에 이르렀다.”

빙엄이 남긴 글이다. 해발 약 2,430m나 되는 산맥의 정상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마추픽추는 쿠스코에서 북쪽으로 80kmWma 떨어져 있고, 우르밤바강의 도시가 있는 산맥 아래를 꺾어 흘러 들어가고 있다. 마추픽추의 뜻은 케추아어로 ’늙은 봉우리‘ 라는 뜻인데,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중 도시'라고도 불린다. 마추픽추는 발견된 지가 오래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지어진 목적과 기능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추측으로만 남아 있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잉카제국의 파차쿠티 황제가 이 요새 도시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1450년 무렵에 건설되었다가 약 1세기 후 스페인이 침략했을 무렵 버려진 도시가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잉카인은 문자와 언어가 있었다. 하지만 화폐가 없었다. 그들은 물물교환 경제 체제였고, 세금 대신 노역으로 납세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며 마추픽추를 건설할 때 노역에 봉사한 사람들은 6개월의 노역으로 평생 동안의 세금을 대신했다고 한다. 마추픽추를 설계한 건축가를 비롯한 전문 인력들의 기지와 지혜는 오늘날에 대입해도 놀라울 정도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높은 기술로 쌓은 돌담의 잔해가 내 눈앞에 불쑥 나타났다. 수 세기에 걸쳐 수목과 이끼가 무성히 자라 얼른 가려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나무 사이를 내리비치는 햇빛을 받으며 대나무 덤불과 풀섶의 그늘에 누워 있는 것. 정교하게 다듬질하여 짜 맞춘 화강암의 네모난 석재의 벽이 여기저기 하얀 살갗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참 지나고 나니 다시 그리운 곳이 남아메리카이고 마추픽추다.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니“ 

푸시킨의 그 시 구절은 지금도 유효하다. 

/글·사진=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문화사학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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