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중의 자전거 이야기(2)]

'자전거 원정대' 기획 의도·목적은?
자전거 원정대 이야기를 다시 연재하면서 어떻게 시작할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한 지가 꽤나 오래되는 편이다. 아래에 소개하는 칼럼은 <전북일보>에 게재된 글로, 2009년 7월 21일이니 대략 14년이 된 셈이다.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했을까 싶었다. 그리고 지적한 문제와 접근방식이 무엇이었나를 살펴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 내 생각도 그렇고 지적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먼저 그때 쓴 칼럼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가겠다. ‘녹색성장, 자전거 도시’라는 제목으로 ‘새벽메아리’라는 코너를 통해서 쓴 짧은 칼럼이다.
활보하는 자전거 틈 속에서 진땀 빼는 차량 운전자와 달리 여유와 생기가 넘쳐나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의 풍경, 우리 현실과 정반대지만 공상은 아닌 오늘 지구촌에 존재하는 풍경을 전주에 적용해 본 나의 '희망'이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을 간략히 소개하고 본론에 들어가고자 한다. 100만이 넘는 수도지만 도심 도로에 자동차와 나란히 자전거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전용차선이 있다. 차선이 남아서 내준 게 아니라 자전거가 한몫을 차지한 것이다. 운하를 오가는 배와 경전철 등 다른 교통망과 연계되어 있고 자전거를 실고서 목적지까지의 이동도 가능하다. 자전거의 수송 분담률이 43%, 자전거와 연계된 대중교통 이용자가 60%에 달하는 등 자전거를 통해 도시가 움직인데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화두에 올리며 자전거 산업 창출까지 말하고 많은 지자체들이 자전거도시 만들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나는 '사람'이 빠진 '산업'을 이야기하는 속 빈 강정이며, 말이 녹색일 뿐 실은 그에 반하는 행보라 비판한다. 뒤에 언급할 전주의 경험처럼,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추진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주시도 오래전부터 자전거도로 확충과 전담부서 운영, 조례제정 등에 나서면서 자전거도시 선두 반열에 선바 있다.
10여 년이 지난 현재 평가가 호의적이지 못하다. 자전거도로 확충을 위한 2009 예산안이 지난 가을 삭감 당했고, 얼마 전 다시 추경예산에서 재삭감 당하였다. 자전거도시를 표방한 전주시의 몇 년간을 보면서 '무엇을 위해, 왜 했는지' 의아함을 지울 수 없었다. 만든 도로를 어떻게 활용하고자 했는지 문제점과 과제에 대한 계획이나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사업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플랜이나 평가조차 없었단다.
지자체 의원, 단체장, 시민단체들의 선진지 사례 연수단을 맡아온 한 활동가의 아래와 같은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벤치마킹을 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국분들이 보고 가서 그대로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몇몇 모범적 사례도 있지만 과장하자면 보고 배워야 할 선진지의 경험과 의지가 아니라 도로의 소재와 펜스의 재질을 알아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노력하고 선택하고 실천해 온 원동력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인다.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끊임없이 넓혀야 하는 도로 수요 충족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기존의 자동차에서 사람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룬 혁명이다. 자전거는 보다 편리하게, 자동차는 보다 불편하고 지양해야 할 '나쁜 소비'임을 깨닫게 되는 공동체 프로그램에의 동참을 이끌고 새롭고 창조적인 소비를 만들었다. 이러한 철학과 비전 없는 자전거도로개설은 '빨간색 인도'만들기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자전거는 유효하다. 4대 강 강변길에서 자전거를 타게 만든다는 괴이한 발상 말고 등굣길, 출근길, 장 보는 길에 있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로 시선을 향하면 된다. 진정 녹색성장의 길로 유유히 나아가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도시'를 꿈꿔본다. 우리 도시의 미래상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선진 사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으로부터 시작하는 페달 내딛기가 필요하다.
<전북일보 새벽메아리에 썼던 2009년 7월경 칼럼>
도시는 어디에서 어디로 변화해야 하는가?
