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78)

지리산 첩첩산중에 운둔의 고을이 있어 왔다. 북에는 개마고원, 남에는 운봉고원이라던 그곳은 1930년대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99개 고개를 넘어야 만날수 있는 숨어 있는 십승길지의 땅이었다.
지리산 그 운봉 연재에는 마애불상이 하나 있다. 안내판의 설명문에는 1998년 11월 2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것과 높이는 2.5m, 어깨 폭은 1.09m의 불상크기 그리고 민머리에 상투 모양의 넓고 낮은 머리묶음이 있고, 머리 뒷면에는 광배(光背)가 표현되어 있다는 형상을 설명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에 이 여원치 마애불상이 고려시대의 불상이라는 점에 눈을 대었고 그 때로부터 이 불상에 들었을 구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이 불상이 이성계와 관계가 있다는 공통점은 있었으나 실체적 이야기거리는 듣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리산 용유담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며 여원 할매의 신내림을 받고자 기도 중이라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그 할머니의 말로는 지리산의 성모신이 여원할매를 내셨으니 이제는 자기가 그 여원 할매의 신을 받겠노라고 기도를 하며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셨다.

"할머니! 여원할매가 계신 곳은 저기 운봉 여원재인데 왜 여기 용유담에서 여원할매 신내림 기도를 하는 거예요?"
"이 ~그것은 지리산에 사는 모든 신은 최고 어른 성모신인 천황할매가 다스리고 있는디 자기가 들이고 싶은 신들은 모다 여기 용유담을 들고 나면서 천황할매한테 문안을 드린개로 여기서 답을 기다려야 허니깨 그려"
"할머니! 얼마나 기도를 해야 허락을 받을 수 있는데요?"
"그거야 알수 없지만 보통은 백일만에 내가 원하는 신을 내려주신다고 옛날 어른들이 그래쌋어 그래서 나도 천막치고 지금 두달이 조금 지났그만"
"할머니는 왜 여원 할매신을 받으실려고 하는데요?"
"이 ~그 사연을 말헐라면 한도 끝도 없어 우리 조상중에 고려라고 그런 나라가 있었잖어 그때 저 우뜸 운봉가면 황산이라고 있잖응개비 거그서 왜구놈들허고 싸움이 벌어졌는디, 그 때 고려군은 이성계 장군이 대장이었고 그 장군을 따라서 저 함경도 먼곳에서 함께 내려온 사람 중에 우리 조상이 있었는디 그분은 천문사였다고 허드만.
아~ 왜 옛날에는 날씨 같은거 또 뭣이냐 길을 잃어 뿌리먼 길찾아서 안내허고 그런일 허는 사람 말이여. 근디 그이가 황산싸움에서 왜구를 쫒아내는 큰 비책을 알아 내갖고 이성계 장군한테 알려줘서 왜구들을 죄다 죽이게 됐대"

"할머니! 무슨 비책이라고 하시던가요?"
"이~ 우리 아부지 말로는 조상들한테 전해온 이야기가 거 뭣이냐 미꾸라지가 물에서 배를 내놓고 숨을 쉬로 오르락 내리락 허먼 이삼일 있다가는 낮게 퍼진 구름이 걷힌다는 것을 알았는디, 그 때 왜 보름날 이쪽저쪽 황산에서 싸울때 그 비책을 써서 구름에 갖힌 달을 꺼내서 밤에 환하게 해갖고 왜구들을 기습몰살 했다잖아"
"그런데 그 비책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 이성계 장군이 지리산에 대고 고사 를 지내다가 잠이 든사이 꿈에 여원할매가 나타나서 천문사를 자기한테 보내면 비책을 알려주겠노라며 홀연 사라졌는디, 꿈을 깨고 나서 우리조상 그 천문사가 이성계 장군 명을 받고 여원 할매를 찾아가서 그 비책을 얻어 와서 보름날 전투를 해야 한다고 해갖고 이겨부렀대.
그래서 우리조상들 중에는 그런 일에 종사한 사람이 더러났고 우리 어머니도 여원 할매 신을 모시다가 가셨는디 나도 그 피를 받았는지 늙으막에 몸이 않좋아서 여기저기 물어봉개로 조상을 도와준 신을 받아야 산다고 해서 지금 이렇고 있는 것이여"

여원치 마애불에 전해오는 여원 할매가 이성계 장군에게 일러주었다는 숨겨진 이야기의 실체는 왜구퇴치의 방법과 시기였고 그것은 9월 보름날 달을 조명탄으로 사용한 기습작전이었고, 그 마중물은 달빛을 가린 구름이 걷히는 때를 알아내는 미꾸리의 생물학적 특성을 활용한 것이었다.
여원 할매는 미꾸리로 나라를 살려낸 지리산 신령이셨다. 천년문화 도시의 고을 디자인과 문화소득상품의 소재는 문화콘텐츠다. 그 활용은 기초가 튼튼해야 하고 그것은 조상에게 상속된 문화에 있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