위 글은 김완주 전주시장 시절 추진한 '자전거 도시 만들기'로부터 10여 년이 경과한 시점에서의 개인적인 평가였다. 요즘 내가 쓰는 어법으로 바꾸어 칼럼에서 제기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우선 자전거는 분명한 도시 변화의 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암스테르담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적 성격을 ‘자동차는 보다 불편하고 지양해야 할 나쁜 소비’라 말하며 ‘자전거를 편리하게 만들어 가는 창조적 소비로 표현하였다. 도시에 있어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지는 철학적 접근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철학과 비전의 단단함이 없이 단순하게 모방하고 베끼려는 식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둘째, 2000년대 초반부터의 10여 년간 진행된 자전거 정책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전망과 플랜의 부재를 지적한 부분이다. 이때의 나의 지적은 공허한 메아리였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시민 한 사람의 칼럼을 지역사회가 받아들이기란 곤란했는지 다시 10여 년 뒤의 김승수 시장 시절의 두 번째 자전거 정책 추진 과정에서도 그 문제점이 드러난다. 김 시장의 자전거 정책 추진에 관여한 입장에서 되풀이했던 나의 물음은 ‘지난 시절 전주의 자전거’에 관한 평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없었다.
그리고 김 시장의 임기가 끝난 현재 시점. 여전히 20여 년에 걸친 ‘전주의 자전거’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없다. 평가가 없는 새로운 계획의 수립 내지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은 애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많은 시민들이 우범기 시장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정책이 많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기존의 자연형 하천 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정책으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며 우려를 제기한다. 정책이 늘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전제는 기존 하천정책에 관한 광범위한 평가와 의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경우를 독단이라 한다. 지금의 우범기 시장이 비판받기 시작한 이유이다.
셋째, 칼럼에서 인용한 해외 사례에 대한 벤치마킹에 관련한 대목에서 2009년의 나는 이런 점을 지적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전주를 포함한 많은 우리 도시)는 선진지를 다녀오고 나면 무언가를 마구 베껴들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가서 보니 눈앞에서 펼쳐진 신세계와 같은 풍경을 빠르게 도입하려는 욕심이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과 깊은 비전을 바탕으로 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해서 가져왔을 그들의 경험과 조언을 쏙 빼고 덤벼든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하기는 해야겠고 차도에는 어려울 것 같으니 ‘인도 위에 빨간 칠’하는 보행자 겸용도로를 일제히 놓아버리는 방식이다. 쉽게 하려다 보니 이후 지속적으로 꼬여가는 문제 덩어리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넷째, 마지막 대목에서 표현하기를 기존의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에서 사람과 자전거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자 혁명으로 규정했었다. 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는 만큼 공감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페달질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즘 내가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도시를 바꾸는 것이니 만큼 시민의 동의가 없는 변화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갖춰진다 하더라도 이것이 없이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23년 전에도, 14년 전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는 모습들...
철학과 비전, 평가의 부재, 공론을 통하지 않는 것, 준비없이 서두르는 접근
유럽 자전거 원정대는 1,2,3,4로 나열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다녀왔다. 긴 시간의 준비과정과 사전학습에서 우리가 살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했었다. 단단한 철학과 비전이 담긴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여겼다. 우리가 해왔던 기존의 것들에 대한 평가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절대 무엇을 하려고 덤비는 것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고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선진지들의 시민은 이 과정에서 어떻게 공론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만들어 왔는지를 살펴보고자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전거 도시로의 전환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일이니 만큼 ‘이게 우리 안에서 가능할까?’라고 회의적이거나 어렵겠다는 생각을 먼저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와는 좀 떨어진 이야기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1700년대 말 런던의 여성들은 아프리카 설탕의 단맛에 담긴 잔혹함을 고발하기 시작하였다. (노예무역을 기반으로 하는) 삼각무역으로 인한 엄청난 이익을 누리고 있던 영국사회에 노예무역의 폐지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담은 법안은 당연하게도(?) 압도적 표 차이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린 지 11번째 만에, 제기된 지 20년 만에 정반대의 표 차이로 폐지를 결정하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가 더딘 것 같지만 때론 이렇게 역동사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목적 의식과 목표를 가지고 다녀온 원정대 이야기를 다음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계속)
/김길중(자전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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